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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정아 Nov 23. 2019

미국 생활 14년, 한국인 이웃이 생겼다 Part 1

어마어마한 핵인싸가 이사 왔다.

10월 중순쯤 어느 날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저번에 봤던 유투버 썸머썸머, 너네 아파트로 이사 갈 것 같다. 맨해튼 뷰에, 집이 딱 너네 집이야.


얼마 전 그 친구 집에서 유튜브 얘기를 하다 그녀가 미국 사는 한국 유투버들이라며 채널을 몇 개 보여줬다. 요즘 세대는 TV 말고 유튜브를 본다며 최근 본 채널들을 보여주는데, 난 요즘 워크맨이 재밌다고 하며 같이 워크맨과 와썹맨 영상만 연달아 봤었다. 그때 보여준 채널 중 하나라고 했다. 


문자를 보고는 당연히 친구가 다른 집과 착각했을 거라 생각했다. 


그녀는 5년 전쯤 우리 집에 딱 한번 30분 정도 들른 게 다였다. 한번 본 얼굴은 몇 년이 지나도 잊지 않아서 우스갯소리로 넌 FBI에 들어가야 하는 인재라고 했었지만, 한번 본 집도 그렇게 기억할 줄이야. 이 동네 집이 다 비슷한 구조라 다른 집을 봤다고 생각했다. 


유튜브에 썸머썸머로 검색을 하니 최근 올라온 집 보러 다니는 영상이 있었다. 아직 잠도 덜 깬 상태로 틀었는데 영상 시작과 동시에 우리 집 구조가 나왔다. 뉴욕의 오래된 아파트는 건물마다 구조가 제각각이고 심지어 같은 건물 내에서도 구조가 달라서 동일한 라인이 아닌 이상 똑같은 구조와 전망은 볼 수가 없다. 


영상 속 구조와 뷰를 보고 한눈에 우리 아래층인걸 알았다. 친구의 기억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는 순간이었다. 생각해보니 남편이 아래층에 누가 이사 들어오더라고 했었다. 백인이냐고 물으니 뒷모습만 봤는데 머리가 핑크색이라고 했다. 핑크색 머리. 집 보는 영상에 나오는 머리색은 과연 오렌지 빛이 나는 핑크색이었다. 소름이 쫙 돋았다. 


우리 아래층에 유명한 유튜버가 이사 오다니, 대박사건.

처음엔 마냥 신기하고 설레었다. 비슷한 나이대 한국인 이웃이 생긴다는 게 좋았다. 


우리처럼 고양이 키우는 부부던데 친해지면 좋겠다 싶었다. 우리 아파트에는 한인들이 몇 가구 있다. 틴에이저 자녀를 여럿 둔 이민 2,3세(부모님도 영어가 더 편한) 교포 가족이 있고, 자주 음식을 태워서 화재경보를 울리곤 하시던 노인분이 계시고(다행히 요즘은 잠잠하시다), 미취학 아이가 둘(인가 셋) 있는 젊은 부부가 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들어온 한인이 6년 전에 들어온 우리다. 


이 건물은 층간소음이 심해서 늘 위아래층에 대한 촉각이 곤두서 있다. 우리 아래층은 우리 집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으니 누가 들어오고 나가는지 늘 신경 쓰고 조심하며 산다. 처음 이사 왔을 땐 젊은 남자 둘이 살았고, 그다음엔 아이가 없는 커플이 3년쯤 살았다. 


그녀 채널의 예전 영상 제목들을 쭉 보니 일상의 경험을 나누는 콘텐츠가 많았는데, 조만간 "새 집에 이사 왔는데 위층에 진상이 살아서 멘붕" 같은 자극적인 제목으로 층간소음에 대한 영상이 올라올 것 같았다. 그럼 구독자들이 층간소음은 이렇게 대응하라며 우퍼를 천장에 대고 미궁을 틀라던지 조언을 하고 같이 욕도 해 주겠지. 그럼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 새 공공의 적이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새 이웃이 생겼다고 좋아할 때가 아니었다. 문득 그런 생각에 빠져서 기분이 다운됐는데 그날 밤 남편도 시무룩했다. 


     -혹시 우리가 너무 시끄럽다고 컴플레인하는 영상을 찍어 올리거나 할까?

     -나도 오늘 그 생각했어. 왠지 그렇게 할 거 같지? 


사람들이 보는 눈이 비슷하듯이 생각의 흐름도 비슷한가 보다. 씁쓸했다. 아, 우리 옆집이나 윗집으로 왔으면 좋았을 걸. 



층간소음의 추억


이사 왔던 첫 달, 우리는 위층의 끊임없는 소음에 시달리는 한편 틈만 나면 나무 장대로 천장을 치고 밤중에 올라와 문을 두드리는 아래층 사이에 끼어 스트레스로 잠을 설쳤다. 아래층은 우리가 자다가 화장실이라도 가려고 일어나면 그 새벽에 천장을 쿵쿵 두드리며 노골적으로 항의했고, 위층에선 워킹 연습을 하듯 매일 밤 빠른 걸음으로 밤 7시부터 12시가 다 될 때까지 쉴 새 없이 계속 집 끝에서 끝을 걸어 다녀서 분명 정신이상자라고 생각했다. 고르고 고른 집인데 위아래층으로 미친놈이 있는 곳에 왔구나 싶었다.


아래층이 어느 날 밤늦게 쫓아 올라와서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부리고 간 후에는 층간소음 노이로제에 걸려서 몇 번이나 계약을 깨고 나가려고 했다. 아래층은 우리가 뛰거나 파티를 하는 수준이 아닌 일상의 움직임에 집요하게 반응하며 수시로 천장을 쳐댔다. 아니 움직이지 않고 우리는 어떻게 살란 말인가? 


이사 온 후 한 달간 이어진 그들의 행동이 '괴롭힘(Harassment)'으로 간주되어 아파트 관리회사로부터 강력한 경고를 받은 후엔 쥐 죽은 듯 2년을 살고 나갔다. 위층의 기묘했던 워킹은 알고 보니 해외 클라이언트와 밤늦게 전화를 걸며 긴장을 풀기 위해 집안에서 걸어 다니면서 통화를 했던 걸로 밝혀졌다.


위층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일주일에 서너 번씩 벌리는 잦은 파티와 많은 사람들이 쿵쿵거리며 걷고 떠드는 소리 때문에 수시로 이사 나갈 생각을 하며 살다가, 다른 건 다 좋은데 위층 때문에 이사 나가겠다고 하니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해결한 아파트 관리회사 덕에 극적으로 재계약을 했고, 그 이후엔 서로 이해하고 조심하며 큰 불편함 없이 지내고 있다.


우리도 몇 년 간 층간소음에 이골이 나 있었다.


처음 이사 왔을 땐 특히 처음 겪는 소음 수준에 멘붕이 와서 그즈음 만나는 친구들마다 붙잡고 그 얘기를 했었다. 완전 진상이라며 위층 욕도 엄청 했다. 그러니 아래층도 그때 우리처럼 층간소음에 대한 인지를 할 시기였다. 뉴욕에서 13년 넘게 살며 다양한 건물에 살아봤고, 부동산 중개인을 하며 수많은 집을 본 나도 여기 이사 와서 처음 겪은 일이었으니 이제 막 이사 온 아래층이 걱정됐다. 



새 이웃, 어느 세월에 마주치나요.


친구는 지나가다 만나면 인사하고 아는 척하라고 했지만, 나는 혹시 마주쳐도 그녀가 유튜버인걸 모르는 척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몰랐기도 하고, 내 입장이라면 같은 건물에서 누군가 날 알아보면 불편할 것 같았다. 만약 내가 한국에서 책을 냈는데 뉴욕에서 같은 아파트 사는 사람이 "어머 작가님 책 읽어봤어요." 하며 알아보면 감사하면서도 신경 쓰일 것 같았다. 


집에서만큼은 편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데 나를 알아보는 사람과 한 건물에 살면 슈퍼에 가거나 우체국에 갈 때도 옷을 챙겨 입고 매무새를 갖춰 할 것 같았다. 우연히 마주치면 모르는 사람으로 대하는 게 더 편할 것 같았다. 그냥 내가 그런 성향이라 내 방식으로 예의를 갖추고 싶었다.


낮에도 밤에도 집안에서 최대한 조심히 걸었다. 일단 첫 달 적응하고 나면 그 이후엔 건물 특성으로 인식하고 크게 개의치 않을 것 같았다. 예전에 아래층과 갈등이 있었을 때 내가 그들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까치발로 살금살금 다니면, 남편은 "우리나 아래층이나 동등한 입주자인데 쿵쿵 뛰거나 음악 틀고 파티하는 소음을 내지 않는 선에서는 편하게 살아야 된다"라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이번엔 자기도 신경이 쓰이는지 조용히 다니자는 내 말을 고분고분 듣고 밤에는 본인도 까치발로 걸었다. 이를 닦으며 평소처럼 돌아다니려고 하면 내가 안된다고 거기 그대로 서서 양치하라고 했고, 자기 전엔 필수적으로 화장실에 들렀다.


며칠이 지났고 친구는 아직도 못 마주쳤냐며 나보고 떡이라도 들고 먼저 내려가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생각해보면 마주칠 일이 없는 게 보통이다. 60여 가구가 있는 건물에서 수년간 살면서 옆집 이웃을 마주치는 것도 흔치 않다. 그러니 다른 층 사람들은 더더욱 볼 일이 없고, 어차피 봐도 거주자인지 방문객인지 알 수 없는 완벽한 타인으로 살아간다. 대도시의 아파트 생활은 어디서나 그런 것일까. 남편은 얼굴을 아는 이웃이 몇 있지만, 사람 얼굴을 유독 헷갈려하는 난 옆집 아주머니 빼고는 이 건물에서 얼굴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우리 층에 젊은 한국인 유학생 혹은 직장인 셋이 살았던 적이 있었다. 

남편은 룸메이트들끼리 사는 것 같다고 했고, 나도 닫힌 문틈으로 한국말을 들었었다. 나는 곧 그들과 친해져서 맛있는 걸 만들면 나눠먹으며 언니처럼 챙겨주고, 고기 구워 먹을 때도 불러서 같이 먹고 그러다 가까워지면 우리 고양이도 하루 이틀 맡기고 어디 갈 수도 있겠다 하며 혼자 꿈에 부풀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집 여자분을 마주쳐서 "안녕하세요. 한국분이세요?" 하니 "네. 이 건물이 원래 층간 소음이 이렇게 심해요?"가 그녀의 첫마디였다. 자기네 집만 그런가 했단다. "이래서 어떻게 살아요?" 이 건물에 처음 이사 오면 층간소음이 가장 이슈인 건 분명하다. 익숙해지는 사람들은 남고 아닌 사람들은 바로 떠난다. 그들은 1년 후 이사 나갔다. 


이제 그녀가 이사 들어온 지도 일주일이 되어가고, 이러다 언제 그녀가 영상에서 층간소음 얘기를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인스타그램 페이지를 보니 댓글을 다는 것도 사진 올리는 것도 털털하고 친근한 사람 같았다. 시간이 더 가서 위층에 대한 반감이 커지기 전에 여기가 원래 유난히 층간소음이 심하고 우리도 노력하고 있다고 말하는 게 낫지 싶었다. 우리도 위층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을 땐 이웃에 대한 배려심이 아무리 없어도 저렇게 시끄럽게 파티하고 뛰나 싶었는데, 우리가 항의했을 때 그가 너무나 미안해하며 적극적으로 조치하고 연락처도 주고 너무 시끄러우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하니 우리가 오해했구나 싶어 마음도 풀리고 소음도 덜 신경 쓰였었다


위층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미리 안심하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적어도 그러면 더 이상 스트레스도 덜 받을 거고, 층간소음에 대한 영상을 찍어 올릴 일도 없지 않을까? 그런 영상만 막으면 좋겠다 싶었다. 


잘은 모르지만 그녀는 풍기는 분위기가 대범하고 작은 거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사람 같아 보였다. 우연히 마주치길 기다릴 시간이 없어서 그냥 돌직구로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보내기로 했다.


오후쯤 결심을 한 후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어떻게 쓸까 머릿속으로 고민했다. 새벽에 출근하는 남편을 일찍 재우고 비장하게 메시지를 작성했다. 글을 쓸 때는 언제 어떤 글이건 꽤 오래 걸려 쓰는 스타일이라 다 쓰고 나니 밤이 꽤 늦었다. 쪽지를 보내고 금세 답장이 왔다. 내가 그동안 머리를 싸맸던 것에 비해 그녀의 답장은 참 명쾌하고 발랄하고 해맑았다. 난 뭘 그렇게 걱정했던 거지?


    -어머 세상이 이렇게 좁다고요? 지금 안 주무시면 인사드리러 올라가도 될까요?


세상 이렇게 밝고 싹싹한 사람이 있나 싶어 감격스러울 지경이었다. 한숨이 놓이며 안심이 됐다. 내가 보낸 메시지에 "네 잘 알겠습니다." 하는 단답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보내도 이상하지 않게끔 최대한 거리를 두고 메시지를 썼다. 시간이 늦었으니 주중에 낮에 뵙자고 했다. 그녀는 핸드폰 번호도 알려주고 아직 짐 정리는 안되어 있지만 흔쾌히 자기 집으로 오라길래 그럼 그냥 우리 집으로 오시라고 했다.


저쪽에서 저렇게 상냥하고 친절하게 나오는데 내가 점심이라도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그때쯤이었다. 이틀 후에 보기로 했으니 그다음 날 종일 메뉴를 다 짜고 장도 봐 둬야 했다. 그렇게 만나는 당일 아침에 연락이 와서, 점심시간쯤 오셔서 같이 점심을 먹자고 했다.


그리고 약속 날이 다가왔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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