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태어난 아름다운 당신은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다는 겨울에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난 한 달에도 여러 번씩 친구들의 생일파티에 다녔다. 말수도 없고 전학도 자주 다녔는데 어떻게 반에서 초대장이 돌았던 대부분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았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일 년 내내 친구들 생일을 축하하러 다녔지만, 정작 내 생일파티를 했던 건 한 손에 꼽을 정도다. 이메일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 겨울방학인 1월에는 친구들과 연락도 잘 닿지 않고, 다들 할머니 댁에 가 있거나 가족여행에 가 있곤 했다. 여러 번 친한 친구들을 초대해 파티를 해 봤지만, 막상 당일이 되면 이런저런 사정이 생겨 못 오는 친구들이 많아 실망한 일이 많았다.
그러니 나에게 생일이라는 건, 내쪽에선 열심히 축하해주지만 나는 축하받을 수 없는, 불공평하지만 불평할 수는 없는 그런 것이었다. 생일은 가족과 조용히 보내는 게 1월에 태어난 내 숙명인 것으로 받아들였고, 나 자신을 실망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생일을 별로 중히 여기지 않게 되었다.
타임지에 따르면, 낮이 짧고 밤이 긴 겨울에 태어난 아이는, 임신 중 계절성 정서장애(SAD)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낮이 짧은 영향으로 산모의 뇌에 세로토닌 레벨이 낮아지면 자연스럽게 태아의 뇌에도 비슷한 영향이 있다는 것이다. 3,4,5월에 태어난 아이는 기본적인 낙천주의 성향이 있고, 6,7,8월에 태어난 아이는 일 년 중 계절성 정서장애의 영향을 가장 덜 받는다. 산모가 임신 중 받는 빛의 양이 뇌에 영향을 미칠 일은 없다는 뜻이다. 가을에 태어난 사람은 우울증과 조울증을 앓게 될 확률이 낮은데 반해 성급하고 과민적인 성격(Irritability)을 가질 확률이 더 높다. 겨울에 태어난 사람은 정신분열, 조울증, 계절성 정서장애, 우울증 등을 정신적 질환을 앓을 확률이 높지만 좋은 점도 있다. 2015년 실험에 따르면 창의력과 뛰어난 상상력을 가지고 있는 1,2월에 태어난 이들은 다른 달에 비해 유명인이 될 확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Times, "How the Month You Were Born Affects Your Personality, According to Science"]
중고등학교, 대학교 때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조용한 성격으로 자란 나는 여러 명이 어울리는 경우가 거의 없이 소수의 친구들과 일대 일로 깊게 사귀는 성향이라, 여럿이 모여 파티를 하는 일이 없었다.
대학생이 된 이후 생일 때마다 신경 쓰였던 건 다른 게 아니라 가족들이었다.
나는 외향적인 성향의 가족들 사이에 태어난 내향적인이고, 그건 생각보다 훨씬 더 쓸쓸한 일이었다. 독립하기 전까진 가족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던 적이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에.
나는 혼자 있을 때 에너지가 충전되고,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그들과 보낸 시간 이상으로 혼자의 시간이 필요하다. 흔한 내향형 인간의 특징이다. 그러나 가족들은 모두 외향적인 편이라 밖에 나가 사람들을 만날 때 기운을 받는 쪽에 가깝다. 다들 친구가 많고, 가야 할 곳도 많고 밖에 나가길 좋아해서, 휴일에 가족이 없는 빈 집을 지키고 있는 때가 많았다. 난 그게 아무렇지 않았고 오히려 편했는데, 내가 집에 혼자 있다고 안쓰럽게 보는 가족들의 시선이 불편할 때가 많았다.
난 생일에도 별 계획이 없었는데, 아침에 생일상을 차려주며 엄마는 매년 내가 친구들과 생일파티라도 할 걸 기대했다. 나는 아침에 먹는 쇠고기 미역국과 생크림 케이크 정도면 충분한데, "오늘 생일인데 뭐 해? 친구들 만나?"라는 말이 부담스러웠다. 어쩔 땐 급하게 친구랑 영화 약속이라도 잡아서 종일 밖에 있다 들어가기도 했다.
안 그래도 평소 집에 있으면 나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남자친구도 사귀라는 말이 잔소리처럼 느껴졌는데, 가족들의 상식에는 내가 생일날 별 계획이 없는 게 이해할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친목계를 여러 개씩 하며 여러 곳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수십 년간 인연을 이어가며 어울리길 즐기는 분들이다. 나는 계획이 있던 것보다 없던 생일이 더 많았는데, 나를 불편하게 하는 내 생일은 야속하게도 금방 찾아왔다.
결혼하고 나서 가장 좋은 것 중 하나는, 생일이 더 이상 외롭지도 불편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결혼 후에 뭔가 특별한 생일을 보내는 건 아니다. 선물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챙기지도 않고, 특별한 곳에 차려입고 가서 비싼 저녁을 먹지도 않는다. 그러나 결혼하고 나서야, 생일이나 기념일을 잘 챙기지 않는 게 내 스타일이고 취향임을 깨달았다.
갖고 싶은 게 있으면 평소에 수시로 사고, 선물 받고 싶으면 평소에 받는다. 또 내가 사주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나름의 이유를 만들어서-날씨가 좋아서, 내가 써보니 너도 좋아할 것 같아서, 기분 전환돼라고 -선물하면 상대방도 기뻐한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가고 싶은 레스토랑이 있으면 간다. 늘 충족시키며 살다 보니 생일이라고 해서, 결혼기념일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뭔가 갖고 싶거나 먹고 싶은 게 생기지 않는다.
혼자 살던 유학시절에는 생일날 일을 하거나, 하루 종일 학교에 있거나 하며 하루가 그냥 지나가면 왠지 처량했다. 바쁘면 바쁜데로, 한가하면 한가한 데로 쓸쓸했다. 가족들은 멀리 떨어져 있으니 내가 생일날 뭘 하며 보내는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 편했지만, 그럼에도 생일이 그냥 빨리 지나가길 바랬던 적이 많았다. 생일이면 뭔가 특별해야 하는 날인데, 특별하게 보내고 있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했다. 기분전환을 한답시고 나가서 쇼핑을 해도, 생일날 혼자서 정처 없이 돌아다니고 있는 게 더 쓸쓸할 뿐이었다.
지난 학기 글쓰기 워크숍 첫날, 어쩌다 생일 얘기가 나왔다. 교수님은 갑자기 재밌는 걸 해보자며, 각각 생일이 언제인지 말하라고 했다. 첫 번째 사람이 생일을 말하니 갑자기 다른 학생이, 어 그거 내 생일인데, 해서 다 같이 놀랐다. 두 번째가 지나고 세 번째 학생이 생일을 말하는데 신기하게도 나와 생일이 같았다. 그 수업은 총 12명이었는데, 마지막 사람까지 갔을 땐 같은 생일이 세 번이나 나왔다. 태어나서 나와 생일이 같은 사람을 만난 건 그날이 딱 네 번째였고, 다른 다섯 명은 나보다 그 수가 더 적었다. 난생처음이라는 친구도 있었다. 겨우 12명 중에 생일이 같은 사람이 세 쌍이나 있다니! 다들 놀라 어안이 벙벙해졌는데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거봐, 내가 재밌을 거라고 했지? 수업마다 늘 신기하게도 이런 일이 있더라니까!"
룸메이트가 있을 때는 미리 생일인 티를 안 냈고, 그럼에도 당일에는 괜히 찔려서 집에 없는 척 방에 틀어박혀 있던 적도 있다. 알바를 할 때는 그냥 묵묵하게 일을 하며 보내거나, 아니면 생일이라고 미리 스케줄을 빼고 집에서 혼자 쉬었다.
생각해보면 그냥 맘 편하게 쉬어도 괜찮은 거였는데, 결혼 후에야 비로소 생일날 그냥 집에 있어도 마음이 편해졌다. 남편이 나를 있는 그대로 편견 없이 받아들여주고, 내가 생일을 어떻게 보내던지 그건 내 취향이라는 걸 이해해주니 더 이상 생일이 불편하지 않았다. 생일날 먹고 싶은 케이크를 말하면 사다 주고,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기꺼이 같이 가주지만, 하고 싶은 게 1도 없이 집에 있고 싶어 해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곁에 있어주니 생일은 평소보다 더 행복한 날이 되었다.
남편은 외향적인 성격이라 같이 나가는 걸 좋아하고 늘 원하지만, 내가 그와는 반대의 성격이고 집에 자석이라도 붙은 듯 어딜 가도 곧 집으로 돌아오는 성향이라는 걸 이해하는 정도의 내향성(혹은 이해심)을 가지고 있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내 생일엔 당연히 남편과 뭔가를 하겠거니 해서 남편은 나의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준다. 밸런타인데이, 크리스마스처럼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날에 내 마음이 가는 데로 뭔가를 하거나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편할 수 있게 됐다.
결국 내가 생일에 원했던 건 친구들을 모아 파티를 하는 것도, 근사한 곳에서 데이트하는 것도 아닌, 그날의 내가 원하는 걸 하는 것을 하면서(그게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거리는 일일지라도) 눈치 보지 않고 이해받는 것, 그뿐이었다. 진작에 알았다면 싱글 시절에 나 자신을 인정하고 좀 더 편하게 지냈을 텐데.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에버랜드에 실습을 나간 적이 있다.
다른 실습생들과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일 시작 후 몇 주가 지나 내 생일을 맞게 됐다. 내 생일날 일을 끝내고 우리 부서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 회식을 하기로 했다. 그즈음 정직원이 여러 명 들어와 회식을 해야 했던 시점에 마침내 생일이 있어서 그날 밤 축하 겸 해서 마련된 자리였다. 빠른 년생이라 법적으로는 아직 술을 마실 수 없었지만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직원 회식이었기 때문에 그 사이에 껴서 자연스레 마실 수 있는 분위기가 됐다.
나 말고 다른 실습생 한 명 빼고는 모두 선배였기 때문에, 막내 생일에 한 잔 따라주시겠다며 제일 선임인 과장님부터 서열대로 내려가며 한잔씩 받아 마셨다. 마지막으로 실습생 언니한테까지 받아 마시고 나니 취기가 정말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다 안 마셔도 된다고 하셨지만 진심으로 축하하는 한잔 한잔을 다 받다 보니 나중에 인사를 하고 나올 땐 정말 눈앞이 핑핑 돌 정도였다.
나를 위해 그 부서 사람들이 다 모여서 축하해주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들뜨는 일이었다. 매년 신나게 생일파티를 하는 사람들은 늘 그런 기분으로 하루를 보냈던 걸까? 처음으로 문득 그런 생일들이 부럽게 느껴졌다.
그 자리에 있었던 누구도 그날 밤을 잘 기억하지 않겠지만, 내 생애 가장 기억에 남는 찬란한 생일이었다.
다행히 정신줄을 놓지 않고 자리를 떠나 무사히 기숙사에 돌아갔는데, 기숙사에서 원래 룸메이트들과 생일파티를 하기로 했는데 회식이 예상보다 길어져서 늦게 오자 언니들이 화를 냈다. 내가 늦었다고 그냥 치우고 자고 있어도 할 말이 없었을 텐데, 내가 늦었다고 화를 내는 게 미안한 한편 고맙고 행복했다. 한 번도 내 생일이 나 말고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중요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서. 나는 씩씩하고 쿨한 척하는 내면에는 생각보다 많은 애정결핍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마음에, 사회생활을 하면 매년 생일에 이렇게 축하받는 건가 싶었지만, 지나보니 그저 그 해의 생일이 아주아주 특별했던 것 뿐이더라.
유학생 때 바텐더를 하던 시절, 주말에는 생일파티가 자주 열리곤 했다.
하루에도 여러 팀의 생일파티가 있는 일도 흔했다. 미리 생일 축하 노래를 신청하면 노래를 틀어주고 촛불을 켠 케이크를 생일 주인공에게 가지고 갔다. 주인공은 케이크가 올걸 알고 있을 때도, 모르고 있을 때도 있었다. 바텐더나 다른 스태프들의 생일에 우리끼리 서프라이즈로 음악과 케이크로 축하하면, 손님들이 다 같이 노래하며 축하해주기도 했다.
내 생일이었던 그 해의 토요일 밤, 나는 이른 저녁부터 새벽 2시까지 일하는 스케줄이었다. 12시가 다가오는 시점에 생일 축하 노래 신청 카드가 보였다. 기대하는 마음을 누르고 노래를 트는데 뒤에서 케이크를 들고 나온 웨이터는 순식간에 내 옆을 지나쳐 손님의 테이블로 가져갔고, 모든 손님들이 신나게 생일노래를 부르고 주인공은 촛불을 껐다.
12시가 한참 지나 또 한 번 생일 축하 노래가 신청됐고, 이번엔 내가 노래를 틀지 않고 바 뒤쪽에서 바쁜 척 일을 하고 있었다. 사실 스탭이 생일 당일날 일을 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니어서(보통 미리 스케줄을 빼거나 하기에), 어쩌다 생일날 근무하면 적어도 케이크와 함께 축하를 하는 게 3년 여간 일하며 익숙하게 봐 온 나름의 전통이었다.
한시가 다 된 그 무렵, 그날 밤 두 번째의 생일 축하노래가 크게 울려 퍼졌고, 나는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전혀 기대하지 않는 척, 전혀 모르는 척 무심하게 표정관리를 하고 있었다. 주방에서 케이크를 가지고 나온 매니저가 내쪽으로 다가오더니 지나쳐서 바의 끝에 앉아있는 커플에게로 향했다. 나는 한치의 기대라도 했던 게 무안해서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겉으론 당연하다는 듯 손님의 생일을 축하하고 다른 때보다 더 크게 웃고 손뼉을 치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올해는 아무도 기억을 못 했구나, 차라리 잘됐어, 하고 조용히 집에 갈 생각이었다.
퇴근시간이 되어 옷을 갈아입고 나왔는데, 매니저가 쭈뼛쭈뼛 오더니 미안한 얼굴로 "생일 축하해",라고 말했다. 왜 미안한 표정인지 알 것 같았다. 아마 늦게서야 알았는데 너무 늦어서 케이크를 준비할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 손님의 생일이 두 번이나 있었으니, 마치 큰 실수라도 한 것처럼 나에게 사과를 하는데 나는 그게 더 무안했다.
고맙다고 말하고 나니 왠지 서글퍼져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빠져나왔다. 차라리 끝까지 모른 척해주지. 내 잘못도 아닌데 견딜 수 없이 창피했다. 찬바람을 맞으며 최대한 빨리 걸어가는데, 서운한 마음이 밀려와 울컥 치밀어 올랐다. 거기서 일하는 동안 가졌던 다른 두 번의 즐거웠던 생일파티보다, 그 해의 씁쓸한 기억이 더 오래가는 중이다.
고3이 되던 해였나.
겨울방학 없이 학교를 다녀야 했던 그해의 생일날 아침 학교에 올라가는 길에 반 친구를 만났다. 2년째 우리 반 반장인 친구였는데, 단짝 친구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전혀 안 친한 건 아닌 그런 사이였다. 우리는 날씨가 춥다느니 피곤하고 졸리다느니 일상적인 얘기를 나누며 같이 걸었다. 그러다 친구는 문구점에 들러야 한다며 갔고 나는 학교로 가서 평소처럼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했다.
아침자습시간이 시작하기 전 갑자기 친구들이 생일 축하노래를 불러서 일어나 보니, 아까 오는 길에 만났던 친구가 초코파이를 쌓아 만든 케이크에 초를 꽂아 내 자리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놀랍고 잠이 덜 깨 어안이 벙벙했지만 얼른 촛불을 끄고, 친구들은 박수를 치고, 다 같이 나눠먹고 자습에 들어갔다.
어떻게 내 생일인걸 알았고, 왜 깜짝 축하를 해주기로 한 건지 궁금했지만, 그날 이후 한 번도 그 일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았다. 그렇게 해주는 본인도 "나 왠지 오버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듯 쑥스러워하고 있어서(원래 츤데레 같은 성격이었다), 나는 그냥 한껏 즐거워하고 고마워했을 뿐이었다.
그 후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그 친구와 아직도 연락을 하며 지낸다. 지난여름에는 뉴욕으로 출장을 와서 정말 오랜만에 만나 수다를 떨었다. 몇 주 뒤에 친구가 시카고에 온다고 해서 만나러 가기로 했는데, 이번에 만나면 한번 물어볼까 싶다.
미리 계획한 건 아니었을 텐데 그날 등굣길에 왜 갑자기 놀라게 해 주기로 생각한 건지. 내 생일인 건 언제 어떻게 기억한 건지.
그리고 얘기해줄 것이다. 덕분에 학창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생일이 되었다고. 아마도 즉흥적으로 해줬을 그날의 생일 축하가 사실 학창시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아본 서프라이즈였다고, 오래오래 지금까지 행복한 추억으로 남았다고 말이다.
생일에 대한 달콤하고 씁쓸했던 기억을 이렇게 쓴 것도, 결국 한 번도 누구에게 한 적 없는 그날의 따뜻했던 추억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글로 남기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친구는 케이크가 아니라며 미안해했지만 그날은 정말 달콤했고, 아직까지 매년 생일마다 한 번쯤은 떠올리고 있었다고 용기 내어 고백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