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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정아 Oct 25. 2019

5성급 호텔에 처음 묵어보니

돈이 좋다 소리가 절로 나던 강남에서의 호캉스

IHG 인터컨티넨탈 호텔 멤버십 포인트를 쌓아 플래티넘 멤버가 된 건 순전히 호텔 이름을 착각한 실수에서 시작됐다. 2년 전 호텔 신용카드를 알아봤을 때 체이스 IHG 카드가 혜택이 좋기도 하고 인터컨티넨탈 호텔 브랜드 자체에 무한신뢰가 있어 바로 카드를 만들었다.


카드가 나온 후 그 카드 하나만 쓰며 포인트를 쌓았는데, 내가 생각했던 호텔은 인터컨티넨탈이 아니라 리츠칼튼 호텔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인터컨티넨탈과 리츠칼튼 이름이 헷갈리다니. 리츠칼튼은 IHG그룹이 아닌 메리어트 호텔 체인이다.


호텔경영학 전공자 출신이라 학창 시절에 서비스 교육을 받을 기회가 꽤 있었다. 국내 서비스 교육 중 으뜸이라 하는 삼성 에버랜드 서비스 아카데미에서 서비스 기본을 배웠고 롯데호텔에서 호텔식 서비스 교육을 배웠지만 최고급 서비스의 표준이자 영원한 원탑은 리츠칼튼이라는 것 또한 배워 알고 있었다.


리츠칼튼의 모토이자 서비스 정신인 신사숙녀 모시는 신사숙녀 (We are Ladies and Gentlemen serving Ladies and Gentlemen)에 얼마나 감명을 받았는데, 애플 스토어에서도 벤치마킹했다는 리츠칼튼의 서비스를 경험해 보기 위해 도를 닦는 마음으로 포인트를 쌓았다. 그러나 내가 열심히 포인트를 쌓은 건 인터컨티넨탈이었고, 이 카드를 해지하고 메리어트 카드를 열려면 일단 포인트부터 써야 했다.


맥주축제를 위해 삿포로에 가기 전 포인트 소진 겸 짧은 서울여행 겸 코엑스 인터컨티넨탈에서 2박을 하기로 했다.


두둥, 기다리던 체크인 날.


아침 일찍 서울에 도착해 강남에서 볼일을 본 후 대학로 연극도 보고 사촌동생 가족과 평양면옥에 가서 어복쟁반도 맛보며 꽉 찬 하루를 보냈다. 밤이 돼서야 호텔에 도착, 체크인을 위해 들어선 로비부터가 이미 4성급 호텔들과 차이가 극명했다.

그날의 라이어 라이어와 어복쟁반. 짧은 서울 여행의 맛

웅장한 로비를 지나 프런트 데스크에 가니 말끔한 직원이 체크인을 해준다. 한때는 나도 이런 데서 일하고 싶어 하던 적이 있었다. 호텔리어를 꿈꾸던 시절 나는 프런트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고 싶었다. 원하던 포지션은 늘 프런트 데스크. 컨시어지, GRO(Guest Relations Officer)로 셋 다 프런트 오피스 소속이었다.


대학 졸업 후 쭉 호텔에서 일했더라면 삶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별 기대 없이 예약한 이 호텔은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맞아 여기가 5성급이었지. 생각해보면 5성급 호텔에 내가 직접 예약해서 묵는 건 처음이었다.

수능 후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레 호텔경영학을 택했던 건 이런 근사하고 비싼 곳에 많이 가보고 싶어서였다. 매일 숨 쉬듯 그런 곳에 드나들고 싶었다.

누구라도 위축될 만큼 으리으리하고 비싼 곳에 가도 잘 어울리고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려면 끊임없이 그런 환경에 나를 노출시켜야 했는데, 평범한 집 출신인 내겐 이런 곳에서 일을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기대감이 한껏 올라간 채 문을 열어보니 훤하게 큰 방이 우리를 맞았다. 강남에 있는 호텔방이 이렇게 넓을 줄이야. 지역이 지역인 만큼 방 크기는 기대 안 했는데 땅덩이가 훨씬 더 큰 미국 호텔들보다도 넓은 방에 속이 다 시원했다. 탁 트인 창밖으로 보이는 봉은사 뷰는 이 호텔에서 선호되는 전망인지 체크인 직원이 봉은사 뷰로 업그레이드해 줬다고 했었다.


몇 달 전 시카고에서 친구가 예약한 힐튼 체인의 4성급 호텔에 같이 묵었는데 미네랄워터를 매일 주지 않아 물어보니 숙박 1회당 2병이지 매일 2병이 아니라고 해서 놀랐었다. 심지어 친구는 힐튼 멤버십의 최고등급인 다이아몬드였다. 일주일 가량의 긴 숙박 기간 동안 물은 첫날 받은 2병으로 끝이었고, 그건 방침이니 이해하더라도 방 청소 상태에도 눈에 크게 띄는(쿠션을 바닥에 두고 간다던가 하는) 실수가 매일매일 한 두 가지씩 있어서 친구도 진지하게 다른 호텔 체인으로의 이동을 고민했었다.


물을 많이 마시는 편이라 호텔 가는 길에 넉넉히 사갔는데 방 입구 있는 커피머신 옆에 물이 네 병이나 있었다. 욕실에도 다섯 병이 더 있었다. 우리가 체크인을 한 후에야 청소 마무리를 했던 게 미안해서 여분을 두고 가셨나 했는데 이튿날에도 똑같은 수의 물이 있는 걸 보니 원래 방침인 듯했다.

방 크기만큼이나 넉넉했던 미네랄워터 인심

IHG 플래티넘 멤버는 체크인 시 무료 음료권이나 보너스 포인트를 받을 수 있는데 몇 주 전 홀리데이 인에서 음료권을 써보니 선택 가능한 음료 옵션이 형편없었다. 그날만 그랬는지 모르지만 맥주 한 종류, 탄산음료, 주스 정도였다.


다음부턴 무조건 포인트로만 받으려고 했는데 체크인 때 나도 모르게 또 음료권을 받았다. 이 호텔이라면 왠지 더 좋을 것 같다는 기대심에 그랬는데 예상이 맞았다. 로비 라운지는 밤늦은 시간에도 음료와 음식을 서빙하고 있었고, 음료의 옵션도 다양했다. 송도 홀리데이 인에서 주문하려고 했지만 없어서 못 마셨던 샴페인으로 첫째 날 피로를 풀었다.

다음날 아침. 화창하고 맑은 봉은사를 보며 밤과는 또 다른 뷰를 즐기고 있었는데, 마침 수능 100일 전이라 치성을 드리러 가는 차들이 끝도 없이 봉은사로 들어가고 있었다.


날씨도 좋은데 우리도 봉은사나 한번 가보자. 


호텔 정문에서 걸어 내려가 길만 건너면 되니 짧은 산책을 하기에 좋은 코스였다. 의외로 외국인 관광객이 많았다. 대여섯 명 그룹으로 오거나 혼자서 이곳저곳을 돌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도 관광객이니 그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거닐며 도심 한가운데 고요함을 만끽했다.


점심시간에 봉은사에 가면 저렴하고 맛도 좋은 점심공양이 있다고 해서 가보려고 했지만 땡볕에 그늘도 없는 야외를 한 바퀴 돌고 나니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더워서 밥은 생각도 못하고 자석에 이끌리듯 호텔로 돌아왔다.

수능 100일 전 아침부터 차들이 계속 들어가던 봉은사
봉은사에서 보이는 인터컨티넨탈 호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은 조식 뷔페도 꽤 유명하다고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며 몇 번이나 지나쳤던 브래서리(The Brasserie)는 투숙객뿐 아니라 조식을 먹으러 외부에서 오는 이용객들도 많을 정도로 종류도 다양하단다. 성인 1인당 49,000원. 조식으론 비싼 가격이지만 한 번쯤 가 볼만한 곳이란다. 후기가 꽤 좋던데 그때 알았다면 한 번은 갔을 것을. 봉은사 구경만 하다가 결국 코엑스에 가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체크아웃 전날 밤 컨시어지에서 전화가 왔다. 


숙박에 불편함은 없었는지, 늦은 체크아웃 (2시)이 필요한지를 물었다. 인천공항에 아침 일찍 가야 하니 오후 체크아웃은 필요가 없는데 코엑스 도심공항을 이용하기 위해 이 호텔에 묵었기에 그곳으로 가는 가장 편리한 이동수단을 물었다. 그랬더니 호텔에서 무료 택시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체크아웃할 때 한번 더 확인을 해주면 택시를 잡아 드린다고 했다.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이라 놀랐고, 모르고 지나쳤을 부분을 직원이 먼저 물어보고 무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니 고마웠다.

돈이 좋구나 소리가 절로 났던 첫 5성급 호텔 숙박 경험

다음날 아침 일찍 체크아웃을 하러 갔을 땐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프런트 직원은 우리가 도심 공항행 택시가 필요하단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고, 체크아웃 후 신속히 준비된 택시를 탈 수 있었다. 일반적인 세단 택시가 아닌 대형 점보택시여서 승하차도 더 편했고 승차감도 그만이었다. 이런 택시가 무료라고? 내가 잘못 들었던 건가? 카드로 청구되는 거 아냐? 하는 생각들이 스쳤지만 무료가 맞았다.


나중에 안 바로는 호텔 정문 앞에서 인천공항으로 직접 이동하는 대한항공 셔틀버스도 성인 16,000원에 탈 수 있다고 한다. 폭우 속에 비 한 방울 안 맞고 도심공항까지 가니 어찌나 쾌적하던지.


도심공항에서도 체크인 후 줄도 서지 않고 출국심사까지 휘리릭 마친 후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언니가 우리 부부에게 특별히 선물한 비즈니스 항공권으로 널찍한 자리에 누워 뒹굴뒹굴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남편이 문득 진심이 가득한 눈으로 말했다.


-돈이란 게 참 좋은 거구나. 뉴욕에 가면 일 열심히 해서 돈 벌어야겠다.  

-그치? 나도 뉴욕 가면 얼른 돈 벌고 싶어 진다. 그래서 또 이렇게 다니고 싶어서.


호텔의 체크인에서 아웃까지, 체크아웃 후까지도 좋았다. 코엑스 인근 호텔에 묵고 도심공항을 이용해서 인천공항으로 이동하는 과정이 너무나 매끄러워서 다음에 또 이렇게 있다 가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얼른 IHG 포인트를 다 쓰고 리츠칼튼이 속한 메리어트 멤버십 카드를 발급받을 생각이었는데, 긍정적인 경험을 하고 나니 IHG 멤버십도 유지를 할까 고민이 될 정도다.


미니멀리스트와 무소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살고 있는 내 안에 숨어있던 부와 사치에 대한 본능을 마구마구 일깨워 주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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