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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연 Mar 25. 2023

심심함에 피로함을 한 스푼씩

어느 중간맛에서

내가 살면서 자주 생각해 온 한 가지는 어디에도 진득하게 발을 깊이 넣기가 싫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사람이든 깊이 끈적하게 엮였을 때의 그 지진부진함과 여러 가지 미묘한 갈등과 번뇌 등이 너무 피곤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번에 처음 코로나를 앓으면서 오로지 혼자 일주일을 지내게 되었다. 그때 비로소 느껴지는 것은 내가 그동안 일과 사람 사이에서 극도로 피로함을 느끼면서도 공기처럼 그것들을 받아들이며 살았다는 것이었다. 정말로 피곤했구나. 주변 사람들과 상황들에 대해 가치부여를 하는 말들이나 꼭 이렇게 해야 한다 또는 절대로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 등의 원칙들이 정말 피곤했어.


혼자 있는 시간 동안 일종의 홀가분함을 느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그 모든 피로한 것들을 거름망에 깨끗하게 걸러내면 나는 행복할까. 가만히 있어보니 약간의 외로움과 여백 같은 심심함이 남았다. 심심함이 편안하다가도 당황스러운 침묵처럼 길게 이어지니 오디오를 채워 넣어야 한다는 강박이 또 스멀스멀 올라온다. 참 모순적이다.


모순적이지만 심심하게 지내는 나는  심심하지 않은 사람들을 주로 친구로 두고 있다. 남이 모는 차나 들고 있는 가방에 관심이 너무 많거나, 요즘 뭐가 유행하는지 빠르게 캐치하고 즉시 따라간다거나, 광범위한 사람들의 소문을 빠르게 아는 사람.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피로함을 느끼면서도 플레인 요거트같은 내 일상이 너무 밍숭하다고 여겨질 때면 그저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편을 택한다. 그런 외부적인 것들에 대한 관심과 수많은 말들을 어떻게 그렇게 매일 감당하는 걸까 신기하기도 하고, 피곤하긴 해도 나에게는 그런 게 조금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느 선까지 그것들을 받아들이며 좋은 리스너가 되어야 할지는 늘 고민되는 부분이다. 내가 나의 심심한 맛을 좋아하는 건지 싫어하는 건지 잘 구분이 안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조용히 지내고 싶다가도 이대로 조용히 없어질 것 같을 때는 자극이 필요하다. 불을 가까이 가져댔다가 너무 뜨거우면 띄어서 멀리 가듯이 그렇게 지내곤 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간헐적인 소통 방식으로 누군가와 깊은 우정을 나누기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필요악으로 여겨지는 피곤함을 적당히 어깨에 얹고 살아가는 게 보통의 날들이라는 생각이다. 뭔가에 깊이 엮이는 것이 싫다면 언제까지나 좀 외로울 것인데 그런 시간도 소중하니 헐값이 팔지 않고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심심함과 자극을 적당히 모두 가져야 하는 사람이니 그 자체로도 좀 피곤하다. 너무 우울하지도, 너무 들뜨지도 않게 지내는 것은 사실은 되게 예민한 감각이 필요하고 스스로를 읽어내는 일이라 쉽지 않다. 오늘도 그럭저럭 잘 지내기 위해 심심함에 피로함을 한 스푼씩 얹어 적당히 섞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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