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지 않을, 꿀 같았던 시간
입사 전엔 그렇게 재밌었던 마케팅은 1년 반 동안 들들 볶이며 일했더니, 이젠 진절머리가 났다. 종종 글을 썼던 블로그는 들어가보기도 싫었다.
퇴사 후 우선 한 달 간은 아무것도 안 하고 지친 몸을 회복하기로 다짐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바빴다.
대학 시절, 방학은 물론이고 학기 중에도 알바를 꾸준히 했다. 스물둘에 떠난 호주 워킹홀리데이 때에 잠시 자유를 만끽했지만, 일 안 하고 놀았던 기간은 9개월 중 고작 한 두 달 정도였다. 복학 후엔 주말 알바와 과제&프로젝트에 치여 살았다. 컴퓨터공학 전공이라 밤새서 코딩하고 과제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4학년 여름방학에 인턴으로 취업해서는 기말고사, 졸업작품 마무리와 회사생활을 병행했다. 그 와중에 전공 수업 신청해서 교수님이 운영하시는 회사 사무실에 가서 시험을 본 적도 있다. 오롯이 아무것도 안 하고 쉬며 빈둥거렸던 시간은 퇴사 후 한 달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유럽여행을 갔다올껄 하는 후회가 된다.
우선 못 잤던 잠을 실컷 잤다. 오죽하면 아빠가 죽은 줄 알았다고 중간에 깨울 정도였다.
집에서 뒹굴거리며 못봤던 미드와 책도 실컷 봤다.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와 지인들을 만나며 컨디션을 회복했다. 여행과 나들이도 다니며 자유를 만끽했다. 정말 꿀같은 시간들이었다.
회사다니면서 빠졌던 살은 한 달만에 원상복귀했다.
그렇게 한량처럼 한 두 달 생활하니 슬슬 불안해졌다. 실업급여를 받고 있었지만 이렇게 놀고 있어도 되나 싶었다. 일 중독은 어쩔수 없나 보다.
슬슬 채용공고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사실 회사를 그만두기 전 다른 회사에 온라인 마케팅 직무로 면접을 본 적이 있었다. PT면접,역량면접을 진행했는데, 대답을 우물쭈물 했다. 첫 회사는 보안을 강조했었기에 면접에서 경력사항 관련 질문을 하면 어디까지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막막해 두루뭉술하게 답변했고, 면접관의 꼬리질문에 난 속수무책 당했다. 게다가 중간에 팀을 옮기면서 마케팅보다는 관리 업무가 주였기에 경력이 애매했다. 면접에서 그야말로 탈탈 털렸다. 서류는 어떻게 붙었는지...의문이다. 내가 그 당시 면접관이었어도 당연히 날 떨어뜨렸을 것이다.
채용공고를 뒤적거리며 앞으로 뭘하면서 먹고 살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다시 마케팅을 하자니 벌써부터 지겹고, 전공을 살려 신입으로 취업하자니 코딩을 한지 너무 오래되서 자신이 없었다.
또 다시 진로 고민이 시작되었다.
좀 더 가까이에서
취업 준비하는 친구들을 도와주는 건 어때?
채용공고를 뒤적거리던 어느 날 전 회사 인턴 동기이자 나보다 먼저 퇴사했던 친구를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재취업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는 나에게 좀 더 가까이에서 취준생들을 도와주는 직무는 어떻냐고 이야기했다.
첫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신입 중 그나마 글을 잘 쓰는 것 같다며 간간히 온라인 취업상담이나 자기소개서 첨삭 등을 했던 적이 있었다. 운이 좋게도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의 피드백이 나쁘지 않았다. 친구가 그걸 기억해서, 취업상담을 권하며 나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격려해주었다.
막막했던 재취업에 희망이 보였다.
취업 전 학교 취업센터에서 상담도 받고 취업프로그램도 많이 참여해봤기에 어떠한 일을 하는지 알고 있었고, 내가 도움을 받았던 만큼 후배들에게, 취업준비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마침 이전 회사에서도 취업준비생 타깃으로 기획/마케팅을 진행했기에 연결성도 있었다.
알아보니 국가 공인 자격시험 중 <직업상담사>라는 자격증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직업상담사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