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의 서른에게> 리뷰
영화 <나의 서른에게>는 서른을 맞이하는,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이야기이다.
포스터에도 보이듯 원래 제목은 <29+1>로, 홍콩에서 10년 이상 인기를 이어온 연극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연극에서 주연이었던 팽수혜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한다.
서른을 앞두거나, 사회생활에 치어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 분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영화다.
보는 내내 공감되고 힐링되는 영화였다.
#1.
화장품 마케팅 회사에 다니는 임약군은 아침을 초단위로 쪼개며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서른을 앞둔 주인공이다. 영화 초반 출근길 버스에서 학창 시절 선생님이지만, 현재 보험설계사를 하고 있는 분을 만나게 된다.
버스 안에서 크게 떠들며 서른을 앞둔 여자에게 맞는 보험을 홍보하며 이런 이야기를 한다.
"여자는 나이가 들수록 가치가 떨어지거든.
계속 하강곡선이야"
- <나의 서른에게> 옛 선생님 대사 中
한국이나 홍콩이나 보험 파는 분들은 다 똑같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부터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비유되었다.
24일 크리스마스에 잘 팔리지만, 25일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가치가 떨어지고 인기가 없는 크리스마스 케이크.
요즘엔 세상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남자 서른다섯과 여자 서른다섯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차이가 있다.
#2.
임약군은 녹록지 않은 회사생활과 위태위태한 연애를 이어가는 도중, 집주인의 횡포로 급하게 방을 빼게 된다. 집주인은 주인공을 빨리 쫓아내는 와중에 얼른 결혼하고 남자 친구네 집에 들어가서 살라며 오지랖을 부린다. (집주인이 양아치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 남아 있는지, 방 구할 동안 임시로 지낼 집을 소개해준다.
그 집이 바로 다른 여자 주인공 황천 락의 집이다.
임약군이 일이 우선인 커리어 우먼이라면, 황천락은 해맑고 순수한 음반가게 점원이다.
그저 힘든 일이 있어도 웃고, 인생을 즐겁게 살고자 노력한다.
집 안 벽 전체를 사진으로 에펠탑을 꾸밀 정도로 파리에 가고 싶던 그녀는, 드디어 꿈꾸던 파리로 한 달간 여행을 떠나고, 그 집에 임약군이 잠시 머물게 된다.
임약군은 그 집에서 일기장을 통해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고 자신과 비교하게 된다.
#3.
임약군의 남자 친구는 주인공과 싸운 채 해외 출장을 떠나고, 임약군은 일하느라 정신없는 도중 아버지가 쓰러져 돌아가시게 된다.
이를 계기로 자신이 무엇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허무함을 느끼게 되고 자신의 회사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눈다.
사장님은 혼자 회사를 창업하여 결혼 대신 일을 선택한 커리어 우먼이었다. 사장님은 자신의 스토리를 이야기해주며 임약군에게 조언을 해준다.
"사람마다 자신의 우선순위가 있지.
선택을 했다면 결과도 따르는 법이야
선택한 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거지.
최선을 다하면 선택에 대한 후회나 원망이 없어.
그것이 행복해지는 길이야.
젊었을 땐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몰라"
- <나의 서른에게> 사장님 대사 中
#4.
황천락의 인생은 특별할 것이 없이 늘 평범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변변치 않은 직장에 남자 친구도 없는 그녀를 항상 걱정했다.
연애를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는 게 아닌데, 살을 안 빼고 싶어서 안 빼는 게 아닌데,
잔소리처럼 느껴지다가 어느 순간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 그녀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자신이 하찮게 느껴질 때가 있는가.
난 그래서 모든 일을 기록하기로 했다.
사소한 일이라도 상관없다.
이 모든 게 내 인생이니까"
- <나의 서른에게> 황천락 대사 中
그에 반해 임약군은 늘 치열하게 살았다.
현재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해 일찍이 직장에서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연애도, 일도, 가족도 모두 무너지며 한순간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난 나 자신이 하찮게 느껴졌던 적이 없었다.
매 순간 최선을 다 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이상하다.
발걸음을 앞으로 디디면 아무것도 없고 끝없이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 <나의 서른에게> 임약군 대사 中
누구나 한 번쯤 이러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목적도 목표도 모른 채 내가 무얼 하고 있나, 잘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임약군은 같은 나이인데 그저 해맑고 행복해 보이는 황천락이 궁금하고 부럽게만 느껴진다.
"서른이 되면 어른이 된다고 하잖아,
어른이 되는 건 뭘까?
난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어른이 된다는 건 행복한 날들이 줄어드는 거잖아."
- <나의 서른에게> 황천락 대사 中
황천 락은 사실 파리에 떠나기 전 유방암 말기를 진단받았다.
가장 친한 남자 사람 친구인 장한명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게 되고, 10년 넘게 일하던 음반가게를 그만두고 혼자 파리로 여행을 떠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맘껏 즐기게 된다.
"4월 3일이면 난 서른 살이 돼.
검진 결과를 받은 그 순간부터
내가 몇 살인지는 아무 상관없더라.
우리는 매일 죽음을 향해 걸어가니까
남은 시간이 얼마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가고 싶은 곳을 가면 되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행복했던 모든 순간을 기억하는 거지
인생은 우리 뜻대로 되진 않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살아가는 것뿐이야."
- <나의 서른에게> 황천락 대사 中
아침마다 각종 비타민을 한 움큼먹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임약군이 황천락의 일기를 통해 잠시 멈추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서른이란, 단순한 나이가 아닌 청년에서 중년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이다.
그저 해맑고 순수했던 20대와
많은 것을 책임져야 하는 40대 사이에서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고 나아가야 하는 30대.
그 시작인 서른 살이 가장 불안하고 막막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나도 몇 년 전 서른을 앞두고, 그 단어가 주는 무게가 참 무거웠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저 앞자리가 바뀔 뿐인데, 세상이 달라질 것처럼 막막하고 두려웠던 그때가 떠오른다.
이 영화는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인지, 막연한 불안함이 있는 청춘들에게 위로의 한마디를 건넨다.
너만 불안한 거 아니야
다른 사람들도 똑같아
잘하고 있어
꼭 올해 서른이 되는 사람들 만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보면 좋을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