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로 다시 태어나다

1주 차, 나는 누구인가

by 끌레린

2017년, 나는 한국에 돌아와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본격적으로 스타트업 창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선배들과 만나 주력 상품을 정하고, 시장조사와 사업전략을 짜서 유명한 VC 대표를 만나 상담을 받았다. 생산공장 후보도 알아보고 의논했다. 그러던 중 전 직장에서 빅데이터 마케팅 업무를 하면서 알게 된 지인의 끈질긴 권유에 넘어가 마케팅 전략 컨설팅사를 공동 창업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여유로운 삶은 끝이 났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1시간 넘는 거리를 출퇴근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회사를 세팅해야 했다.


그 무렵,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스타트업 창업자 '페친'들이 소회를 담은 글을 본격적으로 공유하기 시작했다. 바로 '브런치'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서였다. 그들이 브런치에 올리는 글을 페이스북에 공유하면 꽤 멋있어 보였다. 실리콘밸리 창업자들 같았다. 그들의 글을 지켜보며 몇 개월이 흘렀을 때, 나도 자연스럽게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문적인 글로 인정받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었다.

마침 기업 부설 연구소를 만들고 연구소장을 맡게 되면서 소비자 신문에 칼럼도 연재하기로 한 상황이라, 브런치에 입성하는 것이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첫 소재로 그 당시 세간의 관심을 모으던 마켓 컬리와 CU편의점의 신선식품 도입 및 운영을 주제로 잡아 첫 칼럼을 썼다. 이 내용을 페이스북에 카드뉴스로 만들어 올리고, 원고는 브런치에 투고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합격 통지를 받았다.


기뻤지만, 불행히도 나에게는 더 이상 원고를 쓸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내 전문 분야인 마케팅 전략에 대한 글을 브런치에 기고하겠다는 원대한 계획도 세워놓았지만, 단 한 편을 올린 뒤로 실천하지 못했다. 회사 일과 가정 일을 병행하는 것이 버거워졌기 때문이다. 그 당시 대표이사의 요구를 맞추지 못한 직원들은 계속 그만두었고, 남아있는 나를 안쓰러워했다. 어린 둘째 아이는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유치원에 매일 저녁 늦게까지 홀로 남아 있어야 했다. 학원이 끝난 뒤에도 그다음 수업시간까지 계속 남아 자리를 지켜야 했다.

그러던 중, 아이 생일이 되었다. 아이 생일이라 퇴근시간에 맞춰 퇴근하겠다고 미리 보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늦게까지 대표의 손님들을 위해 바쁘게 뛰어다녀야 했다. 밤에 귀가하던 도중, 운전대를 붙잡은 채 눈물이 터져 나왔다.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 내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스타트업을 창업한 지 얼마 안 되어 벌어오는 돈도 적었고, 신뢰할 수 없는 사람과 계속 함께 하고 싶지 않았다. 창업을 하고 싶어 택한 길이었지만, 이런 창업의 길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사업은 기대했던 것보다 빨리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 '천억' 규모의 고객을 유치해 놨으니 걱정 말고 오라고 큰소리쳤던 대표의 말은 거짓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차라리 마음 맞는 선배들과 창업을 했었더라면…' 깊은 후회가 몰려왔다. 어떻게든 버티고 싶었지만, 그곳에 남아있는 것이 나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결국, 내 지분을 모두 포기하라는 대표의 말을 따라 아무 말 없이 지분 포기각서를 쓰고 회사를 나와 버렸다. 내 뒤를 이어 들어온 사람도 몇 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고 연락이 왔다. 그 대표 밑에서 가장 오래 버틴 사람이 나라는 데서 나의 끈기와 인내를 자족하는 것으로, 나의 스타트업 창업은 마무리되었다. 그 후로 브런치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큰 아이가 무사히 특목고를 졸업해 대학생이 되고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2024년, 아이 입시와 오랜 독박육아로 지친 나는 몇 개월을 꼼짝도 하지 않고 집에서 칩거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되었을 때, 글을 쓰고 싶다는 본능이 아주 오랜만에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마침 동네 도서관에서 수필 쓰기 모임이 생긴 것을 알자마자 바로 지원했고, 매주 과제로 제출한 수필을 브런치에 다시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전문서와 칼럼, 논문에 익숙하던 나에게 경수필은 생각 외로 쓰기 어렵게 느껴졌다. 중수필이 더 쉽고 잘 맞았다. 내 글은 경수필이라기엔 지나치게 딱딱했고, 독자가 쉽게 이해하도록 친절하게 알려주는 설명조의 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매주 꾸준히 글을 쓰며 3개월을 보냈다.


그다음 해인 2025년 1월, 나는 큰 수술을 받았고, 내 모든 일상은 멈추었다. 상실감에 가득 차 요양하던 중에 우연히 브런치에서 알게 된 작가들과 함께 공저책을 쓰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지난하고 치열한 글쓰기와 평가 및 수정 과정을 통해 수필의 모습을 갖춘 글을 쓸 수 있게 되었고, 무더웠던 7월에 책을 출간했다. 감히 수필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나의 내면을 성찰한 글을 쓰는 데 꼬박 10개월이 걸린 것이다. 그동안 정신은 성숙해졌지만 버티던 몸은 마이너스 상태로 나빠져갔다. 새벽까지 글을 쓰는 것이 몸에 가장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도 원했던 첫 책은 내가 원한 형식은 아니었다. 리더의 가이드를 따라 글 쓰며 사고하는 방법을 배웠지만, 내가 좋아하는 글과는 거리가 있었다. 현학적인 철학 에세이가 탄생한 것이다. 비록 진성성은 녹여내었지만… 내가 멋모르던 시절, 어려운 용어를 쓰고 잘난 체하듯 말하던 것과 별 차이가 없는 글. 유명한 철학 고전 석학을 끝없이 인용한 글. 참고로, 고명환 작가는 비슷하게 고전문헌을 인용한 책을 썼지만 쉽고 재미있었는데, 내 책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나의 진정성 덕분에 책을 읽다가 울었다는 지인의 평도 있었지만.


수필책을 출간하는 과정에서 내가 원하는 글을 제대로 쓰려면 필요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체력이었다. 꾸준한 글쓰기 루틴을 유지하는 정신력과 의지 역시 중요했다. 몸과 정신이 건강하지 않은 채 글을 쓰면 자꾸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글을 쓰기 위해 수없이 많은 책들을 읽고 생각하고 깨달은 것을 정리해 글을 쓰다 보면, 정신이 날아갈 듯 홀가분해지는 경험,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경험을 여러 번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글로써 치유받는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체력이 떨어져 한동안은 쉬어야 하는 사이클이 반복되었다. 나는 몇 시간 동안 글 쓰는 것은 힘들지 않았다. 얼마든지 즐겁게 집중해서 글을 썼다. 문제는 글을 쓴 뒤 진이 다 빠져버려서 일상생활을 제대로 하기 힘든 것이었다. 한 시간 정도 글을 쓰면 혓바늘이 서기 시작한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글을 통해 성장하고, 작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출간 이후 가을에는 브런치북에 투병 에세이를 완성했다. 몇몇 지인 작가들에게 글이 너무 좋다는 연락도 받고, 출판사에 투고하라는 격려도 받았다. 브런치북 공모전에 공모하려고 했지만, 시간을 못 맞춰 결국 출품하지 못했다.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실망스러웠다. 내 몸과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는 것이 너무나 한탄스러웠다.


나는 '쉽고, 재미있고, 독자의 눈앞에 그림이 그려지듯 묘사된 글'이 좋다. 내가 써야 할 글의 지향점이다. 하지만, 이런 글을 자유자재로 쓰기 위해서는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아니, 연습만으로는 부족하다. 제대로 된 가이드에 목이 말라 있던 중, 11월에 소설모임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글의 표현력을 발전시키고 싶었던 나는 에세이보다 문장력이 높다고 보이는 ‘소설’ 모임에 동참하기로 했다. 소설을 읽고 분석하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어린 시절 이후로는 소설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온통 전공 서적 위주로 책을 읽으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업계 트렌드를 쫓는 데 급급했다. 소설을 읽을 시간이 없었다. 아니, 소설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현대 소설을 너무나 몰랐기에, 소설모임을 잘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한 번 읽기 시작하니 작가의 생각과 메시지에 대해, 글의 플롯에 대해, 그리고 매력적인 캐릭터에 대해 생각하고 분석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원래 소설 같은 문학작품, 특히 고전문학을 좋아했었다는 것을. 중학생이 되자 공부하라며 책을 읽지 못하게 했던 부모 몰래 틈틈이 고전명작을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문학작품을 읽지 못한 지 너무 오래되어서, 내가 소설을 좋아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에 대한 애정이 다시 살아나며,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일들, 잊었던 예전 기억들이 소환되었다. 큰 아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특목고에서 일촉즉발의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특목고에 대한 교육서보다는 오히려 '스카이캐슬' 같은 소설이 더 낫겠다고 생각해 특목고를 배경으로 한 소설 초안을 조금이나마 끄적여 놓았던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엄마, 평생을 고생한 사연 많은 우리 엄마의 일생을 소설로 남겨드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틈틈이 엄마의 이야기를 기록해 놓았던 자료도 있었다.


어떻게 소설을 쓰고자 했던 내 간절한 마음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릴 수 있었던 건지 놀라웠다. 그만큼 내 삶은 퍽퍽했고, 내 삶에 내가 없었던 것이다. 나를 제외한 가족을 주인공으로 나는 배경으로 전락한 채 내 모든 시간이 흘러갔다는 반증이리라. 소설 모임 과제를 하고, 지인 작가들과 함께 만든 문예지에 기고를 하기 위해 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단편 소설을 습작해 보았는데, 예상외로 작가들의 반응이 좋았다. 가장 많이 들었던 평가는 “소설 같다”는 것이었다. 다들 초보인지라, 소설 작법서를 잠시 훑어보고 끄적여 본 내 글이 형식적으로 소설이라 부를 만했던 것이다. 예상치도 못하게 내가 주인공인 소설을 먼저 쓰게 되었고, 이를 브런치에 올렸다. 그리고 나를 팔로우해 주고, 내가 팔로우하는 작가들이 소설 쓰기 과제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정현 작가의 글쓰기 공동체에 뒤늦게 합류하게 되었다.


2026년은 온전히 나를 위한 해로 살고 싶다.

물론 가족 간의 갈등이 없도록 해야 한다. 작년에 내가 아픈 몸으로 글을 쓰고 책을 냈던 시기에, 한국에 오랜만에 귀국한 남편은 혼자서 느긋하고 여유 있게 지낸 해외생활보다 훨씬 더 빡빡한 국내에서의 회사 생활, 그리고 아버지이자 가장의 역할을 오랜만에 해야 하는 가정생활에 힘들어했다. 그리고 얼마 전, 자신도 하고 싶은 것을 찾아 휴직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해버렸다. 그러니 내 글쓰기와 작가 되기 목표, 그리고 가정생활을 어떻게 잘 양립할 것인가가 나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과제가 되어버렸다. 어떻게든 해나가고 싶다. 이를 위해서는 몸을 건강하게 회복시키고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 내가 할 일,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명확하다.

바로 글을 계속 써 나가는 것이다.

교육 분야 전문서를 에세이 형식으로 퇴고해 출판사에 투고할 것이고, 전자책을 출간할 것이다. 교육 분야 전문서가 출간되면 바로 투병 에세이도 출판사에 투고하고 싶다.


그리고 그 와중에 소설을 계속 습작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나와 가족, 주변 지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여러 소설을 써서 출간하는 것이다. 여성차별, 교육문제, 그리고 기후변화가 내가 말하고 싶은 소설의 주제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참고할 소설책들을 꾸준히 공부할 것이다.


올해부터는 공모전이라는 분야에도 처음으로 도전해보고 싶다.

좀 더 적극적으로 출판을 위한 행동을 할 것이다.

나를 위한, 내가 리드하는 독서모임도 꾸준히 해나갈 것이다.

주변에 휩쓸리지 않고, 내가 원하는 '진정한 작가 되기'를 꾸준히, 즐겁게 이루어 내고 싶다.

가끔은 일상을 떠나 자연 속에 들어가 글을 쓸 것이다. 낯선 세계에서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좋다는 것을 작년 가족 없이 떠난 여행에서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나 또한 죽는 순간까지 글을 쓰는 작가이고 싶다.

작가로서 성공하고 싶다. 글로 치유받는 인생을 살고 싶다.

그렇게 된다면 너무나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누구인가 #작가 #예비소설가

*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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