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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정아 Feb 26. 2019

서툴지만 확실히 나아지고 있다면

내 인생 뼈아픈 상처들을 껴안고 나아간다.

20대의 나는 유노윤호 못지않은 열정 부자였다.


연애할 시간도 없이 조금의 에너지도 허비하지 않고 꿈을 향해 달렸다. 뚜렷한 목표가 있었고, 원대한 야망이 있었고, 내 모든 걸 불사르겠다는 열정과 의지가 있었다. 맨 땅에 헤딩하는 것과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주특기였다. 한번 마음을 먹으면 누구도 말릴 수 없었고, 계획을 세우면 미친 듯이 밀어붙였다. 시간을 쪼개 한 번에 두 가지 세 가지 일을 병행해가며 이십 년 같은 십 년을 산 결과 몸과 마음이 방전되었고, 그 상태를 헤어 나오지 못한 채 꽤 오래 살다 이제야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주변에 누구도 내가 꿈꾸던 길을 간 사람이 없어서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스스로 뚫어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누구도 인생을 이렇게 살라고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혹시 가르쳐줬다고 한들 그 말이 정답이었으리란 보장도 없다. 결국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확실히 십 대의 나와 이십 대의 나는 꽤나 다른 유형의 사람이고, 지금의 나는 어렸던 내가 생각하지 못한 형태로 달라져 가고 있다.


어떻게든 조금씩 발전해나가고 있는 중이면 됐다.


열정이 넘치던 20대 때 내 인생의 일 순위는 꿈을 이루는 것이었다. 좀 더 자고 싶고, 쉬고 싶고 때로는 놀고 싶었을 텐데 그런 걸 허락하지 않은 채 꿈을 이뤄야 한다고 계속해서 채찍질하고 나를 다그쳤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며 밀어붙였다. 내 건강보다 내 꿈과 목표를 더 소중했다.

꿈은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지만 나를 해치면서까지 이뤄야 할 건 아니라는 게 20대를 마치고 내린 결론이다. 


그렇게 해서 지켜야 할 건 아무것도 없다. 돌아보면 좋은 일도 많았지만, 뭘 위해 왜 그렇게까지 노력했나 싶어서 조금도 즐기지 않고 하얗게 불태운 이십 대가 서글프다.


꿈을 이루려다 지쳐 쓰러져 죽는다면 그것도 낭만이라고 여기던 시절이었다. 인생에 열정 할당량이 있다면 나는 그중 반을 20대에 썼다. 다시는 그렇게 열심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시간을 보냈다. 백세시대인데 나머지 반의 열정을 60년 넘게 나눠서 써야 한다.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이 세상에 나를 아낌없이 내던졌었다. 나를 지칠 때까지 몰아붙인 사람은 늘 나 자신이었다. 삼십 대의 나는 나 자신에게 관대하고 너그러우려고 노력한다.


난 열정 페이 부자였다. 열정 페이 끝에 원하는 결과가 있을 줄 알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쓰며 합법으로 일할 신분도 아니었던지라 더 힘들었다. 내 꿈을 위해 잠을 줄이고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에 무급으로 일하길 계속하니 점점 지쳐갔다. 


삼십 대의 나는 더 이상 내 꿈을 위해 저자세로 남의 호감을 얻어 기회를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십 대의 많은 시간 열정 페이를 받고 일한 게 버릇이 돼서 삼십 대가 돼서도 난 더 나은 기회를 얻고 인맥을 쌓기 위해 나보다 훨씬 더 성공하고 잘 나가는 사람의 일을 대가도 없이 내 일보다 더 열심히 도와주며 소중한 시간을 낭비했다.

 

별로 내키지 않아도 일단 경험을 쌓기 위해, 그 사람의 호감과 믿음을 얻어서 내가 좀 더 나은 곳으로 가기 위해 내 시간과 에너지를 썼다. 


한참의 시간을 낭비하고 나서야 내가 이용만 당한 관계였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남을 돕는 데도 한계가 있는데, 나는 그 한계를 모르고 계속해서, 어쩌면 본인보다 더 열심히 일하며 언젠가 나를 도와줄지도 모를 사람들을 도왔다.


상처뿐인 관계를 몇 번이나 내 손으로 끊어내고 나서 깨달았다. 내가 잘 되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은 나 자신에게 노력을 쏟는 것뿐이란 것을. 내가 잘 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사실을.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을 발전시키는 게 최상의 선택이고 가장 생산적인 일임을.


"좋은 사람" 콤플렉스가 있었다. 

좋은 마음으로, 좋은 게 좋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도와주다 보니, 어느새 부탁하기 쉬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누군가를 만날 때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최우선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한 사람의 지위나 능력, 그 사람의 영향력보다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 게 더 중요하다. 그래서 나 또한 늘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한 강박이 있다. 


자신의 발전과 번영에 집중하기 위해 남의 무리한 부탁을 거절하는 게 결코 이기적인 게 아님을 이제야 마음속 깊이 새겼다. 나는 이제 기회와 경험을 위해 돈을 안 받고 일을 하는 모든 행위를 거부하기로 했다. 누군가 부탁을 해오면 버릇처럼 선뜻 승낙하는 습관도 버릴 것이다.


사람에게서 받은 뼈아픈 실수와 상처들. 다시 돌아가면 좀 더 조심하거나 아예 피해버리거나 혹은 좀 더 과감하게 시도했을 것들. 거창하고 대단하지 않지만 기억에 오래 남아있는 크고 작은 순간들. 찝찝했던 뒷마무리와 미숙했던 대응방식들. 다시 살면 좀 더 잘 살아낼 청춘이지만 그때는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서 살았던 삶이다. 


예전의 실수는 마음 아프지만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남에게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그들에게 인정받고 호감을 얻기 위해 쓰던 시간과 노력을 모두 나에게 쓰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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