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 무기력한 상태라고 생각한다. 뭔가에 열정을 쏟은 끝에 찾아오는 번아웃이나 슬럼프와 결이 비슷하고, 어떨 땐 체력의 고갈로 몸이 피곤한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무기력하다고 하기도 한다.
열심히 뭔가를 하는 것과 뭔가를 잘 해내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그 사이 간극이 오랫동안 잘 메워지지 않을 때 지치고 약해진 마음에 병이 드는데 그것이 무기력이나 우울이다. 극심한 무기력증은 최종적으로 살아가는 이유나 의미에 대해 너무 진지하게 묻게 하는데, 사실 살아가야 하는 이유란 없고 의미는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기에 그 문제를 물을수록 미궁에 빠지게 된다.
내가 극심한 무기력을 겪던 시점은 방향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였다. 아주 어릴 때부터 이유 없이 교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고 가르치는 일을 비로소 하게 되었지만, 다른 모든 일들이 그러하듯 지치는 순간은 금방 찾아왔다. 생계를 위해 의무적으로 계속 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곧장 그 일은 최악의 무엇이 되었다. 그런 생각은 그 당시의 나를 온종일 누워있게 했고 무기력함은 만성적인 것이 되었다.
지금도 일에 대한 부담감에 의해 종종 심각한 무기력함을 겪지만, 일을 끝내면 오히려 마음이 건강해지곤 했기에 그 반복되는 패턴을 그러려니 하다 보니 괜찮은 날들이 더 많아졌다. 그러고 보면 상반된 감정이 같은 종목에 공존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면 조금 덜 무기력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재작년에 한 학년을 마무리하고 그 해의 학생들을 다음 학년으로 올려 보내고는 생각했다. 나는 그 애들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그 애들은 나에게 양면의 동전 같았다. 당장에 이 일을 그만두고 싶게 만들다가도 이따금 퇴근길에 떠올리며 웃게 만들었으므로.
내가 이 일에 대해 언제나 한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가장 어려운 것이었다. 좋거나 싫은 감정이 한결같았다면 그리 힘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새삼스레 생각하게 된다. 어떤 일도 단면이 깔끔하게 드러나도록 싫거나 좋은 것은 없는 거였어, 양가적인 감정이 혼재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어하고.
어떤 감정이든 양면의 동전처럼 복합적인 것이다. 이왕이면 늘 긍정적이면 좋겠지만, 어떤 개인적인 순간에 찾아온 무기력이나 우울감을 깨끗하게 도려내는 것이 어렵다는 걸 인정할 필요가 있다. 무기력증, 우울증과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그냥 그것들을 '부정적인 것' 또는 '배척해야 하는 것' 정도의 간단한 표현으로 얘기하지 않는 것이 좋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그 안에 수많은 개인적인 상황과 필요가 녹아있다. 그것들을 소화시키는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시기가 누구에게나 존재하고 그것이 인생의 과정에서 꼭 겪어야 하는 무엇일 수도 있다.
긍정주의를 강요하지 말고, 그 감정 속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들여다보고 그 시간을 겪어내고 있는 사람을 참을성을 가지고 지켜봐 주면 좋을 것이다. 나 자신에게, 다른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