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정아 Aug 23. 2018

선택의 여지가 있을 땐 언제나 새로운 쪽으로

평소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을 하며 살아봤다

나는 우울증이 있다. 심했을 땐 약물치료를 권장하는 수준이었다


한국 미국에서 의사도 만나보고 짧게 약물도 시도해 봤지만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약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체질도 아니고 알레르기나 부작용도 없는데 유독 항우울제만은 몸에서 단호히 거부했다.


순해서 노인이나 어린이도 먹는다는 약의 최저용량만 복용해도 동공이 확장되어 시야가 흐려지고 메스꺼웠다덥지 않은데도 민망할 정도로 땀이 비 오듯 흘렀다서너 종류를 시도해 본 결과 내게 부작용이 없는 약을 찾을 수 없었고, 최소용량인 탓에 효과도 없었다. 결국 항우울제 없이 살아가라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항우울제는 영원히 작별했다.


타고난 저녁형 인간이라 한국에선 미국 시차로 미국에선 한국 시차로 살 정도로 불면증이 심한데, 항우울제도 수면제도 쓸 수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자연적인 치료뿐이었다.


5 HTP 같은 영양제를 섭취하는 것,

낮에 적당한 햇빛을 쬐는 것,

하루 한 시간 정도 빠르게 걷는 것,

적당한 운동,

고양이와 노는 것,

행복과 건강에 대한 책을 읽는 것,

과일과 채소를 많이 섭취하는 것 등,


약이 없이도 우울증에 도움이 되는 것들은 의외로 많았고, 그중에서 가장 효과가 컸던 게 바로 여행이다. 여행을 가기 위해 항공권을 사는 시점부터 여행을 하고 돌아온 후까지의 모든 과정이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다녀와서 한참이 지난 후에도 여행 사진을 보면 마음속에 행복이 차올랐다.  


요즘 한국 방송을 보면 먹방 콘텐츠가 반, 여행 콘텐츠가 반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음식과 여행에 심취해 있다. 일과 삶에서 찌든 피로가 쌓여갈수록, 인간은 가장 본능적이고 확실히 보상하는 자극 점을 찾아 탐닉하게 된다. 얼마 전 같은 글쓰기 워크숍을 들었던 물리학과 학생이 "여행은 가장 좋은 항우울제(Traveling is the best antidepressant)라는데 내 경험에 비춰봤을 때도 정말 맞는 말이었다.


네고로 히데유키의 ‘호르몬 밸런스'에 따르면, 취미나 자신이 열중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인체의 도파민의 활성을 촉진한다고 한다. 


도파민은 누군가를 보고 첫눈에 반하는 순간에도 분비되는데,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도파민을 사랑 호르몬이라고 알고 있기도 하다.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의 뇌에 도파민이 분비되어 쾌감을 느끼게 하는 것도 분명 사실이지만, 사랑 이외에도 도파민을 자극하는 것은 많고, 일상에서도 찾을 수 있다.


도파민은‘뇌 속에 존재하는 마약'으로도 불린다.


파킨슨 병은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분비가 감소하면서 발생하는 질환이다.

도파민의 분비가 급격하게 부족해지면 60대 이상이 아닌 더 젊은 나이에도 파킨슨 병이 발생할 수 있는데, 젊은 사람들이 파킨슨 병에 생기는 원인에피로 누적, 수면부족, 소심한 성격(내색하지 않고 화를 참고 삭이는 성격) 지속적인 스트레스 등이 있다.


이 중에도 스트레스는 만병의 원인으로 파킨슨 병의 가장 강력한 발병 원인이다.


나는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잘 관리하고 있는가? 나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하는 세 가지를 지금 바로 답할 수 있는가?

"인생에 색을 입히는 일", 즉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을 할 때 도파민이 자극된다. 이렇게 정기적으로 도파민이 자극되는 생활을 하게 되면 교감과 부교감신경의 밸런스가 좋아지고,  도파민의 영향으로 세로토닌이 활성화되면 의욕이 생기고 온 몸에 에너지가 넘치게 된다.

집중력과 기억력도 향상되고, 낮시간에 분비된 세로토닌은 밤에 멜라토닌으로 변환되어 숙면할 수 있게 해 준다. (출처: 호르몬 밸런스, 네고로 히데유키)

쉽게 말해 도파민이 활성화되면 세로토닌과 멜라토닌 등 다른 성장호르몬도 촉진시켜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행복해지는 것이다.  

도파민의 활성을 촉진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새로운 자극이다.
예를 들면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을 겪는 것도 좋다.
낯선 지역에 가보기, 평소에 꼭 만나고 싶었던 사람에게 연락하기,
사고 싶었던 물건이 있었던 가게에 들르기 등

이런 ‘첫 경험’은 도파민 분비를 촉진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본능적으로 여행을 떠나고, 일을 그만두고, 사고 싶었던 물건을 사고,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는 것이다. 단순히 심리적인 게 아니고, 그런 행동을 통해 스트레스에 대한 보상을 하여 도파민을 증가시킨다. 그렇게 여행을 다녀오면 리프레쉬해져서 새로운 마음으로 일상에 복귀해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수시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심리는 일상의 피로가 누적되었을 때마다 스트레스를 빨리 해소하고 건강을 회복하라는 뇌로부터의 메시지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여행을 매일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수시로 일상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도를 해 보기로 했다.


나는 평소 늘 가는 곳에만 가고, 외식을 해도 늘 가는 곳 중에서 골라서 다닌다새로운 곳을 뚫는 데는 리스크가 따른다. 가서 좋거나 맛있거나 즐거우면야 좋지만, 생각보다 별로면 그 시간과 돈이 허비되는 거 같아 싫었다. 새로운 시도라는 건 귀찮고, 번거롭고, 불필요한 일이었다.


새로운 걸 할 때 도파민이 자극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한 가지 간단한 원칙을 정했다.


선택의 여지가 있을 땐 언제나 '새로운 쪽'을 택하기.

단골집을 갈까, 요즘 핫하다는 곳에 갈까 할 땐 안 가본 곳으로.

레스토랑에서 이걸 먹을까 저걸 먹을까 할 땐 안 먹어본 것으로.

장을 볼 때 늘 사던 걸로 살까, 안 사본 걸 사볼까 할 땐 처음 써보는 제품으로.

둘 다 처음 해보는 것일 경우엔 평소의 선택에서 좀 더 거리가 먼 쪽으로.


'둘 중 어떤 게 더 좋을까' 하면 고민이 끝도 없지만 '둘 중에 안 해본 것은?'의 답은 분명하고 뚜렷했다. 쉽게 결정을 잘 못하는 편인데 이렇게 확고하게 새로운 쪽으로 선을 긋다 보니 선택이 간단명료해졌다.

새로운 걸 시도하자고 마음먹으니, 가봐야지 가봐야지 생각만 했던 곳에도  가 볼 수 있게 됐다. 결과는 성공적.

그렇게 약 일 년 가까이 살고 있는 중이고, 효과는 꽤 놀랍다.


모든 시도에 성공할 수는 없어서 한번 실패할 때마다 돈과 시간이 낭비되어 속이 쓰릴 때도 있지만, '시도그 자체를 위한 시도'라는 걸 알기에 크게 마음이 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시도를 통해 새로 발견한 좋은 경험과 장소가 훨씬 더 많아졌다.


뿐만 아니라 내가 사는 뉴욕이라는 도시의 음식과 전반적인 경험치의 데이터가 짧은 시간에 훨씬 풍부해졌다. 그도 그럴 듯이, 십 년 넘게 살면서 경험에 의해 결정한 단골집과 루틴 위주로만 살았는데 그걸 벗어나니 내가 가본 곳, 해본 것, 먹어본 것 등이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갑자기 확 늘어나게 된 것이다.

5번가 트럼프 타워 앞에서 시위하는 사람들. 평소에는 빠르게 지나치던 곳에 가만히 서서 하나하나 읽어보았다.

평범한 일상의 일부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사소한 것들, 사람들, 장소들을 좀 더 시간을 들여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들을 하기 시작하니, 왠지 더 오픈마인드가 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모든 행동의 배경에는 동기가 있다. 도파민은 그 동기에 관여하여 활동하는 호르몬이다. 몸을 움직이면 도파민이 증가해 더욱 움직이고 싶다고 느끼게 되고, 움직이지 않으면 도파민이 줄어들어 더 움직이기 싫어진다.
경험해 보지 못한 음식을 시도해보는 건 여행과 같은 자극을 준다. 평소에 먹지 않았을 조합의 음식들. 이제는 고수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산미가 강해 평소 불호였던 블루보틀에서 인생 최고의 라테를 맛봤다.
무언가를 하면 보상을 받는 형태를 뇌가 인지하면 도파민이 증가한다.

공부한 다음에 단 음식을 먹는다.
목표를 달성하면 가고 싶은 곳에 간다.
하루 동안 일을 열심히 하면 저녁에는 차가운 맥주를 마신다.

단순하지만 이런 학습 사이클로 인해 도파민을 증가시킬 수 있다. ‘무언가를 하면 그 뒤에 즐거운 일이 생긴다.' 이것을 응용하여 도파민을 증가시키는 것은 누구라도 가능하다. 다른 호르몬과 비교하여, 도파민은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호르몬이다.

짐 캐리는 영화 '예스 맨'에서 이혼 후 우울하고 되는 일 하나 없는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치유모임에 나간다. 그곳에서 발견한 Say yes to everything 이론, 즉 새로운 것에 '예스'라고 외치며 받아들이는 방식을 인생에 접목시키게 된다. 이론을 왜곡시켜 받아들인 그는 그에게 들어오는 모든 종류의 추천에 대해 예스를 해 버린다.(그중에는 '한국어 배우기'도 있었고, 실제로 영화에 그가 한국말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모든 것에 예스를 하자 이전이었다면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들에 노출이 되고,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훨씬 넓은 눈이 생긴다.


유연성

포용력

이해심

자신감

활기

마음의 여유


새로운 걸 시도하는 건 의외로 간단하고, 생각보다 훨씬 많은 긍정적 변화와 삶의 에너지를 가져다준다.


나는 얼마나 새로운 것에 노출되어 있는가.

나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을 귀찮아하고 있진 않은가.


프랑스의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인 Deezer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30살이 되면서 더 이상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지 않는다고 한다.  53%의 사람들은 새로운 음악을 찾아볼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답했고, 47%는 새로운 음악을 찾는 데 별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조사에 참여한 총인원의 60%가 음악적 골(Musical rut)에 갇혀있다고 하는데, 이는 새로 나오는 음악보다 예전부터 들어온 음악 위주로만 듣는 걸 말한다.


반대로 새로운 음악을 탐닉하고 찾아내는 데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는 나이는 24살로 나타났다.

이는 프랑스와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행해진 조사지만 국가와 문화를 떠나, 음악을 듣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도 중고등학교 때나 이십 대 때 듣던 음악을 여전히 즐겨 듣는 편이다.


그러나 새로운 걸그룹 노래들이 나오면(요즘 케이팝의 퀄리티는 감격스러울 정도) 찾아서 듣고, 맘에 드는 곡들은 꼭 다운로드해서 듣는다. 우타다 히카루가 작년에 8년의 휴식 끝에 앨범을 냈을 때에도 한동안 마음이 들뜨고 행복했다. 얼마 전에 나온 우타다의 새 앨범과, 음악 스타일과 퀄리티가 내 취향인 레드벨벳의 새 앨범 Summer Magic도 활기와 에너지를 주며 2018년 나의 여름을 다채롭게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내 도파민을 자극하고 지친 나를 달래주는 새로운 것들은 비행기 타고 가야 하는 저 멀리가 아닌 바로 내 주변에도 많다. 가야지 가야지 생각만 오래오래 했던 곳에 기어이 한번 가보는 것. 늘 마시는 아메리카노나 라테 대신 이름이 생소한 음료를 한번 마셔보는 것.


매일 똑같은 인생에 색을 입히는 일.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하나씩 늘려가며 나에게 휴식과 설렘을 주는 건 가까운 곳에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