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소통명상과정 5
당신들, 내가 누군지 알아?
꼰대 정치인들이나 하는 얘기인 것 같지만,
진짜 솔직하게 얘기하겠다.
나도 저런 생각을 꽤나 많이 했다.
왜소한 몸집의 여자로 살아가면서 나는 오랫동안 존재감 없이 살아왔다.
스타일의 문제인지 카리스마의 부재 때문인지 교수가 된 이후에도 학생 같아 보인다는 둥, 인턴인 줄 알았다는 둥 칭찬인지 디스인지 모를 공격들을 셀 수도 없이 많이 받았다.
동료 교수들과 식당에 가면 서빙하는 분들이 나를 비서로 알고 아가씨~ 하면서 나에게 주문 어떻게 할지를 묻고는 했고,
전공의, 전임의들을 데리고 가도 남자 전공의를 상석으로 안내하고는 했다.
행사에 가면 한참 뒤에 "아이고, 교수님이셨어요." 하면서 태도가 돌변하기도 했다.
교수라고, 윗사람이라고, 나이가 많다고, 태도가 바뀌는 것도 참 싫었지만
어쨌든 내 마음속에는 나를 제대로 봐주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내가 누군지 알고 그래?" 하는 억울한 마음이 생겼던 것이 부끄러운 사실이다.
그래서, 당신이 누군데?
라고 하면 내 머릿속에 돌아가는 여러 일화들, 그게 ego이다.
그것들은 내가 직접 경험한 것들이고 지어낸 얘기가 아니지만,
사실은 이것들은 모두 내가 만들어 낸 스토리에 불과하다.
우리는 지금도 수도 없이 많은 경험을 한다.
오감, 고유감각, 그리고 내부감각에 의해 전달된 모든 자극과 상태가 우리 몸으로 쏟아진다.
우리의 몸은 그것들 중 일부만 취해서 편집을 하고 의미를 부여해서 스토리를 만든다.
수많은 경험 중에 살아남아 우리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것이 일화 기억이다.
스토리를 만드는 것, 그것이 뇌가 경험을 기억하는 방법이다.
"나는 어제 점심에 친구들과 냉면을 먹었다."는 것은 하나의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다.
친구들과 만나기 위해 차에 타서 시동을 걸고 액셀을 밟고 바뀐 신호등을 보고 브레이크를 밟고 주차장을 찾고 주차를 하고 친구를 만나 인사를 하고 메뉴를 살피고 주문을 하고 냉면을 자르고..."
많은 경험이 생략되고 친구들과 냉면을 먹었다는 episode 만이 남아 기억된다.
그리고 이 episode들이 축적되어 ego가 만들어진다.
남들에게 얘기하기 위해 나의 의식에 의해 선택받지 못한 많은 기억은 소멸되고 잊힌다.
소멸된 기억은 실제로 내 경험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다만 사라진 것일 뿐.
우리 뇌는 깔때기처럼 경험자아가 겪은 일들 중 일부만 자의적으로 뽑아서 기억자아를 만든다.
ego, 기억자아는 한낱 스토리에 불과하다.
이러한 ego에 집착하는 것이 아집이다.
살면서 우리가 겪는 불행과 괴로움, 고통의 대부분은 아집으로부터 온다.
내가 마음대로 편집한 스토리에 불과한 그것을 놓지 못하여 스스로를 고통에 빠트린다.
나라는 사람이 어느 학교를 나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규정짓는 것,
그것은 자의적으로 편집한 스토리로서의 ego이다.
나라는 사람의 전부가 아니다.
내가 규정한 ego에서 자유로질수록 덜 불행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