내 안에는 여러 개의 자아가 있다

내면소통명상과정 3

by Claire mindfulness


여러 개의 자아(self)가 있다는 것은 지킬과 하이드 같은 해리성 인격장애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모두 여러 개의 자아가 있다.


매 순간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직접 경험하는 '경험자아'가 있고,

이러한 모든 경험들을 프로세싱하여 결집돼 형성된 '기억자아'가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알아차리는 존재인, 변하지 않는 '배경자아'가 있다.


내가 정의하는 '나',

자기소개서에 작성하는 '나',

당신들 내가 누군지 알아? 할 때의 '나',

나는 이런 사람이지, 의 '나',

걔는 나랑 정말 안 맞아, 에서의 '나'.

이 모든 '나'는 전부 '기억자아', 'ego'이다.


내가 변한다, 나를 바꾼다고 하는 것은

기억자아, ego를 바꿔가는 과정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ego가 외부의 신호들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라고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무엇을 기억하는가? 내 기억은 객관적인가?



내가 직접 보고 겪은 것만 믿는다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내가 과거에 직접 보고 겪은 것이 정확하다고 할 수 있을까?


다니엘 케니만의 직장내시경 연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

'경험하는 자아'와 '기억하는 자아'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A그룹과 B그룹이 똑같이 비수면 직장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직장내시경 검사는 항문에 스콥(내시경)을 넣고 요리조리 돌려가며 병변이 없는지 확인하는데

스콥이 항문에 들어가 있는 것도 힘들지만 특히 스콥을 움직일 때 심한 통증을 유발한다.

A와 B 둘 다 동일한 시간 동안 검사를 했는데,

A는 검사 직후 스콥을 뺐고, B에게는 검사 후 빼지 않고 검사에 걸린 것과 같은 시간 동안 가만히 내시경을 넣고 두었다가 뺐다.


내시경 검사가 끝나고 통증의 강도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을 때,

놀랍게도 A가 훨씬 아팠다고 대답을 하였고, B는 덜 아팠다고 했다.

같은 검사를 나중에 또 할 생각이 있냐고 물었을 때에도 B그룹에서 또 하겠다고 하는 사람의 비율이 높았다.

B그룹이 검사를 더 편하게 기억한다는 의미이다.

고생을 2배로 했고 고통의 총량도 많은 B가 대체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경험을 하는 나''경험이 끝난 뒤에 기억을 하는 나'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간과하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겪는 모든 경험들을 다 통째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경험의 일부를 편집하고 경험마다 가중치를 다르게 두어 의미를 부여해 기억한다.


직장내시경의 경우 가장 아팠던 순간, 그리고 경험의 맨 마지막 부분에 가중치를 둔다.

따라서 가장 아픈 최악의 상태에서 검사를 마치게 되는 A의 경험이,

가장 아픈 순간을 똑같이 경험했지만 마지막에 좀 덜 아팠던 순간을 더 경험하며 마무리되어 고통이 희석된 B의 경험보다 더 큰 아픔으로 기억된 것이다.


고통의 총량으로 오차 없이 객관적으로 기억했다면, B의 경험이 A보다 훨씬 고통스러워야 한다.

이토록 우리의 기억은 나름의 시스템에 의해 조작적이다.






우리는 가장 짜릿했던,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기억하고 나머지 에피소드는 ego 형성에서 제외한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순간은 기억하고 중간의 여러 사건들은 흐릿하게 지운다.


엉망인 서비스를 받고 기분이 상했더라도 마지막에 좋았던 것을 기억하게 되고,

좋은 서비스에 기분이 좋았어도 마지막의 어그러짐을 크게 기억한다.


이런 이유로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만을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인간을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존재로 상정한 고전 경제학 이론은 한계가 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자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네가 맞네 내가 맞네 싸우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인간인 나는, 이런 부질없는 싸움을 오늘도 여전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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