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말할 것도 없지만, 나는 직업이 물질적 수단 외에도 마음과 정신을 반드시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었으면 했다. 교사의 일이 그 조건을 충족하는 일인지 알고 싶었다. 2017.11.2.
직업을 고르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기준은 경제적 수단 외 의미가 있는 일인가였다. '일에 무슨 의미가 있냐, 돈 많이 벌 수 있음 최고지'라고 한다면 돈 버는 의미 다음으로 중요한 가치를 생각해 보는 정도로 하면 어떨까. 의미가 있는 일이라는 건 그 일을 통해 개인적으로 충족되는 가치가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사로서의 일은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꽤 충족시켜 주는 편이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여러 가치가 있지만, 그중 한 가지만 들자면 나는 언제나 내가 너무 바보 같지 않은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일반적인 상식과 지식을 갖추었을 것으로 기대가 될 것이다. 교사의 일은 스스로 지적이고 싶은 마음을 채워준다는 면에서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부분이 있다. 뭔가를 잘 알고, 그걸 어렵지 않게 설명해 내는 지적인 나를 실현할 수 있다. 그러면서 어린 학생들의 공부에도 도움도 줄 수 있으니 나름대로 보람이 있는 업이다.
가르치는 일은 물 밑에서는 발을 바쁘게 움직여도 겉으로는 우아해 보이는 백조 같은 느낌이 있다. 처음 몇 년은 비교적 쉽게 백조인 척할 수 있었다. 백조처럼 자연스럽게 당황하지 않고 수업을 하려면 수업 전 날 진도 나갈 부분의 답지와 해설을 꼼꼼히 숙지하고 수준별 맞춤 학습지를 밤새 만들면 된다.
이십 대 후반에 처음 일을 할 때는 에너지와 체력이 지금보다 많았으므로 힘을 끌어모아 수업 준비를 열심히 했다. 사실 백조가 아니고 뱁새 같은 거였는데 그때 학생들이 수업이 정말 이해가 잘 된다고 얘기해 주곤 했다. 뱁새도 열과 성을 다하면 백조처럼 보이는 법이다.
그런데 이제 백조 아닌 것이 들통났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발을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지는 않고 떠 있기만 한다. 계속 떠 있기라도 하면 다행인데 발차기를 멈추면 가라앉기 시작하는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초심을 잃었을까? 이제 밤을 하루 새우면 이틀이 괴로우니 학습지를 매번 만들 수가 없다. 열심히 준비를 해도 그 주나 그 학기에만 반짝 효과가 있다는 걸 체감하니 수업 준비도 예전만큼 열심히 하지 않게 된다. 과목 특성상 매년 열심히 수업 준비를 해도 매년 교재가 리셋되니 솔직히 지치는 게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점점 대충 하는 자신이 실망스럽다.
이런 복합적인 감정 때문에 일을 잠시 쉬고 리프레쉬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서 처음 일을 할 때 가졌던 의미가 점점 색을 잃어가고 있다. 고인 물이 탁해지는 것처럼 이 또한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이제 일의 의미를 개인적 가치의 측면보다 적당한 사회적 소속감과 안정적 수입원이라는 측면에서 주로 찾고 있다. 그것들도 아주 중요한 가치이지만 충분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것을 배우고 시도해 보려는 계획을 구상 중이다. 나는 정교사가 아니니 사실 어디에도 매여 있지 않고 다른 시도를 해 볼 수 있다. 글 쓰는 일을 더 열심히 해 본다거나, 책을 많이 읽어보는 것, 다른 분야의 학문을 배우는 것, 강도 높은 운동에 도전해 보는 것, 문제 풀이용이 아닌 영어나 외국어를 익히는 것 등이 있다. 그런 것들을 다양하게 시도해서 삶의 질을 높이고 나만의 진정한 성장을 하고 싶다.
사실 기간제 교사로서는 하는 일은 앞으로도 지금과 크게 달라지는 부분이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의미가 있었지만 이제는 개인적인 지적 성장 측면에서도 플러스가 되는 부분을 잘 모르겠다. 경력 단절의 상태가 좀 두렵지만 그저 그런 이 마음으로 같은 일을 계속하는 것은 멀리 봤을 때 좋은 일이 아니다. 이제 학교 밖에서의 경험을 통해 마음과 정신을 지금보다 풍요롭게 만들고자 한다. 그러고 나서 다시 이 일로 돌아오면 일의 의미가 지금과는 또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