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하는 게 좋았다. 오랫동안 목말랐고 애가 탔던 터라 일을 하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했다. 퇴근하고 나오면서 바라보는 석양에 행복했고, 출근길에 사들고 가는 커피 한 잔을 사랑했다. 초과근무조차도 웃으며 할 수 있었다. 내게 일이 있어서 초과근무를 할 수 있다는 게, 그 자체가 행복이었다. 나는 성실했고, 정성을 다했다.
그렇게 평화로울 줄 알았던 나의 일이 흔들리게 된 것은 일을 시작한 지 일 년을 눈앞에 둔 시점이었다. 한 달 뒤에 재계약을 할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지만 팀장님은 조용히 나를 불렀고, 우리 팀이 진행하고 있는 사업의 지속성에 대해 길게 설명했다. 갖고 있는 예산으로 내가 맺을 수 있는 계약기간을 정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나보다 오래 일한 직원은 계약종료 시점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그 사람은 계약종료기간까지 근무를 한다고 했다. 슬프고 괴로웠다. 나는, 정말로 나는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했는데.. 아, 나는 왜 늘 이렇게 바보 같을까.
그 사람도, 나도 계약이 종료됐다. 서둘러 실업급여를 신청하고 다시 취업사이트를 드나들었다. 그 사이 실습만 남겨 두었던 사회복지사 자격 실습을 마치고, 막차를 타고 코로나도 걸렸다. 젠장, 운도 지지리도 없지. 일할 때 코로나 걸렸으면 일주일은 병가로 쉴 수도 있었을 텐데. 계약 종료 후 한 달 사이에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마무리되었다.
단절된 경력으로 이력서를 준비할 때보다야 그나마 지자체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나 자신을 위로했지만, 사실 사십 중반의 아줌마를 어디서 써 주려고 할까. 또다시 두려워졌다. 아쉬움이 남아서 인지, 나를 받아들여줬던 곳이라 그랬는지, 일했던 지자체의 채용공고를 늘 제일 먼저 확인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어??'라고 소리쳤다. 내가 일했던 곳에 자리가 난 것이다. 내가 일했던 것보다 2단계 높은 직급이었다.
'시간선택임기제 다급'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게 무슨 일이지? 그분은 계약종료가 한참 남았는데 왜 갑자기 그만둔 거지?? 어머, 이력서 내볼까?? 자격 조건은 되는데 과연 뽑힐까??' 기대와 걱정 그 어디쯤을 헤매며 이력서를 다시 쓰고, 서류를 통과하고 면접을 준비했다. 되면 좋은 거고, 안 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갑작스레 2단계를 진급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면접 전 날,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면접의 공정성을 위해서 면접자들끼리 시간차를 두고 면접장에 도착해야 하며, 면접 대기실에서는 서로 말하지 말라는 안내 메시지였다. '뭔지 모르게 까다롭네... '다'급은 뭐가 달라도 다른가 봐..' 싶었다.
시간에 맞춰 대기 장소에 도착했을 때, 왜 그런 문자를 받아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나와 함께 계약이 종료됐던, 나보다 오랜 시간 일했던 그 사람도 면접자로 대기하고 있었다. '저 사람도 그 공고 봤구나.. 왜 안 그렇겠어.. 사람 마음이라는 게 다 비슷 하지 모...' 어색한 미소가 오고 가고 알아도 아는 척할 수 없는 사이가 되어 자리에 앉았다.
다시 면접자가 되어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지 못하는 시간 사이를 헤매다 면접장을 빠져나왔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한 층 내려가다가 면접용 이름표를 가지고 온 것을 알아챘다. 가지고 온 이름표를 제자리에 놓으려 난간을 부여잡고 계단 하나하나를 올라갔다.
2022년 12월 1일. 나는 시간선택제임기제 다급 공무원이 되어 같은 곳으로 출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