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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정아 Oct 09. 2019

돈가스 먹으러 갔다 죽을 뻔했다

언젠가 당신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는 이야기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공포스러운 경험을 해 본 적 있는가?


나이가 들수록 이런 경험의 횟수가 하나 둘 늘어간다. 이런 일은 의외로 비행기를 타거나 번지점프를 하듯 거창하고 특별한 이벤트 중 일어나지 않는다. 지극히 평범한 날, 큰일이 날 리가 없는 일상 속에서  아차 하는 찰나에 발생한다.


그날도 평범한 하루였다. 돈가스 먹으러 갔다가 비명횡사할 뻔하기 전까진.


같이 한국 휴가를 온 남편을 먼저 뉴욕으로 보낸 날이었다. 인천공항행 리무진 버스를 태워 보내고 난 후 미용실에 가서 미국 가기 전 마지막으로 머리를 짧게 잘랐다. 끝나고 나오니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어서 친구가 친절하게 내 우산까지 챙겨 미용실 앞으로 와서 만났고, 은행동 나온 김에 옛날 기분이나 내자며 경양식 돈가스를 먹으러 갔다.


거의 한 달 만에 만난 친구와는 할 말이 많았다. 사건의 첫 번째 원인. 한국에 두 달 넘게 머무는 동안 자주 볼 줄 알았는데 남편 오기 전에 딱 한번 보고 두 달 동안 국내외로 계속 여행을 다니느라 갈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한번 더 볼 시간이 생겼다.


은행동 아저씨 돈가스는 우리가 학창 시절 때부터 있었던 맛집이라는데 둘 다 처음 가봤다.


내가 경양식 돈가스집을 검색해서 간 건데 주문을 하려고 보니 가격이 너무나 저렴해 친구가 급 흥분하며 "이런데선 오븐 스파게티도 하나 시켜야지!" 하며 같이 셰어 할 오븐 스파게티를 시켰다. 이게 사건의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돈가스가 나오고 텅 빈 레스토랑에서 우리는 쉴 새 없이 수다를 떨었다. 이제 뉴욕 갈 날을 5일 앞두고 마지막으로 만나는 자리였다. 그동안의 이야기를 쏟아내느라 나온 음식에 손도 못 대고 있을 정도였다.

운명의 스파게티. 음식 나오고 사진 찍을 때만 해도 하하호호 즐겁기만 했는데.

이윽고 오븐 스파게티도 나왔다. 딱히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다. 요즘엔 떡볶이나 닭갈비에도 치즈가 들어가 있지만 나는 치즈가 없는 오리지널 버전을 더 좋아한다. 토종/아재 입맛이라 느끼한 음식을 즐기지 않는다. 내 앞의 돈가스를 썰다가 오븐 스파게티가 테이블에 놓이니 자연스럽게 손이 가서 치즈와 스파게티를 섞어 한입 먹었다.


바로 얘기를 이어가려는데 나도 모르게 치즈 덩어리가 목구멍으로 쑥 넘어갔다. 치즈 덩어리가 왠지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넘어간 느낌이었다. 몇 번 삼켜보려 했지만 중간에 탁 걸린 음식은 위로도 아래로도 움직이지 않았다. 입에 남은 음식을 냅킨에 뱉고 입안에 공간을 확보했지만 이미 목구멍 끝에 숨이 턱 막혀서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약 5초가량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앉아있는 자체가 답답해서 본능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친구는 갑자기 일어난 나를 보며 "왜 그래? 이상한 거 들었어?" 하는데 너무나 평화롭고 태연하다. 간신히 정신줄을 잡고 서서 테이블 위의 돈가스를 바라보는데 점점 아득해진다. 말도 없이 갑자기 일어나 서 있는 내가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내 앞의 돈가스 접시를 바라보며 그 음식 위에 토하는 상상을 했다. 왠지 그 방법밖에 없을 것 같은데 그것만은 피하고 싶다. 최대한 조용히 이 상황을 극복하고 싶었다. 코나 입에서 막힌 게 아니라 가슴속부터 숨이 안 쉬어지고 머릿속에 안개가 뿌옇게 낀 느낌이 들었다.


악! 헉!


다시 뱉어보려고 했지만 그러기엔 너무 깊숙이 있는 느낌이었다. 고구마를 먹고 목이 막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답답함이다. 음식이 기도를 막은 기도폐쇄의 순간이었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머릿속은 혼미해져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저 멀리 남자 직원들 두 명이 내가 벌떡 일어나는 걸 봤지만 이내 고개를 돌리고 자신들이 하던 이야기를 계속해 가는 게 보였다.


'정신줄을 놓으면 여기서 죽는다'는 생각이 진지하게 든 건 그때쯤이었다.


처음 와본 이 돈가스 집에서 스파게티 한 입 먹고 쓰러져서 실려나가는 상상을 했다. 두 달 동안 한국 와서 잘 놀아놓고 집에 가기 직전에 여기서 죽은 날 보며 엄마 아빠가 허망해할 모습이 떠올랐다.


죽을 것 같은 순간에 그동안의 삶이 영화처럼 눈앞에 펼쳐진다는데 내 눈앞에 펼쳐진 모습은 그런 것들이었다. 그렇게 미국에 오래 살았지만 결국엔 한국에서 죽는구나. 한국 119에 실려 한국 병원에 가서 한국에서 죽는 운명이구나 하는 정도의 부질없는 생각이 뇌를 스쳤다.


미국에서 Choking이라고 부르는 기도폐쇄라는 걸 처음으로 본 건 초등학교 때 본 영화 미세스 다웃파이어에서였다. 영화의 끝자락에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하던 피어스 브로스넌이 갑자기 목에 뭐가 걸린 것처럼 놀라 컥컥 대니 옆자리에 있던 여자 주인공 샐리 필드가 곧바로 choking 된 것을 인지하고 멀리에 있던 미세스 다웃파이어를 부른다. 그녀는 단숨에 달려가 그를 뒤에서 껴안고 가슴팍을 친다. 그러다 뒤로 넘어지며 목구멍에서 미처 씹지 못하고 넘어간 통 새우가 튀어 나가는 장면이다.


어린 마음에, 물을 마셔서 삼키면 되는데 왜 저렇게까지 하지? 하며 미국인들은 별거 아닌 일에 과하게 반응하는구나 싶었다.

무지하던 시절, 물을 마시면 되지 저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었던 영화에서의 기도폐쇄 장면
실제로 해외 영화나 드라마에 종종 나오는 장면이다.

미국에서 살다 보니 그때 샐리 필드가 피어스 브로스넌을 보고 바로 기도폐쇄를 알아챌 수 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미국에선 레스토랑이나 커피숍, 패스트푸드 점까지 식음료 업장에는 어디에나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기도폐쇄 응급처치(Choking Victim) 포스터가 붙어있다. 오랜 미국 생활을 한 나는 이런 정보에 익숙해져서 "기도폐쇄=하임리히 법"의 공식을 알고 있었지만 내 친구나 돈가스 집 남자 직원들은 그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숨이 꽉 막혀있는 그 순간 "이런 상황이면 하임리히 법도 안 통하겠다"라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었다.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숨을 못 쉬어 답답하고 정신이 혼미한데 누가 나를 뒤에서 껴안고 명치를 쳐주기엔 너무 시간이 지체됐다. 뒤에 와서 끌어안고 명치를 치고 하는 새에 정신을 잃어 죽을 것 같았다.


친구는 건너편에 앉아 눈만 깜빡이며 "왜 그래?"라고 묻는데 나는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숨이 콱 막혀 얼굴색이 변해가고 있었을까. 야속한 몇 초의 시간이 흐르며 점점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까운 쪽으로 치우치고 있었다. 일상의 순간에서 갑자기 죽음의 문턱에 도달한 참담한 순간이었다.


화장실, 이라고 간신히 내뱉으니 내 목소리의 일부만 작동하는 듯 처음 들어보는 쇳소리가 났다.

"화장실? 나도 몰라." 하는 친구가 어찌나 원망스럽던지.


마지막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직원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말도 못 하고 죽더라도 화장실에 가서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직원들 가까이에 가니 화장실을 손으로 가리키는데 하필 위층에 있다. 이 와중에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니 첩첩산중이었다. 이미 눈앞이 뿌옇고 캄캄해져서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고 있는 상황이었다.


계단 중간에서 쓰러지는 상상을 하며 발을 내디뎠다. 머릿속이 하얬다. 나는 죽느냐 사느냐 절체절명의 위기인데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그 상황이 공포스러웠다. 기어오르듯 계단을 네 칸쯤 올라가니 목구멍 끝에 툭, 하고 숨 쉴 공간이 조금 열렸다. 살겠구나 싶은 순간 두세 칸 더 올라가니 마침내 나머지도 쑥 내려가는 느낌이 들며 숨통이 탁 트였다.


화장실에 가서 억지로 토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잠깐 서서 제정신이 돌아오니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거울을 보니 죽다 살아와서 겁에 질린 짧은 머리의 내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다.


정신이 혼미해졌을 때 포기하고 그냥 주저앉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아찔하다.

직원들 뿐 아니라 손님들도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붙어있다.
다양한 종류의 기도폐쇄 응급처치 포스터들. 실제로 뉴욕 식당에서 많이 봐온 포스터들이다.


https://1boon.kakao.com/realfood/firstaid

미국에서는 기도폐쇄 포스터를 일상적으로 봐왔지만, 주변에서 이런 일을 겪은 사람도 없고, 식당에서 응급상황이 생기면 도와줘야지 하는 정도의 생각뿐이었다. 이렇게 기본지식이 있을지라도 보통 남을 도와주는 것만 배우지 정작 내가 그런 위험에 처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전무한 상황이었다.


친구와 헤어져 집에 와서도 그날의 충격과 공포가 쉽사리 잊히지 않았다. 구글로 모차렐라 치즈 질식사 검색을 해보니 방대한 결과가 쏟아져 나왔다. 자기 삼촌이 치즈스틱을 먹다 사망했다는 것부터 치즈스틱을 먹다 죽을 뻔한 이후 모차렐라 치즈는 쳐다도 안 본다는 경험담들.


자세히 알아보니 미국에서 식사 중 질식 위험이 큰 음식 중 하나가 치즈였다. 그 외에 마시멜로같이 물렁하고 잘 들러붙는 성질의 음식들이 리스트에 있었고, 땅콩, 사과, 견과류 등 딱딱해서 목에 걸리는 것들과 닭고기, 핫도그 등 덩어리가 커서 위험하다는 음식들도 있었다.

일본에서는 연초에 먹는 떡국을 먹고 질식사하는 경우가 매년 몇 명씩 나온다. 연초마다 일본 미디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게 바로 떡을 먹다가 질식사하는 사건이란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일본 소방청의 예방 경고를 전하며 이 떡국을 '소리 없는 살인자'라고 불렀다.

일본 도쿄 소방청이 2019년 새해 첫날 도쿄 시내에서 떡을 먹다가 남녀 11명이 병원으로 후송되고 80대 노인 1명이 질식사했다고 발표했다. 병원에 후송된 11명 중 7명은 60대 이상의 고령자다. 일본에서는 새해 정월이면 오조니(お雑煮)라는 떡국 비슷한 음식을 먹는데 식도에 잘 들러붙어 매년 사망사고가 발생하곤 한다. 작년에는 2명이 사망했다. 오조니는 구운 찰떡, 어육, 채소를 재료로 사용한다. 한국의 떡국과 비슷하며, 가래떡이 아니라 찰떡을 사용한다. 국물도 간장국이나 된장국을 사용한다. 인명 사고가 이어지자 일본 소방청은 “떡을 작게 잘라 천천히 씹어 먹어야 한다”라고 매년 사고방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출처 : 뉴스타운(http://www.newstown.co.kr)

나도 그걸 먹어보기 전엔 어떻게 먹으면 음식에 질식해 죽을 수 있나 싶었다. 그러다 일본인들과 일하던 때에 일본식 떡국 오조니를 우연히 먹어보고 그 떡의 위험성을 새삼 느껴본 적이 있다. 노인이나 어린이뿐 아니라 성인들도 천천히 주의해서 먹지 않으면 위험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떡은 크기 자체도 크고 미끄덩한 것이 딱 모차렐라 치즈의 식감과 비슷하다.


전통음식이니 안 먹을 수도 없고 사상자는 매년 나오니 일본 소방청에서는 떡을 먹을 때 진공청소기를 옆에 두라고 권장한다. 떡이 목에 걸린 사람이 있으면 진공청소기로 떡을 뽑아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생명을 구해낸 경우도 있다고 하니 모차렐라 치즈의 경우에도 해당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 일을 겪은 후 예방차원에서 이런저런 검색을 통해 얻은 정보는 다음과 같다.


1. 기도폐쇄 발생 시 환자는 본능적으로 목을 조르는 듯한 자세를 취한다. 이는 응급상황이 발생했다는 신호라는데 나는 이런 자세를 취하지 않은 걸 보니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같이 식사하던 사람이 갑자기 말을 못 하고 이상행동을 취하면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2. 물렁한 음식(떡이나 치즈 같은)은 뱉어내기보다 내려가도록 유도하는 게 좋다. 견갑골 사이를 대여섯 번 정도 있는 힘껏 다해 때리거나, 가슴팍을 자신이 직접 양손으로 강하게 친다.


3. 기침을 여러 번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4. 음식을 먹으며 말을 많이 하면 떡 같은 음식은 스르륵 넘어가서 기도를 폐쇄할 수 있다.


5. 음식을 충분히 씹지 않고 삼키는 버릇도 위험하다.


출처: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그 일이 있은 후 삼사일이 지난 후까지 목구멍이 쑤시고 아팠다.


그 짧은 시간 음식이 걸렸다 내려간 것뿐인데, 토하려고 힘을 줬던 것도 아닌데 며칠을 쓰라리고 아픈걸 보니 보이지 않는 내 속도 많이 놀라 생채기가 났던 것 같다. 그 일이 있고 일주일 정도는 밥을 먹으며 말을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또 넘어갈까 봐 묵묵히 먹는데만 집중했다. 또 입에 넣은 음식이 자연스레 넘어갈 것 같으면 의식적으로 몇 번은 더 씹었다.


부디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이런 위험한 상황은 겪지 않으시길 바란다.


오븐 스파게티는 먹을 일이 없을 것 같다. 모차렐라 치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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