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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연 Feb 15. 2022

쓸 것이 많지 않은 날들

쓸 것이 많지 않은 날을 살고 있을 때, 비로소 지금 내가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글은 비극을 위로하기에 좋아서 잃어버린 것들은 쉽게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곤 하지만 행복은 좀처럼 글 되지 않는다. 나는 글을 쓰지 않은지 오래되었으니 어쩌면 행복하다. 어떤 것에도 크게 마음을 쓰지 않고, 관계에 지나치게 연연하지 않고, 지난 시간을 여유있게 돌아볼 수 있다. 대신 언젠가 잃어버릴 것들을 차곡차곡 쌓는 중일 것이다. 소중한 시간들을 잃으면 슬프겠지만 그건 그때 생각할 일이다.

 

일은 여전히 힘이 들고 내 시간을 매순간 갉아가고 있지만 조금 대충 살며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아가는 중이다. 이를테면 이걸 못 해내면 큰일난다는 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 무엇도 꼭 해야될 것은 없다. 삶에 당위성을 부여하며 사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고 한다. 강아지나 다람쥐처럼 이유없이 그냥 살아가자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면 실수를 해도 정말이지 다 내가 귀여운 탓이려니 할 수 있다.


그리고 예전보다 기분을 나아지게 만들 행동을 좀 더 빨리 하는 편이다. 누구도 진심으로 대한적 없는 날은 마음이 많이 공허하다. 마음이 지치면 일단 목욕을 한다. 차가운 요구르트나 과일도 야무지게 챙겨먹는다. 그리고 마스크 팩을 올리고 향초나 향을 피워 집안에 좋아하는 향기가 돌게 한 후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 갑자기 멀어지거나 돌이킬 수 없는 이별에 관한 소설을 읽으며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을 하거나, 작가의 표현력에 감탄한다. 나는 꽂히는 노래가 주기적으로 바뀌는 편이니 그 시기에 좋아하는 노래를 반복하여 틀어둔다. 그게 팝송이라면 그걸 제대로 따라 부른 뒤 해냈다는 작은 성취감을 느끼도록 한다. 


시간이 더 있으면 솔직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며 좋은 사람을 가까이 하거나, 여운있는 드라마나 영화를 감상한다. 공허함을 너무 오래 느끼지 않도록 여러가지 외부 자극을 주면서 가라앉아 있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면 몸도 마음도 좀 더 산뜻한 상태가 된다. 이것들도 다 소용없을 정도로 지치는 날에는 그냥 그렇게 좀 퍼져 있는다. 그러다 보면 반드시 그 순간이 지나갈 것이라는 걸 안다. 또 그렇게 그냥 저냥 살아가면 된다. 큰 의미가 없어도 정말로 잘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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