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에 그 아이 같은 사람에게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던 게. 그는 내가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아껴주었고, 보살펴주었다. 불안해하는 나를 위해 안고 달래며 몇 번이나 같은 말로 달래주었고,
그런 그에게 나는 '알았지빌런'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알았지는 그가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본인도 모르게 되뇌이는 말이었다.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은 그런 사랑이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차고 넘쳤다. 개중에 제일 좋았던 점은 단연 그의 근사한 언어였다. 그는 안녕하세요나 감사합니다도 다르게 말하는 사람이었고, 듣는 이의 입장을 가슴으로 이해하고 말의 늬앙스를 조절했다. 그의 언어적 감수성을 필자의 언어적 한계로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점이 아쉽다.
그처럼 대단한 사람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여자친구로서 가질 수 있었던 큰 특혜였다. 그는 여리고 따뜻한 심성을 가진 동시에 강한 사람이었다. 나는 지인에게 그를 소개할 때, 늘 '따뜻하지만 똑똑한 사람'이라고 자랑스레 말했는데 그 이유는 그 두가지 성질이 현실에서 양립하기가 굉장히 어렵기 때문이다. 대개 위대한 성과를 내는 사람들은 공감능력이 떨어졌고, 따뜻한 사람들은 따뜻하기만 했다.
많지 않은 경험에서 미루어보건대 내가 남자친구를 만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크게 두 가지로,
두 가지 모두 사회적으로 말하는 기준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하나는 언어적 감수성이고 다른 하나는 똑똑함인데 그 똑똑함이란 보통 이상의 비범한 수준이어야 했다. 그 비범한 수준은 앞서 말한 언어적 감수성과 관련이 있다. 대개 말을 잘하고 말에 논리가 탄탄하면 나는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그의 말에는 논리적 모순이 없었으며, 유치원생이 들어도 이해될만한 수준으로 설명을 잘했다. 직업적으로 대단한 성과를 이루고, 그만의 확고한 가치관이 있음에도 타인에게 그 잘남을 뽐내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지 않았다는 점도 특기할만 하다.
요약하면 그는 인간적이었고, 다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 두 가지 성질을 동시에 갖기가 어려운 만큼 그는 귀한 사람이었다.
늘 그 아이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영화 속 대사가 하나 있다.
"Tiny man, but huge ego." 그의 작은 가슴과 대비되는 넓은 아량의 크기만큼은 모순적이었다.
때때로 내 어리석음으로 인해 그의 작은 가슴이 아플까봐 울었다. 나 같이 이기적인 사람이 그처럼 좋은 사람을 아프게 해서 미안했고, 미안해서 울었다.
우리는 서로 그랬다. 다툼을 할 때면 나중엔 서로 미안해하며 울었다. 그리고 그는 항상 먼저 다가와 미안하다고 말했다. 내가 잘못했을 때도 그는 그저 나와 화해하고 싶어서 먼저 사과했다.
그런 그에게 나는 함부로 대했고, 그런 나 스스로가 싫었다. 그래서 이별을 고했다.
지금의 내 상황이 그와의 만남을 더 피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그를 옆에 두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별을 고했다. 결국 마지막까지 죄책감이 가지는 그 부채가 싫어 이기적인 선택을 했다. 자존감이 낮아져 판단력이 흐려질대로 흐려진 지금,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선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 밖에 없다. 삶의 주체성을 회복하고 다른 사람의 말에도 휘청이지 않을 때 그때 다시 그와 나를 들여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