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라고 부르지 마세요
유 퀴즈 온 더 블록을 보면 진행자 유재석은 거리에서 만나는 중년의 여성분부터 할머니까지 아울러 모두 여사님이라 칭하며 인터뷰한다.
무대의상이라 부르는 유니폼을 가지러 가면 카운터 건너편에서 옷을 주시는 분들을 중년의 여자분들, 직원식당에서 음식을 준비해 주시는 분들 모두 여사님이라 칭할 것: 에버랜드 서비스 교육 첫날 배운 것 중 하나가 호칭에 관한 것이었다.
대학교 4학년 때 나는 미국 유학에 갈 비용을 모으기 위해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방학 때 전공 관련 기업에 실습을 나간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학교와 관계없이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보는 건 처음이었다. 학교와 집 중간쯤에 위치한 영어학원이었는데 인근에 큰 아파트 단지가 있어서 초등학생, 중학생들의 수요가 꾸준한 곳이었다.
영어강사로 일한 경력은 없지만 내 특기를 살리는 일이었기에 크게 어렵지 않았고, 내가 대학생이라는 걸 아는 학원 측에서도 많은 배려를 해줬다.
일을 시작한 지 2주쯤 지났을 때였나, 퇴근하려고 나서는데 데스크 직원분이 나를 조용히 불렀다.
소규모 학원이라 원어민 강사 두 명에 나를 포함 한국인 강사 네 명, 원장님과 사무직 직원분인 혜원 씨(가명) 한분 그렇게 여덟 명이 다였다. 누구도 나에게 텃세를 부리지 않고 다 잘해줬는데, 그날 나를 부르는 그분의 낌새가 왠지 싸했다.
-선생님, 저한테 '저기요'나 혜원 씨라고 하시는데요. 그렇게 부르시면 안 되죠.
아랫사람 가르치듯 훈계하는데 그분이 내 상사는 아니었기에 그렇게 단호한 말투가 당황스러웠다.
프런트에서 일하던 혜원 씨는 원장님을 도와 학원의 전반적인 사무일을 맡아서 하는 분이었는데, 나이가 나 이외 다른 선생님들과 비슷한 또래였고 모두 "혜원 씨"라고 불렀다. 내가 나이도 한참 어린데 그렇게 부르는 건 불편해서 최대한 그분을 부를 일을 피하며 지냈다. 그래서 "죄송한데요", "저기요", "여쭤볼 게 있는데요" 등 다양하게 써가면서 혜원 씨라고 부르는 걸 피했지만, 사회생활을 하려면 이런 것도 극복해야 하나 싶어서 다른 선생님들과 똑같이 혜원 씨라고 쭈뼛쭈뼛 처음 불러 본 날 나를 불러 세운 것이다.
혼나듯 듣고 있으니 억울했지만 잠자코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라고 했고, 어린 마음에는 그게 부당하게 느껴졌다. 내가 자기 아래서 심부름하는 아르바이트생도 아니고 다른 선생님들과 똑같이 내 몫을 다 하고 있는데. 영어 특기자, 영어 말하기 대회 준비반 등 난도가 높은 클래스들을 맡아 원생 모집도 잘 되고 있어서 원장님도 나에게 예의를 갖추시는데. 다른 선생님들한테는 깍듯하면서 내가 어리니까 다들 퇴근하고 아무도 없을 때 나를 불러 세웠나 싶었다.
학원에서 그 누구도 그녀를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학생들은 그녀를 언니, 누나라 부르고, 원장님과 다른 선생님들은 혜원 씨라고 불렸지만 나한테만은 어떻게든 선생님으로 불려야겠다는 게 갑질같이 느껴졌다.
죄송해요. 잘 알겠습니다,라고 하니 그녀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나오자마자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서 방금 일어난 이야기를 하니 의외의 쓴소리가 돌아왔다. 이 친구는 평소 억울하고 부당한 걸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당연히 "왜요? 다들 혜원 씨라고 부르는데 왜 저한테만 그러세요?"라고 할 법한 친구였다.
-야 그건 그 사람이 맞는 거지. 저기요라고 부르면 기분 나쁘지. 누구 씨 하는 것도 좀 그렇고.
-아니 다들 언니 누나라고 부르고 혜원 씨라고 부르는데? 나한테만 자기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라는데 좀 웃긴 거 아니야? 내가 어리니까 자기 아래로 보려는 거 아니냐고.
알바 경험이 풍부했던 친구는 끝까지 그게 아니라며 원하는 데로 불러주라고 했다. 놀란 마음을 풀려고 전화했는데 쓴소리만 하니 서운했다. 나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선생님이라고 그녀가 원하는 데로 불러주는 것과 나도 똑같은 선생이니 세게 나가서 기싸움에서 승리하는 것.
하지만 기싸움, 서열전쟁을 하며 에너지 낭비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불러주는데 돈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나도 불편하던 차에 본인이 나서서 호칭 정리를 해주니 고맙다고 생각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그다음 날부터 선생님이라고 부르니 속이 편했고 본인도 흡족해했다.
중소기업 사장이 된 여고 동창은 나랑 이야기할 땐 영락없는 그 시절 우리 반 친구였다. 그녀가 출장 왔던 시카고 생활용품 박람회 첫날 현지 한인업체에서 부스에 진열대와 조명을 설치하러 왔는데 친구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장님 사장님 하며 당장 급하게 필요한 것들과 그 설치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요구하는 걸 보니 사람이 달라 보였다.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 S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데 대전에서 꽤 유명한 기업체의 딸인 S의 어머니를 언급하며 "아, 그 사모님이 굉장하신 분이야."라는데 다른 세계 말처럼 들렸다. 친구 엄마를 사모님이라 칭하다니. 나는 아직 어색한 어른의 말투가 친구에겐 너무나 자연스레 몸에 배어있었다. 그 녀에게 친구 어머님은 고등학교 동창 엄마인 이전에 다른 기업의 사모님이었다. 이 친구가 진짜 어엿한 사장이 됐구나 싶은 느낌이 들었다.
사회생활을 오래 한 다른 친구들도, 얌전하고 목소리가 작았던 친구도, 영원히 그럴 것 같지 않았던 우리 언니까지도 이제 함께 식당에 가면 자연스레 "사장님!" 한다. 아니 저분이 사장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고? 하는 건 나의 미성숙함일 뿐. 나는 그런 어른의 센스가 자연스레 입에 배기 전 이십 대 초반에 한국을 떠났다.
어릴 때 아빠와 어딜 가면 처음 보는 어른들이 아빠한테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우리 아빤 선생님인데 왜 사장님이라고 부르지? 한편 생전 처음 보는 분들이 아빠한테 선생님 선생님 하면, 어 저 사람은 우리 아빠가 선생님인걸 어떻게 알지 싶어 신기했었다.
사람들을 대할 땐 본인이 선호할만한 호칭으로 불러주는 것. 식당에 가면 아줌마, 여기요가 아닌 사장님으로 부르는 게 어른의 센스라는 것.
이십 대 초반 영어강사 일을 하며 한 가지 배운 게 있다면 그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