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그럴때가

이어령

by 단발의 챠밍레이디

정말 그럴 때가 있을 겁니다.

어디 가나 벽이고 무인도이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겁니다.


누가 “괜찮니”라고 말을 걸어도

금세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노엽고 외로운 때가 있을 겁니다.


내 신발 옆에 벗어놓았던 작은 신발들

내 편지봉투에 적은 수신인들의 이름

내 귀에다 대고 속삭이던 말소리들은

지금 모두

다 어디 있는가

아니 정말 그런 것들이 있기라도 했었는가.


그런 때에는 연필 한 자루 잘 깍아

글을 씁니다.


사소한 것들에 대하여

어제보다 조금 더 자란 손톱에 대하여

문득 발견한 묵은 흉터에 대하여

떨어진 단추에 대하여

빗방울에 대하여


정말 그럴 때가 있을 겁니다.

어디 가나 벽이고 무인도이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겁니다.



감상 : 정말 그럴 때가 내게 있었다. 여기저기 관절통으로 인하여 내 몸이 여기저기서 부서져갈 때 나는 혼자인 것 같았다. 주변이 모두 내게서 멀어지고 나를 외면할 것만 같았다. 그 시간에는 주변의 작은 위로에 금방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밤 늦은 시간에 누워도 눈물이 솟구쳤다. 나는 현실에 있지 않고 혼자 지옥의 방에 갇혀서 나올 수가 없었다. 그럴 때 나를 작게나마 숨 쉬게 해준 것이 글쓰기이다. 글쓰기 동아리에 가입하여 지금까지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는 것이 그 슬픔을 극복하게 하여준 큰 위안이었다. 나도 작은 것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날의 점심메뉴로 글쓰기를 매일 하다보니, 조금씩 살아 있음에 감사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파도 할 수 있는 것이 있구나 싶어 기뻤다. 내가 아프기만 한 것은 아니구나를 깨달아 갔다. 이어령 시인의 시를 읽으며 올해의 나를 위한 시가 아닐까 싶다. 내 두발로 걸을 수 있음을 표현하고, 손톱이 잘 자라고 있구나에 신기하고, 손등이 좀 늙어가나에 아쉽고, 나는 슬프지만 살아있다. 죽은 이가 그렇게도 부러워하는 살아있는 시간이다. 그 슬픔을 뒤로 하고 작은 것들을 잘 들여다보고 표현하여 글쓰기를 하다보면 주위에 은인들이 다시 모이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들은 항상 그대로였으나, 내가 변하고 바뀌었다. 모든 것은 내 자신에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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