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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정아 Sep 13. 2018

운전이 서툰 어른입니다만

극복할 수 있을까? 운전에 대한 공포

내가 가진 크고 작은 두려움들 중 가장 일상과 직결된 건 아마 운전에 대한 공포일 것이다. 운전을 못하는 게 현재의 생활에 크게 지장이 있는 건 아니니 운전이란 활동은 '못해서 불편'이라기보다 '놓치고 있을지도 모르는 편리함' 정도로 보고 있다.


처음부터 운전이 두려웠던 건 아니다.


대학교 2학년 때 패기 있게 1종 보통 면허를 따고 나서 가까운 곳은 아빠 차, 언니 차로 종종 운전해서 다녔었다. 이른 아침 기차역에 누구를 데려다준다던지, 한가한 낮시간에 엄마와 마트에 가는 정도의 운전은 초보 수준이지만 무난하게 했었고 그런 횟수를 늘려가던 차에 미국에 왔다.


운전에 공포가 생긴 시점은 고모댁에 가서 경험한 교통사고 이후가 아닐까 싶다. 고모가 뉴욕에서 가까운 필라델피아 계신다고 들은 후 한번 방문하기로 했고, 다음날 아침 교통사고가 났다. 고모는 당시 운영하던 가게에 아침 7시쯤 출근을 하셨는데 나도 집에 있기 뭐하니 같이 가기로 했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비몽사몽 해서 차를 탔는데 겨울이라 아직 녹지 않은 눈이 여기저기 보이고, 길에도 서리가 내려 조심히 운전해야 하는 날이었다.


출근 시간이라 차가 꽤 많았고 양쪽에 나무와 산이 있는 이른 아침 도로를 다들 풀 스피드로 달리고 있었다. 크게 비탈지지 않은 언덕길이 내리막으로 바뀐 순간 100미터 전방에 차 한 대가 골목에서 우리가 있던 도로로 들어서고 있었다. 우리는 풀 스피드였으니 멈출 수가 없고 그 차는 당연히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멈추지 않고 그냥 들어왔다.


마치 꿈결처럼 ‘저 차, 저렇게 들어오면 안 되는데,’ 하는 순간 쾅! 하고 부딪혔다.


멈추지 않고 들어서는 그 차와 우리 사이의 간격과, 많은 차가 달리고 있는 도로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면서도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을 만큼 짧은 찰나에 일어난 사고였다. 사고란 게 원래 그렇게 난다. 다 보이는데도 손 쓸 수 없을 만큼 짧은 순간에.


그 차는 이제 갓 면허를 딴 열대여섯 살 여자아이가 몰고 있었다. 큰길에 나오기 전에 멈춰서 살피는 기본적인 상식도 없이 면허를 딴 그 애 때문에 순식간에 도로 위 여러 명의 목숨이 오갔다.


그 애는 혼란스러운 듯 차에서 내리며 우리에게 달려와 "오 마이 갓 지금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나 아무것도 모르겠어!"라고 소리쳤고, 이 광경을 지켜본 인근 차의 운전자들이 차를 세우고 나와 서로 증인을 해주겠다고 해서 고마웠다. 그들 중 한 명이 사고 발생 동시에 신고해 준 덕에 경찰차가 신속히 도착했고, 조수석에 있던 내 정보까지 꼼꼼히 적어갔다.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결국 양쪽 차가 폐차되었으니 미미한 접촉사고 수준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운전자인 고모도 달려드는 그 차를 봤지만 그 차를 피하기 위해 다른 쪽으로 틀거나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더 이중삼중 사고가 날 것 같아서 그냥 가고 있던 속도로 들이받기로 생각했다고 했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나는 안전벨트를 맸는데도 앞 창에 이마가 거의 닿을 만큼 온몸이 앞으로 쏠렸다. 에어백도 안 터지고, 졸린 와중에 버릇처럼 맸던 안전벨트가 아니었다면 분명 앞창을 깨고 튕겨 나갔을 생각을 하면 지금도 온몸이 떨린다. 안전벨트를 안 맸다면 조수석에 있던 내가 그 사고의 유일한 부상자가 되었을 테니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했을까.


필라델피아에 머무르는 며칠 동안 물리치료를 받고 돌아왔다. 한 달 정도 정강이가 얼얼하고 쑤시는 느낌이 있었지만 이제 이십 대를 갓 넘긴 창창한 나이여서 큰 증상이나 후유증 없이 지나갔다.


하나 후유증이 있다면 운전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는 것이다. 운전이 서툰 상태에서 그런 일을 겪으니 운전이 더더욱 어려워졌다. 운전은 차치하고 조수석에만 앉아도 늘 불안한 사람이 됐다. 특히 옆길에서 들어오려는 차를 보면 혹시 저 차가 그때 그 여자애처럼 멈추지 않고 들어올까 봐 나도 모르게 움찔하며 손잡이를 꽉 잡는다.


대학교 때부터 꾸준히 운전을 한 친구는 이십 대 후반에 다른 차의 부주의로 사고가 났단다. 그 후에 운전하는 게 두려워 한동안 운전을 피했더니 그 친구 아버지가 "이럴 때일수록 더 해야지 안 그러면 평생 운전을 못할 수도 있다."라고 하셨단다. 그래서 두려움을 무릅쓰고 일부러 더 운전을 하고 다녔더니 다시 괜찮아져서 그 이후로는 쭉 무사고 운전을 하고 있다.


두려울수록 더 해야만 나아지더라. 그녀가 운전하는 옆 조수석에 앉아 얘기를 하다가 순간순간 움찔하며 손잡이에 손이 가는 걸 보고 해준 얘기다. 내 지인은 학창 시절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사고가 크게 난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론 아무리 가까운 거리를 가는 버스를 타도 내릴 때까지 불안함을 느낀다고 했다. 트라우마 때문이다.

우리는 아는 만큼, 들어본 만큼, 겪어본 만큼의 두려움을 느낀다.

미국의 불안, 우울증 협회(ADAA - Anxiety and Depression Association of America)에서는 일반적인 운전 공포증의 원인을 다섯 가지로 규정했다.


1.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 - 교통사고가 가장 큰 부정적 경험이고, 좋지 않은 날씨에 운전을 한 경험, 보복운전(Road rage)의 피해자가 되었던 경험, 운전 중 길을 잃고 헤맨 경험이나 운전 중 공황발작을 경험했던 기억 등이 모두 운전 트라우마를 야기하는 부정적 경험에 속한다.


2. 낯선 지역에서 혼자 운전해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 길을 잃는 것, 차에 기름이 다 떨어지는 것,  핸드폰이 안 터지는 것,  주차할 곳이 없는 것 등,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곳을 운전해야 할 때에,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 앞서서 막연하게 불안함을 느끼는 것이 이에 속한다.


3. 과거에 공황발작, 불안발작, 과호흡증 후근 등을 겪어본 사람이 운전 중이나 신호대기 중에 발작이 올까 봐, 발작이 온 상태로 차 안에 혼자 갇히거나 사고가 날까 봐 두려워하는 것.


4. 고속도로에서 속도조절을 못하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 고속도로에서 다른 차의 속도에 맞추기 위해 계속해서 액셀을 밟는 것에 대해 걱정하며, 너무 빠르게 달리다 속도조절을 못하게 될까 봐 걱정하는 것.


5. 사고가 나는 것에 대한 염려 - 운전에 대한 공포의 배경에는 자신의 운전실력을 믿지 못하거나, 도로 위 다른 운전자들을 믿지 못하거나, 혹은 둘 다 존재한다. 운전하면서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최악의 교통사고를 그리며 불안을 키우는 것이다.


케이티 홈즈는 하도 많이 봐서 다음번엔 인사라도 건네야 할 지경이다

운전을 피하고 싶었던 나는 미국에서 가장 운전이 필요 없는 뉴욕에 살고 있다.


실제로 뉴욕에 오래 산 내 지인들은 거의 모두 일상적으로 운전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뉴요커들은 평생 차를 소유하지 않는 사람이 무수히 많고, 뉴욕은 보행자의 천국이라 차보다는 걷는 게 빠른 경우가 많고. 대부분의 경우 택시, 버스보다 지하철이 더 빠르고, 밀릴 땐 택시보다 걷는 게 더 빠른 경우도 많다.


버스와 지하철이 24시간 운행하고, 택시에도 심야할증이 크게 붙지 않아 운전을 하지 않아도 큰 불편함 없이 생활할 수 있다. 맨해튼은 주차장을 이용하려면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스트릿 파킹도 까다롭기 때문에, 차를 소유한 사람들도 맨해튼에 출퇴근할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 때문에 Port Authority, Penn Station, Grand Central 등 맨해튼의 메인 버스, 기차 터미널은 뉴저지와 코네티컷에서 출퇴근하는 이들로 가득 찬다. 이들은 대부분 차를 소유하며 한적한 인근 지역에 살지만 버스와 기차를 이용해 출퇴근한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실로 많은 인구가 뉴욕 밖에서 통근하는구나 하고 새삼 느낀다. 그들이 모두 자기 차로 출근한다면 아마 교통체증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만약 지하철에서 봤다면 얼굴은 딱 알겠는데 이름은 가물가물할 배우

이렇게 남녀노소 차의 소유 여부와 상관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니 뉴욕의 지하철에는 유명인사들이 심심찮게 보이기도 한다. 나도 처음에 지하철에서 얼굴만 아는 외국 배우들을 봤을  신기하기도 하고 그냥 닮은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파파라치에도 종종 나오는  보면 유명인들도 지하철을 많이 이용하는    있다.



미국의 불안, 우울증 협회에서 제시하는 운전 공포증을 극복하는 방법은 우선 위의 다섯 가지 원인에서 자신이 해당하는 것을 찾는 것이다.  경우는 1 과거의 교통사고와 5 사고가 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섞여있다. 남의 잘못으로 사고가 가보니 내가 아무리 속도를  지키고 안전하게 운전해도, 다른 사람이 까딱 졸거나 술에 취했으면 나로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게 됐다.


기본적으로 내가 운전할 때 그 도로의 다른 운전자들도 모두 준법정신을 갖고 운전하고 있다는 믿음이 바탕에 있어야 불안하지 않을 텐데, 나는 사고로 그 믿음이 완전히 무너졌다. 운전할 때뿐 아니라 조수석에 앉아있을 때에도, 심지어 뒷좌석에 앉아도 불안하다. 한국에 놀러 가도 본가인 대전에서 서울에 오갈 때는 당연히 기차를 탄다. 가족이 운전하는 차를 타도 도착할 때까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해서 차 안에서는 자는 일이 거의 없다.


운전 공포증을 극복하는 첫 번째 단계는, 자신의 원인을 정확하게 판단한 후, 자기가 그 원인들을 극복해야만 하는 이유를 하나씩 적어 내려가는 것이다.


내가 운전 공포증을 극복해야 하는 이유


1. 평생 '운전'을 숙제로 남기기 싫어서 - 평생 대중교통만 이용하면서 살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운전해서 가면 되지"라고 어렵지 않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너무너무 진심으로 되고 싶다.

2. 뉴욕이 아닌 미국 다른 곳에서도 살 수 있게 되기 위해 - 미국 내 뉴욕이 아닌 다른 곳으로 이주하면 운전을 해야만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아직은 그 옵션들을 닫아둔 채 뉴욕에서만 십 년 넘게 살고 있지만, 언젠가 자유로운 선택을 하기 위해 운전은 꼭 넘어야 할 산이다.

3. 내가 사는 지역 인근을 다닐 수 있기 위해 - 남편도 운전을 좋아하지 않고 장거리 운전은 극도로 꺼리는 성격이라, 나이아가라 폭포를 지척에 두고도 아직 가보지 못했다(지도상으론 코 앞인데 8시간이 넘는다;) 유럽이나 한국처럼 기차가 잘 발달되지 않은 미국의 특성상 뉴욕시를 떠나면 다른 여행지는 어디든 차로 가야 하는데, 그런 곳에도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4. 여행할 때에 대중교통으로 갈 수 없는 곳에 가보고 싶어서 - 나랑은 성향이 매우 다른 친언니는 일본을 가도 유럽을 가도 종종 차를 렌트한다. 낯선 여행지에 가서 운전을 하면 버스나 기차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다닐 수 있어 훨씬 더 자유로워 보였다. 관광지를 벗어나 로컬들의 일상에 더 깊숙이 파고들며 경험하는 듯한 모습이랄까. 로컬처럼 천천히 여행하는 방식을 지향하는 나는 여행지에서 차를 렌트하는 사람들이 늘 대단하고 부럽다.


나도 언젠가 여유만만한 운전자가 될 수 있을까?


운전에 대한 공포를 떨치기 위해 뉴욕에 산지 십 년 만에 운전면허를 따기로 결정했다. 한국에서 딴 면허가 있지만 운전이 다시 손에 익을 수 있도록 한 달여간 속성으로 레슨도 받았다.


레슨 첫날 운전 선생님은, "뉴욕에서 면허를 따는 것 자체는 쉽다. 저렇게 막 운전하는 사람들만 봐도, 면허 따는 게 얼마나 쉬운지 보이지?"라고 했지만, 나는 첫 번째 도로주행에서 보기 좋게 떨어졌다. 히스테리컬 한 시험관은 일부러 나를 패닉 하게 하려는 듯 연극배우같이 오버하며 고함을 지르다가 내가 주차를 하고 나니 사과하더라.


시험장 다른 사람들이 다들 비슷한 경험을 한 걸 보면, 이 동네에선 일부러 당황하게 만들며 '압박 시험'을 하나 싶었다. 실제 도로에서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 차분하게 대처하게 하기 위해서? 어쨌든 시작한 지 1분도 안돼서 떨어진 느낌이었다.

큰 맘먹고 도전한 미국에서의 첫 운전시험. 그 짧은 시간에 갖다 붙일 수 있는 이유는 다 붙여서 떨어뜨렸다.

한국에서 도로주행을 할 때는 크게 문제가 될 사유가 아닌데 떨어졌다. 좌회전이나 우회전을 할 때 어느 정도 가까이 가서는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붙어야 하는데 내가 시간 조절을 못했다고 했다. 더 빨리, 또는 더 천천히 해야 하는데 이건 운전강사 선생님이 미리 알려주지 않았던 부분이라 나로선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다. 그래서 오히려 떨어졌을 때 '아직 준비가 안 됐구나, 더 연습할 거리가 많이 남아있구나' 싶어 맘이 편해지고, 한편으론 '다른 준비가 안 된 사람들도 철저히 걸러줬으면 좋겠다' 싶었다.


독일은 운전면허 난이도가 세계적으로도 가장 어렵기로 알려져 있다.


필기시험을 위한 이론 수업이 90분인데 이를 14번이나 들어야 하고, 응급처치도 필수적으로 배워야 한단다. 도로주행도 국도, 고속도로, 야간 주행 등 세밀하게 나뉘어서 있고 평가항목도 까다로워서 운전면허 합격 확률은 늘 30% 미만이라는데, 이러한 이유로 독일에 가서 살면서 운전면허를 땄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럼 적어도 철저히 준비가 된 상태에서 도로로 나갈 수 있을 것 같고, 똑같은 과정을 거치는 다른 운전자들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국도 운전면허 시험이 많이 어려워졌다고 들었다.


면허  때야 번거롭겠지만 결국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   일이 아닐까? 한국에 놀러 가면 만나는 친구들은 뉴욕의 친구들과는 달리 모두들 자기 차를 몰고 다닌다. 예전에 운전이 서툴렀던 친구들이 이제는 꽤나 여유로운 드라이버 포스를 풍기며 편안하게 운전하는  보면 어쩐지 나보다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느낌이다.


언제쯤   있을까, 운전이라는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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