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것이 많지 않은 날을 살고 있을 때, 비로소 지금 내가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글은 비극을 위로하기에 좋아서 잃어버린 것들은 쉽게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곤 하지만 행복은 좀처럼 글이 되지 않는다. 나는 글을 쓰지 않은지 오래되었으니 어쩌면 행복하다. 어떤 것에도 크게 마음을 쓰지 않고, 관계에 지나치게 연연하지 않고, 지난 시간을 여유있게 돌아볼 수 있다. 대신 언젠가 잃어버릴 것들을 차곡차곡 쌓는 중일 것이다. 소중한 시간들을 잃으면 슬프겠지만 그건 그때 생각할 일이다.
일은 여전히 힘이 들고 내 시간을 매순간 갉아가고 있지만 조금 대충 살며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아가는 중이다. 이를테면 이걸 못 해내면 큰일난다는 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 무엇도 꼭 해야될 것은 없다. 삶에 당위성을 부여하며 사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고 한다. 강아지나 다람쥐처럼 이유없이 그냥 살아가자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면 실수를 해도 정말이지 다 내가 귀여운 탓이려니 할 수 있다.
그리고 예전보다 기분을 나아지게 만들 행동을 좀 더 빨리 하는 편이다. 누구도 진심으로 대한적 없는 날은 마음이 많이 공허하다. 마음이 지치면 일단 목욕을 한다. 차가운 요구르트나 과일도 야무지게 챙겨먹는다. 그리고 마스크 팩을 올리고 향초나 향을 피워 집안에 좋아하는 향기가 돌게 한 후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 갑자기 멀어지거나 돌이킬 수 없는 이별에 관한 소설을 읽으며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을 하거나, 작가의 표현력에 감탄한다. 나는 꽂히는 노래가 주기적으로 바뀌는 편이니 그 시기에 좋아하는 노래를 반복하여 틀어둔다. 그게 팝송이라면 그걸 제대로 따라 부른 뒤 해냈다는 작은 성취감을 느끼도록 한다.
시간이 더 있으면 솔직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며 좋은 사람을 가까이 하거나, 여운있는 드라마나 영화를 감상한다. 공허함을 너무 오래 느끼지 않도록 여러가지 외부 자극을 주면서 가라앉아 있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면 몸도 마음도 좀 더 산뜻한 상태가 된다. 이것들도 다 소용없을 정도로 지치는 날에는 그냥 그렇게 좀 퍼져 있는다. 그러다 보면 반드시 그 순간이 지나갈 것이라는 걸 안다. 또 그렇게 그냥 저냥 살아가면 된다. 큰 의미가 없어도 정말로 잘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