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나도 회사에 다닌다. 하지만
막내 일이 뭔데?
우리의 주요 업무는 서비스 신청 고객의 이용 가능 여부를 조회하는 것이었다.
조회 후 승인된 고객들의 접수를 진행하고 기타 부수 업무들을 처리한다.
하루에 300명 이상의 고객들이 들어왔고 5명의 안팎의 인원들이 업무를 분배하여 진행했다.
신입이었던 나는 우선적으로 상품에 대한 이해와 조회 방법을 배우고 업무에 투입이 되었다.
상품 종류가 5가지 정도 되었는데 전체적인 틀은 비슷하지만 디테일이 조금씩 달랐다.
바쁜 상황에서 선배들에게 일일이 물어보는 게 어려웠기에 그 디테일의 차이를 고민하고 이해하면서 주어진 업무를 충실히 해나갔다. 두 달 차 즈음 직원별 업무실적을 도출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는데 나는 일별 주별 할 것 없이 상위권 순위에 올랐다.
그렇게 나름 성실하게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동료들 눈에는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무렵부터 막내 선배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고 지점의 분위기 또한 싸늘해졌다.
그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으면서도, 당시에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몇 날 며칠을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후에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나를 미워했던 가장 큰 이유가
'처음엔 실수도 많았고 또 신입인데 엉덩이가 무거워서'였다고 한다.
신입들은 손님이 오면 가장 먼저 일어나 뛰쳐나가고 조금 더 귀찮은 일을 스스로 떠맡아야 하며 그러한 일들을 '선배들에게 예쁨 받기 위해서' 해야 한다고 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이게 바로 사회인가? 다른 회사도 똑같은 건가?'
나는 나름 주어진 업무를 성실히 하고 있었고 따로 알려주지 않는 업무지식들을 이해하기 위해 애썼으며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자료를 가져가서 주말에도 보고 있었다.
실수가 있던 부분을 보완하고 싶었고 그러려면 방대한 업무 지식들을 체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무거운 엉덩이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면서도 '회사가 원래 그래. 다른 곳도 다 똑같다. 그건 당연한 거야.'라는 말들을 들으면서
'아 내가 부족했던 거구나. 그런 걸 중요하게 신경 써야 하는구나.' 하며 나를 자책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눈치도 일머리도 없었던 후배였다.
일을 안 줄 땐 '왜 일을 안 알려주지? 이대로 있어도 되나.' 생각하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지 않았다.
우편을 받거나 보내야 하는 일이 있어도 대체로 그 업무를 하는 다른 직원이 있었기에
'아 저런 것도 분담을 해서 하는구나. 나중에 알려주겠지.'라고 생각했다.
주변을 살피고 상황을 이해하는 눈치와 일을 알아서 찾아서 하는 적극성이 부족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적극성과 부지런함, 눈치와 사회성까지 갖춘 신입'은 어느 조직에서나 선호받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잘못된 것은 아니며, 더더욱 그 이유가 누군가를 미워할 수 있는 명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다녔던 곳은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부터 회사생활을 시작하여 사회경력이 3~4년이 넘는 친구들이 모여있는 집단이었다.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하여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또래 후배들을 볼 일이 드물어 어리숙해 보이는 행동들이 바보 같고 답답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예쁨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관점은 지금도 동의하기 어렵다. 회사는 내가 가진 능력으로 기여를 하고 그 보상을 받는 곳이며, 그 과정에서 동료들과의 우호적인 관계 유지와 협력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그걸 넘어 예쁨 받는 것에 치중하는 순간 정치가 시작 혹은 심화되고 그러한 문화가 지속되면 인재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게 되며 성장하는 기업, 다니기 좋은 기업으로 남기는 힘들 것이다.
이곳에 다니면서 신입이지만 사회의 물이 들어야 할 수 있는 생각들을 꽤 많이 요구받아왔다. 그중 일부는 자양분이 되어주었지만 일부는 상처와 반감으로 남아있다. 그러니 신입이라고 해서 모든 관점을 다 수용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본인이 납득되는 것은 취하고 아닌 것은 튕겨내는 연습을 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