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브런치 북 프로젝트 도전이 끝나고
브런치 북 프로젝트에 관한 알림글을 본 건 9월 말이었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 1년 정도 된 시점이었다.
북 프로젝트가 뭔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공지에 날짜가 10월 10일인 것만 보고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싶어 다음을 기약했다. 그러다 10월 10일이 왔을 때 '나만 빼고 다 오늘 북 프로젝트 지원하겠구나' 하는 맘으로 앱을 여니 새 공지가 뜨면서 11월 17일까지 한다고 쓰여 있었다.
데드라인이 10월 10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날부터 11월 17일까지 하는 거였다. 날짜를 제대로 보니 정신이 번쩍 났다. 갑자기 한 달의 여유가 생겼다. 너무 마감 직전에 알고서 포기했던 게 못내 아쉽던 참이었는데 한 달의 시간이 생기니 한번 해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니던 학교를 봄에 졸업하고 두 달 넘게 한국에 다녀온 후라 슬슬 이력서를 보내며 일을 찾으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더 주어진 이상 브런치에 써 둔 글도 33개나 있으니 잘만 준비하면 못할 것도 없었다. 일단 취업은 그 뒤로 미루고 프로젝트 준비에 돌입했다.
브런치 북 하나에 글 수가 10에서 30편으로 정해져 있는데, 내 매거진 중 두 개가 이미 충분한 글 수를 확보한 상태였다. 30편까진 아니어도 20편 정도는 채우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서 일단 그만큼 글을 더 써서 채우고 나머지 시간 동안엔 편집에 집중하기로 했다.
작년에 브런치를 시작한 후 1년 간 평균 한 달에 한 두 편 정도 썼다. 딱 한번 목표치를 정했던 올해 2월에 5편 쓴 게 최다 기록이었다. 프로젝트 날짜에 맞추려면 평소 페이스로는 어림도 없었고, 편집할 기간을 넉넉히 가지려면 이삼일에 한 편씩 써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렇게 매일 컴퓨터만 붙잡고 앉아서 미리 잡았던 레이아웃에 맞는 글을 하나씩 써 나간 결과 프로젝트 기간 한 달간 10편의 새 글을 썼다. 다른 작가들은 하루에 한 편씩도 올리는데 나는 한 달에 10편 쓰는데도 영혼이 탈탈 털렸다. 그래도 새로 쓴 글들이 브런치 메인에도 올라가고 다음에도 뜨는 걸 보면서 힘을 내 써 나갔다.
편집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완성한 글을 새로 읽을 때마다 거슬리는 게 있어서 고치고 또 고치길 반복했다. 브런치 북은 매거진과는 달리 한번 만들면 더 이상 목차나 글을 고칠 수 없다고 해서 '브런치 북 만들기'는 마감 직전에 하기로 하고 편집에만 몰입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목표했던 글 수를 거의 채운 후 일주일간 편집을 하다가 마감 4일 전에 브런치 북 만들기를 한번 시도해 봤다. 어떤 식으로 하는 건지 미리 알아야 할 것 같아서 해 본 건데 이게 웬걸, "읽는 시간"에 대한 가늠이 전혀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완성된 브런치 북에 시간이 표기된 걸 보긴 했지만 내 글이 이렇게 긴지는 몰랐다. 글 한 두 편을 추가하니 읽는 시간이 쭉쭉 늘어났다. 스무 편을 올려야 하는데 겨우 11편 만에 권장 시간 60분을 훌쩍 넘겼다. 내 글은 왜 이렇게 길지? 겨우 3일 남았는데 이걸 이제야 알다니.
지난 한 달간 미친 듯이 10편의 글을 써 올린 게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글의 양이 충분해야 출판사 측에서도 긍정적으로 봐주지 않을까 한 게 판단 오류였다. 질이 아니라 양으로 승부 보려고 했나 싶어 회한이 밀려왔다. 글이 안 풀릴 때마다 머리를 비우려고 만든 요리가 냉장고에 한 가득이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써 올렸던가.
한 편에 읽는 시간이 10분을 넘어서 분량을 조절하라는 빨간 글씨가 뜨는 글도 있었다. 책 전체 분량도 넘치는데 글 하나하나도 넘쳐서 여기저기 시뻘건 경고를 보니 심란해져서 컴퓨터를 덮고 주방에 가서 쿠키를 구웠다. 버터를 녹이고 밀가루를 체에 두 번씩 거르고 이것저것 재료를 꺼내 섞으며 양손을 쓰니 머릿속이 잠잠해졌다. 머리가 복잡할 땐 샤워를 오래 하거나 요리를 한다. 뚝딱뚝딱 만들어 결과물이 눈앞에 나타나면 글자를 가지고 씨름하며 피로했던 뇌가 충전된다.
결론은 다운사이징이다.
오븐에서 쿠키를 꺼내니 집안이 달달한 버터 냄새로 가득하다. 그래 미련 갖지 말고 양을 줄여보자. 글 수를 줄이는 것보다 각각의 글을 줄여서 짧은 글을 여러 개 올리는 게 낫겠다 싶었다. 다시 찾아보니 권장시간 60분을 훌쩍 넘긴 100분 이상인 책들도 있었지만 최대한 권장 시간에 가깝게 하고 싶었다. 하나하나 글을 열어서 덜어냈다. 단어를 지우고, 한 줄을 지우고 문단을 통째로 지웠다. 글만 있으면 지루할까 싶어 끼워 넣은 사진들도 지우고 여기저기 에피소드를 통째로 지우니 양이 줄면서 한결 가벼워졌다.
덜어낸 문장들을 한 데 모아 읽어보니 맥락엔 좀 어긋났지만 아까운 내용도 있고, 굳이 쓸데없는 잡소리를 길게도 했구나 싶은 부분도 있다. 지워도 지워도 끝이 없었다.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글을 선호해서 "~같다", "~생각한다"같은 표현은 자제하며 썼음에도 지울 부분이 차고 넘쳤다.
방망이 깎던 노인처럼 글을 깎고 또 깎았다. 장인의 마음으로 깎아내다 보면 알맹이만 남겠지.
편집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작업이란 걸 몸소 깨달았다. 문예창작 공부를 불과 몇 개월 전까지 했기에 편집의 중요성은 익히 알고 있었고, 학교 다니며 쓰던 글도 초안과 최종안의 차이가 하늘과 땅인 적이 많았다. 프로젝트가 다 끝난 뒤에 후회하기 싫어서 계속 다듬다 보니 새로운 글이 너무너무 쓰고 싶었다. 그냥 편집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프로젝트 준비를 하는 동안 언니는 새 집을 사서 이사했고, 흥미진진한 새 이웃도 생겼고, 정기검진에서 충격적인 결과가 나와 고기를 끊는 등 일상에 변화가 있었다. 두 달간 한국에서 한 여행 이야기도 기억이 생생할 때 빨리 쓰고 싶었다.
한국과 미국은 시차가 있기에 한국 17일에 맞추려면 미국에선 16일 전에는 올려야 했다. 시차로 인한 날짜 계산을 못해서 기한에 못 맞추면 얼마나 억울할까. 19편짜리는 16편으로, 14편은 13편으로 줄여서 응모했다.
브런치에서 하는 프로젝트에는 딱 한번 참여한 적이 있다. 빨강머리 앤에 관해 쓴 글을 뽑아서 출간하는 프로젝트였는데 빨강머리 앤은 어릴 때부터 유난히 좋아하는 작품이었다. 유튜브에서 만화영화 전편을 하루 만에 시청하고 동네 도서관에서 원본도 찾아 읽고, 출간된 비슷한 류의 책도 찾아보며 조사를 많이 했다. "이거는 진짜 뽑힐 것 같다"는 확신에 가득 차서 응모했지만 떨어졌다.
그때처럼 기대를 했다 실망하기 싫어서 이번엔 참가에 의의를 둔다고 생각하고 준비했고 지금도 그런 마음이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어차피 '될놈될'이다. 그래도 한 달간 고군분투한 결과 내 브런치에 책 두 권이 남았다. 새로 쓰인 열 편의 글도 남았다. 지난 한 달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북 프로젝트 준비를 하고 있다며 너무 떠들고 다녔나 싶은 건 문득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공격적으로 글을 써나가며 나도 마음먹으면 이렇게 이틀에 한 편씩 쓸 수 있다는 좋은 경험과 동기부여가 됐다.
밤낮으로 매달리던 일이 끝나니 뿌듯하면서도 공허하다. 빈 둥지가 된 듯한 마음을 추스르고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프로젝트에 참가한 작가분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혹시 이번에 안되더라도 우리에겐 한 달 전보다 더 정리되고 준비된 글이 남았습니다. 모두에게 행운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