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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정아 Nov 04. 2019

서른여섯 살, 젓가락질을 바로잡다.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냐지만

생각해보면 애초에 젓가락질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유아기 때 혼자 나만의 방식으로 젓가락 쓰는 법을 터득한 걸 부모님이 굳이 바로잡지 않으셨고, 그대로 쭉 굳혀져 삼십 년 넘게 잘 먹고 살아왔다. 초등학교 때 친가에서 어른들과 식사를 하면 할머니가 가끔 "젓가락을 왜 그렇게 잡어. 여기를 이렇게 해서 이렇게 잡아야지." 하며 시범을 보이시곤 했는데 그럼 모두의 시선이 내 젓가락질에 쏠릴까 봐 그때부터 식사가 끝날 때까지 숟가락으로만 먹었다. 안 그래도 내성적이고 말이 없던 내가 주눅 든 모습이 불쌍했는지 엄마나 아빠가 "애 그냥 밥 먹게 내버려 두어요." 하며 편을 들어주기도 했지만 나는 혼나는 게 싫어서 그 순간을 벗어나고 싶기만 했을 뿐 고쳐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 나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남자 짝꿍의 젓가락질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주먹을 쥔 손에 젓가락을 끼워 넣은 아주 둔탁한 모양이었다. 젓가락 두 짝이 다 단단히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두 젓가락을 손에 움켜쥔 채 라면 면발을 들어 올려 먹는 식이었다. 달리기 할 때 배턴을 손에 잡은 식으로 젓가락을 쓰며 사발면 하나를 다 먹는 걸 보고, 저렇게도 먹는 애도 있는데 내가 쓰는 젓가락질은 얼마나 섬세하고 창의적인가 싶었다.

그 시절 남자 짝꿍이 젓가락을 쥐던 방식. 손에 단단히 쥔 채 면은 들어 올려 먹고 음식은 찍어먹었다. 손목이 바쁠 듯한 방법.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라는 노래가 나온 이후엔 더더욱 인식이 달라져서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젓가락을 쓰는 사람들이 어디서도 당당히 식사할 수 있게 됐다. 미국에 살며 세계 각국에서 온 여러 인종들의 다양한 젓가락질을 보면서, 내가 쓰는 정도의 방식은 크게 눈에 띄지 않고 아주 무난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다 문득 젓가락질을 고쳐볼까 싶어 이베이에서 성인용 교정 젓가락을 샀던 게 2017년의 가을의 일이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저런 게 성인용도 있다는 걸 알고 나서 호기심에 구입해 한 달 넘게 사용해 봤다. 그러나 한 달 넘게 써도 교정이 되는 느낌이 없었고, 배가 고프거나 마음이 급할 땐 자꾸 손에 익숙한 원래 방식으로 되돌아가곤 해서 결국 포기했었다.

야심 차게 이베이에서 구입한 한국의 성인 교정용 젓가락은 큰 도움이 안 됐다.

연예인 젓가락질이라고 구글에 검색하면 실로 다양한 방식들을 엿볼 수 있다.


그런 모습마저 귀엽고 정감 있어 보인다는 팬들도 있고 성인이 젓가락을 저렇게 집다니 모자라 보인다는 의견도 있다. 한 가지 방식의 젓가락질을 정석으로 삼고 그 방식만이 바르다고 인식하고 주장하는 게 일제 잔재라는 비평이 있는 한편, 일본보다 더 긴 세월 젓가락을 써 온 우리 문화 고유의 전통이라는 반대쪽 의견도 팽팽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젓가락질 잘 못해도 밥만 잘 먹는다는 건 진리다.


모 식품기업의 면접에서 젓가락질을 해보라고 시켜서 기사가 난 적이 있다. 결혼할 시기가 된 사람들이 상견례를 위해 젓가락질을 고치려고 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나는 어릴 적 할머니 댁에서의 식사자리 이외에서는 젓가락질을 지적당한 적도 없고, 큰 불편함도 느낀 적 없이 평생을 살았다. 그러다 최근 아주 사소한 계기가 생겼다.


나와 관심사가 비슷하고 지난 몇 년간 만날 때마다 빨리 유튜브를 시작하라고 서로를 부추기는 사이인 친구가 있는데, 올봄 그녀와 함께 우리의 단골집인 유니언 스퀘어 베트남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었다. 언제까지 유튜브 하자고 말만 하지 말고 우리도 한번 찍어보자며 식사하는 영상을 촬영했었다.


친구는 테이블 건너편에서 재잘재잘 음식 평을 하고 나는 그런 친구를 찍으며 말을 시켰다. 음식이 나오는 걸 찍은 후 삼각대 위에 고정해서 테이블 한쪽에 세워 앵글을 맞춰놓고 식사를 이어갔다. 그날의 영상은 계절이 두 번 바뀔 동안 어디에도 공개되지 않은 채 아직 내 폰에 그대로 저장되어 있지만, 가끔 그 영상을 볼 때마다 젓가락으로 국수면을 집는 내 손이, 정확히는 내 젓가락질이 꽤나 거슬렸다.


내 시야에서 본 내 젓가락질은 지극히 평범하고 무난한 모습이었는데, 내 시점이 아닌 각도에서 보는 젓가락을 집은 내 손은, 내가 평소 추구하는 우아하고 단정한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어 보여 놀랐다. 내가 그동안 저렇게 쓰고 있었구나. 다른 사람 시점에선 내 손이 저런 모양이구나. 엄지손가락의 위치가 꽤나 튀는 모양새였다.



여름을 한국에서 보내고 돌아온 9월의 어느 날.


영상 속 새우볶음 쌀국수를 먹는 내 손을 보다 문득 우리 가족들 다 정석으로 젓가락질을 하는데 왜 나만 혼자 이러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왜 아무도 고쳐주지 않은 거지? 한 번도 신경 써서 본 적 없던 테이블 건너편 친구의 젓가락질도 단정하고 우아했다.


그래 다시 도전해 보는 거야. 숨 쉬듯 자연스레 평생을 써 온 젓가락질을 과연 의지 하나로 고칠 수 있을까 호기심이 일기도 했다.


한 번 더 제대로 시도해보자는 마음으로 블로그 후기도 찾아보고, 젓가락질을 한 달 만에 교정했다는 후기 영상도 찾아봤다. 외국인들이 설명하는 올바른 젓가락 사용법 영상도 봤다. 다양한 접근 방법을 찾아보고 싶어서였다. 결론은 인내심과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특히나 수십 년간 손에 익은 방식이 있는 성인의 경우 더욱 그랬다. 야심 차게 서랍에서 교정용 에디슨 젓가락을 꺼내 약 2주간 썼지만 이걸로는 일취월장할 것 같지 않아서 과감하게 일반 젓가락으로 연습하기 시작했다.


어릴 때 할머니가 말씀하셨던 방법 그대로 젓가락 하나는 움직이지 않게 고정하고 하나는 자유롭게 움직였다. 그나마 요즘 식욕이 많이 주춤해지고 식탐이 잦아들어서 그런대로 인내심을 갖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새로운 젓가락질로 집기에는 여전히 난도 높은 음식들이 있다. 미끄러운 것, 덩어리가 너무 큰 것, 너무 작은 것, 가느다란 면발, 생선살을 바르는 것이나 김을 밥으로 싸는 등의 행동은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꽤 걸리는 중이다.


시행착오의 시간


식사뿐 아니라 젓가락을 써서 요리를 할 때도, 많은 양의 음식을 덜거나 세게 집으면 깨질 만큼 물렁한 음식을 집는 것도 이전의 방식이었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새로운 방법으로는 아직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내 손은 이미 수십 년간 써 온 방식에 익숙해져 있어서 이전과 다른 손의 부위와 근육을 써야 하는 새로운 방식은 인내심을 요할 때가 많았다. 자꾸 음식을 떨어뜨려서 옷에 음식이 묻는 경우도 잦았고 아예 테이블 아래로 떨어뜨리는 일도 많아졌다.


마음이 급해지거나 집기 어려운 음식을 집어야 해서 손이 자연스레 편한 방식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마다 더욱 차분히, 천천히 집중했다.


'식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무조건 이 방식으로만 집어서 먹는다.'라는 굳은 의지로 먹다 보니 이제 젓가락을 집으면 자연스레 올바른 위치에 가서 자리를 잡는다.


새로운 젓가락질을 쓴 지 한 달 후 친구를 만난 자리, 젓가락질을 바꾸고 처음으로 남편이 아닌 사람과 밖에서 식사하는 자리였다. 그날의 메뉴는 한식당에서 먹는 설렁탕이었는데, 반찬은 겨우 김치와 깍두기뿐이었는데도 젓가락이 달라서인지 하나를 집는데도 오래 걸리고 놓칠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내 느낌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친구는 내가 젓가락 쥔 손을 연신 바로잡아가며 천천히 깍두기 하나를 집는 걸 말없이 길게 바라보는 것 같았다. 한두 번 같이 밥 먹은 사이가 아니라서 갑자기 젓가락질이 서툴어진 날 보며 '얘가 뭐 하는 거지?'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아직 다 교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요즘 젓가락질을 고치는 중이거든"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새로운 젓가락질에 열심히 손을 길들인 지 두 달 정도 된 지금. 예전의 방식으로 젓가락을 잡아보면 손이 어색한 정도로 새로운 방식이 손에 많이 익었다.

엄지손가락이 유난히 튀어 보였던 그날의 젓가락질. 이 영상으로 유튜버는 못됐어도 젓가락질은 고쳤다.

최근 친한 언니의 웨딩 리셉션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 저녁을 먹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인근의 중국 식당 젓가락은 집에서 쓰는 것보다 더 길고 묵직해서 손에 편했다. 자연스레 내가 젓가락질을 고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같은 테이블에 있던 백인 남성은 이 주제를 꽤 흥미롭게 듣는 것 같았다. 아시아인이 모두 하나의 방식으로 젓가락을 쓰지 않는다는 것, 나 같은 젓가락 문화권 출신도 정석에서 거리가 먼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다 성인이 되어 어떠한 계기를 가지고 교정을 시도했다는 것 등은 그가 몰랐던 동양인 젓가락 사용법의 뒷얘기였을 것이다.


원래는 이렇게 썼는데 이제는 이렇게 고쳤어, 하며 접시에 있는 땅콩을 집어 보이니 "정말 우아해(graceful) 보인다!"라고 감탄을 표하는데 색다른 기분이었다. 내 젓가락질이 우아하다는 소리를 듣다니. 나에게 이런 날이 왔다. 할머니께 몇 번을 혼나도 꿈쩍도 않던 젓가락질이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 눈에 거슬리니 이렇게도 금방 바로잡을 수 있었다.


여섯 살 때 바로잡지 못했던 젓가락질, 서른여섯의 끝자락에 가까스로 고쳐서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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