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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었던 그녀

by 끌레린

언젠가 여행지에서 특색 있는 서점에 간 적이 있다. 그때 내 눈에 띄었던 책은 바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죽음과 떡볶이. 이 두 단어가 나란히 놓인 제목에서 나는 모순처럼 느껴지는 우리의 삶이라는 것에 대해 깨달았다. 무너지면서도 일어서고, 포기하면서도 내일을 기약하는, 그 모순 속에서 우리는 힘들게 살아간다는 것을.


60만 부가 팔렸다는, 30여 개 나라에 번역되었다는 기록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그 책을 펼친 수백만 명의 독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나만 괴로운 게 아니었구나'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는 것이다. 세계의 마음 아픈 사람들이 그녀의 마음을 구입해 깊은 공감과 위로를 받았다는 것이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책 한 권만으로 60만 부 판매, 30여 개 나라에서 번역 출간, 드라마화 확정까지.

이토록 화려한 수식어를 이끌었던 90년생 젊은 작가 백세희가 이번 주에 35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방혜린 작가님 글을 보고 알게 되었다).

그녀의 마지막 책은 하필이면 바르셀로나의 유서.

유서... 그 단어 앞에서 우리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출처: 백세희 작가의 인스타그램

그녀는 자신의 상처를 글로 썼다.

우울증과 불안증으로 오랫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느꼈던 외로움을,

세상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절망을,

그럼에도 살아내야 한다는 무게를.

그 솔직함은 그녀에게 독이 되었을까, 약이 되었을까.


글을 쓰면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했지만, 완치하지 못한 그녀.

치유 과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기에 그토록 많은 사람에게 공감받고,

힘든 청춘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 것이 아닐까?

그녀가 남긴 문장들은 지금도 누군가의 가슴에 닿아 "오늘 하루만 더 버티자"라고 속삭이며 용기를 주고 있을 것 같다.


얼마 전 임윤찬도 한국의 치열한 경쟁을 언급하며 학창 시절이 지옥 같았다고 했다.

세계가 인정한 천재 피아니스트조차 지옥이라 말한 그곳에서, 우리는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어른들이 잘못 만들어놓은 사회에 갇혀 힘들게 삶을 살아내야 하는 젊은이들이 안타깝고, 그들에게 미안하다.

지나친 학업과 수행, 친구들 간의 경쟁으로 고통받았고, 고통받고 있는 내 아이들에게도.

미안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그 말밖에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부끄럽다.


바야흐로 가을이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청명한 가을 햇빛 아래서 책장을 넘기고, 붉고 노랗게 물들어 가는 나뭇잎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어야 할 계절.

하지만 우리는, 우리는 정말 그런 삶을 살고 있는가?

정해진 일정에 정신없이 쫓기고,

남들의 성취에 열등감을 느끼며,

남들의 비웃음에 상처받으며 급박하게 쫓아가는 메마른 삶.

그 삶 속에서 한 젊은 생명이 멈춰버렸다.

35년. 너무 짧다. 그래서 더 아프다.


하지만 그녀는 마지막 순간에도 누군가를 생각했다. 장기기증을 통해 다섯 명의 삶을 살렸다고 한다(주 1).

죽어서도 누군가에게 삶을 주는 사람.

떡볶이를 먹고 싶다고, 살고 싶다고 외쳤던 그 마음이 이제는 다른 이들의 심장으로 뛰고, 다른 이들의 숨을 통해 세상을 느끼게 되었다.


한동안 그녀의 웃는 얼굴이,

그녀가 남긴 문장들이,

그녀가 살리고 간 다섯의 생명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것 같다.


우리가 조금만 더 따뜻했다면,

세상이 조금만 덜 가혹했다면,

그녀는 지금도 어디선가 떡볶이를 먹으며 웃고 있지 않았을까.


그녀를 생각하며 최규승 시인의 '망각'을 덧붙인다.


망각

꽃이 피면 생각난다 비가 오면 생각난다 바람이 불면 생각난다 책장을 넘기면 생각난다 새 칫솔을 꺼내면 생각난다 달력을 넘기면 생각난다 컴퓨터를 켜면 생각난다 분리수거를 하면 생각난다 문을 잠그면 생각난다 라면을 끓이면 생각난다 커피를 마시면 생각난다 드라마를 보면 생각난다 채널을 돌리면 생각난다 연필을 깎으면 생각난다 문을 두드리면 생각난다 상향등을 켜면 생각난다 노래를 부르면 생각난다 청소기를 돌리면 생각난다 머리를 감으면 생각난다 잠자면 생각난다 망하면 생각난다 마음을 비우면 생각난다 생각을 비우면 생각난다 생각을 하면 생각난다 생각하지 않으면 생각나지 않는다

-최규승, 최규승 시집

세상이 괴로웠지만 세상을 사랑했고,

세상을 위해 많은 유산을 남기고 떠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편안한 마음을 얻으시길.


(주 1) 백 작가의 부고는 17일 한국장기조직 기증원의 보도자료를 통해 알려졌다. 기증원은 지난 16일 경기 고양시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에서 백 작가가 뇌사 장기기증으로 심장, 폐장, 간장, 신장(양쪽)을 기증해 5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했다고 밝혔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24129.html


* 모든 이미지는 고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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