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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떠났다.
20대를 함께 한 친구를 보내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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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
Dec 24. 2024
20대를 함께 동고동락했던 친구가 떠났다.
대학교 때 동아리에서 처음 만나 수업도 함께 듣고 취업 준비도 같이 하던 친구가
2년 간의 투병 끝에 결국 긴 여행을 시작했다.
나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성숙했고 매사에 성실했으며 똑부러졌다.
대학 내내 주중에는 학교 근로를 하고 주말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업을 병행했다.
그러면서도 힘든 내색 없이 밝았던 친구였다.
오히려 아르바이트를 고르면서 어려운 일 하기 싫어하는 나의 어리광을 받아줄 만큼 마음이 넓었다.
건강했고 또 건강했다.
잔병치레 많던 나와는 달리 어떤 음식을 먹어도 술을 먹으면서 밤을 새워도 그 친구는 거뜬했다.
그러면서도 작은 일에 걱정하고 아파했던 나를 알아차리고 세심하게 배려해 준 고마운 친구였다.
내가 언니였음에도 그 친구를 참 많이 의지했다.
그 친구에게는 전조증상이 없었다.
가족력도 유전도 없었다.
어떠한 이유도 맥락도 없이 큰 병이 찾아왔다.
그저 무던한 성격으로 어느 순간 만져지던 딱딱한 피부를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
그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할 때도 그 친구의 모습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이미 모든 가능성, 원인, 치료방법 등에 대해 상세히 알아본 후 침착하게 내용을 전달했고
암이 완치된 후의 미래를 그리면서 앞으로 해야 할 일, 조심해야 할 것들을 준비했다.
당시에도 지금도 나는 그 친구의 마음을 감히 가늠하지 못한다.
어떻게 저렇게 단단하게 버티고 서 있을 수 있는지
대단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그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나로서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서울과 부산을 왕복하며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가족 분이 운영하던 카페에도 출퇴근을 했다.
카페 알바를 했던 기억으로 그 가게의 가오픈 때 하루 방문하여 음료 개발을 함께했다.
뭐 커다란 팁이나 노하우를 알려준 것도 아니었고 같이 맛을 보면서 내 생각을
얘기한 게 다였는데
그 친구는 세상 고마워했고 추후 그 메뉴가 얼마나 잘 팔리고 있는지도 공유해 주며 나를 치켜세워주었다.
그러고 한참 지나서 다시 그 친구를 봤다.
항암을 계속하고 있음에도 어린 나이 탓인지 병이 진행되는 속도가 굉장히 빨랐고
쓸 수 있는 약도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 친구는 두 눈을 반짝이며 내 얘기를 계속 듣고 싶어 했다.
당시 직장생활의 어려움과 이직준비에 대한 걱정밖에 없어서 그런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 친구는 오히려 내가 그런 얘기를 꺼내주길 바라고 또 진심으로 들어주고 공감해 줬다.
어떠한 상황이든 그 친구가 겪고 있는 일보다 어려운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는 오히려 그런 나를 알아채고 나를 몰아넣지 말라는 조언까지 해주었다.
몇 달 전 친구의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셨고
그 친구는 상주로서 그 시간을 함께했다.
마음고생을 많이 한 탓일까,
아니면 무리를 한 것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의 상태가 악화되었고 급하게 대학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간간이 들려온 소식에서는
1인실에서 뭘 먹지도 못하고 계속 누워만 있는다고 했다.
병문안을 가도 될지,
함께 아는 친구가 없는데 혼자 가도 괜찮을지,
어떻게 해야 할지 계속 고민하다가
물과 음료는 마실 수 있다는 얘기에 이온음료를 사들고 병원으로 향했다.
실제로 본 친구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목에 산소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말을 하지 못했고 많은 의료장치가 몸에 붙어 있었다.
친구는 오랜만에 만난 나를 되게 반가워했고
바깥 이야기, 세상 사는 이야기를 굉장히 궁금해했다.
친구는 종이에 글을 써서 대화해야 했는데 그게 답답했는지
무의식적으로 계속 말을 하려고 했고
그럴 때마다 심장박동 측정기는 요동치며 울려댔다.
친구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그냥 즐거웠던 것, 맛있었던 것, 친구들과 놀았던 얘기를 주로 했다.
불꽃놀이를 보러 갔던 얘기를 하며 영상을 보여주고, 최근에 갔던 여행 얘기가 담긴 블로그도 보내주었다.
여행 블로그를 읽는 동안 먹었던 음식들, 좋았던 장소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귀여운 인형과 다육이가 보였다.
다른 친구들이 방문하면서 선물해 준 것이라고 하는데
나도 이온음료가 아니라 이런 센스 있는 선물을 했어야 했나 잠시 후회를 했다.
친구는 누워 있는 와중에도 내 표정을 읽었는지
자신은 마실 수 있는 이온음료도 좋다며 나를 또 안심시켜 주었다.
친구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평소에 뭐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지 물었다.
주로 잠을 자고 일어나면 다리 운동을 하고 컨디션이 좋으면 책도 읽는다고 했다.
다행히 오늘은 컨디션이 정말 좋은 상태라고 했다.
친구가 아이패드를 사용하기에 주로 이용하던 전자책 플랫폼을 추천하고 정기 구독권을 선물했다.
정기권을 고르면서 부디 이 기간 동안만이라도 친구가 책을 꼭 읽을 수 있기를,
꼭 이겨내서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 나의 바람이 하늘에 닿지 않은 모양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의 상태는 급속도로 악화되었다고 한다.
병문안도 다 미룬 채 잠을 자고 다리 운동하는 일과만 반복한다고 했다.
그게 그 친구에게서 받은 마지막 연락이었다.
지금은 좀 괜찮냐는 나의 마지막 물음에 부고장으로 답이 왔다.
아무것도 없던 프로필이 그 친구의 어린 시절의 사진으로 채워진 채로.
애도한다.
정말 소중했던 친구가 이제는 편안하기를, 다시는 아프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와 20대를 함께 해줘서 정말 고마웠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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