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 편 2강. 사진 묘사하기
괌의 호텔에 도착하자 마자 짐을 풀고 투몬 비치로 달려 나왔다. 투몬 해변에서 바라본 바다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하고 꿈꾸었던 유토피아 모습 그대로였다. 자연은 주인공, 인간 군상이 조연인 인상주의 대가의 초대형 그림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색색깔로 물든 드넓은 하늘이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노을은 바다 오른편을 뒤덮고 찬란한 빛의 향연을 내뿜고 있다.
해는 구름 뒤로 이미 숨어버렸지만, 수평선 너머 남아 있던 노란 빛줄기가 자신을 봐달라고 외치며 존재감을 보여준다. 노란 빛 줄기는 점차 상큼한 오렌지 빛 띠로, 사랑스러운 분홍색 빛 뭉치로 변해가고 있다. 복숭아의 달콤함이 하늘에 번져 있는 듯하다. 수평선 위에는 나무들이 일렬로 선 숲의 그림자처럼 회색 빛 구름들이 옹기종기 정렬해 있다. 구름 모양은 가지각색이다. 모서리가 동그랗게 다듬어진 삼각형 형태의 구름들이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나열되어 독특하다. 삐쭉 빼쭉한 삼각 구름들 뒤에는 황금빛 햇살이 따스함을 뿜어내며 떠나기 싫은 아쉬움을 드러낸다. 노란 햇볕은 내 심장을 간질이듯 어루만져주었다.
황금빛 아래는 핑크색, 그 위로는 파스텔톤 연보라색으로 변한 하늘.
갑자기 저 벨벳같이 폭신하고 황홀한 대상을 붓으로 칠해보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내 실력으로 과연 표현할 수 있을까?
빛무리 위로는 북아메리카 대륙을 옮겨온 듯한 구름이 저녁을 몰고 왔다. 회색 빛이 섞여 진해진 하늘색 구름은 왠지 성이 난 것 같아 무섭다. 대륙 같은 큰 구름 아래에는 더 진한 회색 빛 구름이 연기처럼 슬슬 흘러나와 하늘 중앙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구름 아래면은 세찬 바람에 흔들리는, 꽤 길게 길러진 구불구불한 턱수염 같다. 턱수염 위쪽 입에서는 가느다란 회색 연기가 흘러나와 흩어지는 것이 용의 머리같다. 평소엔 폭신폭신하지만 원래부터 광폭한 성격의 용이다. 머리에는 분홍색 뿔까지 나 있으니 용의 머리가 맞다! 구름 위쪽 가운데 있는 분홍색 눈은 화가 났지만 서글퍼 보인다.
갑자기 옛날 옛적 담배 피우던 호랑이의 눈이 생각난다. 용머리 구름이 입에서 내뿜는 실 같이 얇고 가느다란 구름들은 기다랗고 단단한 몽둥이로 변해 주황빛 햇빛을 가로질러 막아섰다. 호랑이가 두툼한 곰방대로 담배 피우는 모습을 재현한 것 같다.
용머리 구름은 어둠을 몰고 오며 더 진한 회색으로 아래를 덮어간다. 차가워 보이지만 손을 대면 의외로 따뜻할 것같기도 하다. 용머리 밑 구름은 밑부분에 연한 회색, 가운데 진한 회색, 둘레에는 하얀 빛무리로 빛과 어둠의 명암을 뚜렷하게 나타낸다. 작은 동물의 상반신 같은 구름이 두 개 보이고, 오른쪽 맨 끝에 있는 구름은 산의 모양새를 갖추었다. 여러 구름 밑, 지평선에 닿아 있는 긴 구름 띠는 빛의 영향을 받아 연한 회색과 핑크색이 뒤섞여 몽환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몽유도의 풍경 같아서, 신들의 세상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용머리 구름을 지나 왼편으로 눈을 돌리니, 네 개의 구름이 붙어 있다. 용머리 구름보다 더 두텁고 밀도가 높은 구름 집단이다. 오른쪽 위 구름은 인상주의 화가 모네가 붓으로 마무리를 터치한 귀족 여인의 곱슬곱슬한 머리 같다. 두텁게 머리를 땋아 올렸지만 잔머리는 바람에 흔들리며 하얗고 밝은 아우라를 머금은 귀족 부인 옆얼굴같은 자태다. 그 옆으로는 가장 거대한 구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머리 왼쪽으로 갈수록 더 진한 청색으로 물든다. 귀족 여인의 머리 구름을 단단히 받치고 있는 밑구름은 짧고 굵은 나무 구르터기처럼 굳세어 보인다. 작은 나뭇가지가 남은 나무 둥지 같다. 한 편으론 톡 튀어나온 꼭지가 주전자 주둥이같다. 또 한편으로는 가부장의 권위에 잔뜩 억눌려, 원래도 가녀리고 동그란 어깨가 머리카락 속으로 완전히 숨어든 모양새다. 무언가를 간절히 기도하는 여인 같기도 하다. 손으로 만지면 한없이 부드러울 것 같은 솜털 같은 그녀를 위로해 주고 싶다. 그녀는 무엇을 기원하고 있을까? 나는, 여기에 서서 무엇을 간절히 원하는 것일까?
귀족 여인 구름 왼편으로 펼쳐진 구름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모든 발을 쫙- 펼친 문어의 서늘한 밑부분 같다. 위쪽에는 시커먼 색 구름이 다리 사이사이로 뭉게뭉게 피어올라 적에게 쏘아대는 먹물이 번진 모양새다. 중심에는 새하얀 몸통과 빨판까지 붙어있는 문어 다리 모양이 두드러진다. 만지면 단단하고 매끄러울 것 같은, 차가운 대리석면 같은 그 거대한 구름은 왼쪽으로 갈수록 더 어두워지고 얇게 흩어지듯 하늘에 번져 있다. 비를 몰고 올 것처럼 점점이 번져, 먹색 수묵처럼 펼쳐진다. 어찌 보면 핵폭탄이 터져서 만들어진 구름 폭탄 같기도 하다. 곧 장대비가 오려나? 순간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라를 들은 것처럼 온몸에 소름이 돋아난다.
그 밑에 있는 구름은 코랄색과 섞여 세련되고 얌전한 자태를 뽐낸다. 분홍색 노을을 배경으로 어두운 붓터치가 점점이 찍혀서 오묘한 색상이 된 구름이 즐겁게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어둡지만 가벼워 보이는 그 미묘한 구름 밑으론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아 한없이 까만 수평선이 내 마음을 축축하게 만든다. 위험의 전조처럼 낮고 느린 첼로곡이 나를 감싸 누르는 것 같다.
눈을 들어 구름 뒤편에 간간이 보이는 드넓은 하늘을 본 순간, 내 눌렸던 숨이 갑자기 확 트인다. 숨을 깊게 들여 마시자 짭조름한 바다내음이 폐로 몰려온다. 저 구름과 노을은 하늘이라는 배경이 있기에 돋보이는 것이다. 아직 깜깜하지 않은 새파란 하늘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맑고 깨끗하고 순수한 모습으로. 이제 햇무리가 완전히 사라지면,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을 무섭게 바꿔버릴 것이다. 인간이 자연을 그대로 둘 때는 어린아이 같이 천진하지만, 비뚤어진 욕망을 보여줄 때는 어김없이 노성을 질러 인간들을 겁에 질리게 하고 일깨워준다.
구름 밑에 평화롭게 펼쳐진 저 바다는 또 어떠한가. 바다에서 흘러 나오는 밝은 리듬에 나는 감탄의 한숨을 내쉰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해의 끝무리는 금이 녹아 흘러내리듯 바다의 한 편을 물들이며 한 폭의 인상주의 그림을 완성해 낸다. 비록 구름 밑에 깔려 작아 보이지만, 괌 해변의 주인공은 금빛 비늘이 일렁거리는 저 바다가 틀림없다. 조금 더 일찍 도착했다면 구름부터 바다까지 온통 황금빛으로 눈부시게 반짝이는 물비늘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끊임없이 반복되는 잔물결의 속삭임이 귓가에 흐른다. 세상에 자신처럼 순한 존재는 없다고 항변하듯 조용히 움직이는 바다. 손을 대보면 세상에서 가장 매끄럽고 부드러울 것 같지만, 때때로 흰색 포말을 무섭게 뱉으며 고층빌딩 높이까지 파도를 내밷어 사람들을 아프게 때리며 모든 것을 순식간에 삼켜버리곤 한다. 미지근한 바닷바람이 내 얼굴을 어루만지며 소금기 섞인 촉촉한 공기를 코끝에 전해준다.
과제에 충실하고자 다시 바다를 바라본다. 저 멀리 왼편에는 핑크 빛을 머금은 먹구름 밑으로 검은 돌들이 울퉁불퉁 쌓여 있는 둑이 길게 늘어서 있다. 하늘과 구름과 바다 앞에서 ,인간이 만든 저 둑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문득, '저 둑까지는 얼마나 헤엄쳐야 도착할 수 있을까, 해변가를 따라 걷는 것이 더 빠를까'하는 의문이 든다.
괌의 바다는 황금빛을 머금고 쉼 없이 잔 물결을 만들어 내고 있다. 바다 저 멀리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부분은 환하게 빛나는 유토피아의 출입구인 듯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저 멀리 사라지고 있음에도 햇빛의 영향력은 내 발아래 부드러운 백색 모래사장까지 닿아 있다. 반짝반짝 빛나먀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용의 귀중한 비늘 같은 물결을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다. 거대한 물멍 속에 빠져 있다. 나 또한 물멍에 빠져든다.
하얀 드레스와 반바지를 입고 바다를 바삐 오가는 남매. 10살이 채 안 되어 보이는 누나는 치마를 살짝 들고 다시 해변가 모래밭으로 걸어 나온다. 고개를 숙인 이마 밑 얼굴에는 아마 웃음이 가득할 것이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파도 소리와 어우러져 흩어진다.
모래밭에 철퍼덕 누워 하늘을 찍고 있는 젊은 일행 네 명이 눈에 띈다. 흰색 반팔 블라우스를 입고 긴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여성은 동그란 어깨를 구부린 채 앉아 무념무상에 빠져 있다. 그 옆에서 긴 머리를 풀고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성은 앉아서 핸드폰을 보느라 여념이 없다. 아마도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SNS에 올리는 중이 아닐까? 이 한가로운 휴식을 자랑하고 싶어 마음이 급한 것이다. 모래밭에 매트를 깔고 누워있는 여성은 핸드폰을 보고 있다. 멀리서도 핸드폰 화면에 담긴 풍광이 보인다. 방금 내가 본 바다와 구름과 노을, 하늘이 그대로 담겨 있다. 오른쪽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있는 젊은이는 머리에 선글라스를 올려 귀뚜라미 눈 같은 뒷모습이 우스꽝스럽다. 역시 물멍 삼매경에 빠져 있다. 처음에는 남자인가 했는데, 운동을 많이 해 넓은 어깨와 두툼한 근육을 가진 여성임을 뒤늦게 눈치챘다. 남성 같은 건강한 육체를 가진 여성이라니, 그녀가 부러워진다. 저들 동양인의 세련된 모습을 보건대, 한국의 젊은이들이 아닐까 싶다.
그들의 오른쪽 끝에는 두 명의 어린아이와 아빠로 보이는 일행이 서 있다. 아빠가 작은 아이의 신발에서 모래를 빼 주고 있다. 역시 동양인이다. 젊은 일행 왼쪽 옆으로는 하얀 드레스에 왕골 가방을 메고 맨발로 서 있는 단발머리 여성의 늘씬한 모습이 보인다.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가득하다.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다. 그 동양인의 깔끔한 모양새를 보니 역시 한국 여성일 것 같다. 바로 옆 하얀색 옷차림을 한 아이들의 엄마 같다.
그 왼쪽 옆에는 온몸이 새까만 사람이 흰 티를 입고 어두운 색 모자와 선글라스를 머리에 쓴 채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있다. 역시 바다를 쳐다보면서. 얇은 티 아래로 앙상한 날개뼈가 도드라져 비쳐 보인다. 팔과 다리 역시 가늘다. 피부색을 보건대, 동남아시아인이거나 괌의 원주민일 것 같다. 어둠이 내려앉은 피부 덕에 하얀 사람들 옆에서 도드라진다.
노을 진 괌의 해변가에는 수영복을 입고 거닐거나 바다로 뛰어들어가거나, 바닷속에서 수영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 바다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해의 기운으로 따뜻한 바닷물 덕분에 추운 줄 모를 것이다. 발밑으로 밀려오는 따스한 물결이 발목부터 천천히 감싸줄 테니까.
바다로 다가가자, 밀가루같이 부드러운 모래가 발가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빠져나가며 간지럽힌다. 바닷가의 한가로운 풍경은 내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던, 날카롭고 모난 감정들을 단숨에 씻어낸다. 깊이 들이마신 바닷바람이 폐 속 깊이 스며들며 몸의 긴장을 풀어준다. 이제, 나도 바다속으로 걸어갈 차례다.
어떤 사진을 골라야 감각 묘사가 쉬울지 고민했는데, 묘사를 하다가 토 나올 뻔 했습니다. ㅎㅎ
1시간이 지났을 때 사람들 묘사를 하다보니 급하게 마무리했습니다. 수정 두 번 하고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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