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일 년 전의 일이다. 작년 가을에 둘째 아이 가구를 바꿔줄 일이 생겼다.
남색의 세련되고 값나가는 가구를 마다하고 온통 흰색으로 자신의 방을 꾸미고 싶어 하는 아이의 소원을 들어준 것이다. 중학교에 올라가는 시기라 큰 마음을 먹고 책상, 침대, 옷장, 화장대, 하얀 털 러그까지 모두 바꿔주었다. 한 곳에서 사면 편했을 터인데, 아이의 까다로운 안목에 맞는 화장대를 찾는 여정은 길고 험난했다. 온·오프라인 매장을 뒤지던 그 모든 과정이 끝나고 드디어 주문에 성공했다. 진이 다 빠졌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배송시간이 걸리는 가구 특성상 한참 뒤에야 배송이 오는 데다가, 배송기간이 늦춰졌다는 문자연락을 받았다. 문제는 그 예쁜 화장대는 언제 오냐고 매일 닦달하는 아이에게 내가 지쳐버린 것. 나는 다소 심통 맞게 왜 늦춰진 건지 문자를 보냈고, 전화연락을 받았다. 활기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모님, 안녕하세요?"
배송 기사는 사정이 생긴 이야기를 청산유수처럼 매끄럽게 했고, 나는 어느새 자연스레 납득하고 있었다.
배송 당일 드디어 벨 소리가 들렸다. 문을 얼른 여니, 키 작은 남자가 자신보다 커다란 화장대 박스를 카트에 싣고 서 있었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턱 주변에 하얀 수염이 난 그는 반팔,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배송원은 짐을 나르면서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혀 듣기 싫지가 않았다. 그 얼굴에 환한 미소가 새겨져 있어서였을까?
그 배송 기사는 가구를 조립하면서 사용할 때 알면 유용한 정보까지 꼼꼼히 알려주었다. 놀랍게도, 얼마 전 책상 침대 옷장 세트를 배송한 대형 가구회사의 젊고 무뚝뚝했던 남성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마치 수다스러운 동네 아줌마처럼, 그는 자신이 경험한 집들의 얘기 보따리를 재미있게 풀어냈다. 가구 조립이 끝나자, 사진까지 야무지게 찍고는, 수고의 의미로 내민 음료수를 기분 좋게 마셨다.
그는 이내 박스와 끈뿐만 아니라, 내가 버리려고 현관문 앞에 쌓아 놓았던 재활용 쓰레기까지 모두 내다 주겠다며 챙기는 것이 아닌가. 당황한 나는 그 아저씨를 따라나섰다.
그는 헤어질 때까지 재활용쓰레기장에서 삶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가볍지만 묵직하게 펼쳐 놓았다. 가구 배송을 하면서 아이들을 모두 대학에 보냈다는 그의 경험. 그날 하루 그에게 필요한 행복의 몫은 가구 두 건의 배달이면 충분했다. 배송기사가 체득한 그만의 행복론은 내 마음을 움직였고,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가 떠난 뒤에도 긴 여운과 함께 마음 한편이 오랫동안 따뜻했다.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손을 빌려주는 사람.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마음은 힘든 노동의 삶 속에 자신만의 행복을 찾은 그만의 철학일 테다.
물질적 풍요 속에 살고 있는 나는 과연 그보다 행복한가?
일의 의미와 즐거움, 행복감을 느낄 새 없이 의무감으로만 일하고 있지 않았나?
수많은 사람들이 내 인생을 스쳐 지나간다.
그중 대부분은 잊혀진다. 하지만 그는 오랫동안 기억될 사람이 되었다.
그가 상대방을 잠시라도 귀하게 여긴 그 진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소박하고 단순하고 명료한 삶의 방식이야말로 온전히 자기 행복 속에서 살아가는 지혜로움이지 않을까?
진정한 운수 좋은 날이란, 좋은 일이 생기는 날이 아니라 좋은 사람을 만나는 날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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