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

오은

by 단발의 챠밍레이디

거울이 말한다.

보이는 것을 다 믿지 마라.


형광등이 말한다.

말귀가 어두울수록 글눈이 밝은 법이다.


두루마리 화장지가 말한다.

술술 풀릴 때를 조심하라.


수도꼭지가 말한다.

물 쓰듯 쓰다가 물 건너간다.


치약이 말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변기가 말한다.

끝났다고 생각한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라



감상 : 재미있는 시 한편이 우리에게 인생의 가르침을 주는 것 같다.

거울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라고 가르치고

형광등은 사람마다 장점, 단점이 다름을 가르치고

두루마리 화장지는 겸손함을 가르치고,

수도꼭지는 검소함을 가르치고

치약은 끝까지 치열하게 완벽하라고 가르치고

변기는 절망하지 말고 다시 시작하라고 가르친다.

늘 눈에 보이는 사물을 선생님으로 의인화하여 시를 쓴 것이 창의적이고 코믹하다. 이 가르침들은 알고 있지만, 부족하게 실천할 때가 있다.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어 사람에게 상처 받을 때도 있고, 내 능력을 과신하여 잘난 체하다가 큰 코 다친 적도 있다. 오늘의 예쁜 것에 반해 다음 달 카드값에 놀라 절망한 적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인생은 재미난 것 같다. 늘 기쁘지도 않고 늘 슬프지도 않으니 말이다. 인생 끝까지 지치지 않고 살아볼 일이다.


<없음의 대명사> 문학과 지성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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