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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정아 Nov 23. 2019

미국 생활 14년, 한국인 이웃이 생겼다 Part 2

유튜버 썸머썸머와의 만남

처음 만난 사람과, 만나자마자 밥을 먹은 적이 있던가.


부동산 할 때는 종일 집을 본 손님들과 식사를 한 일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만나자마자 첫인사를 하고 단 둘이 밥을 먹는 건 결혼 전 온라인이나 소개로 만난 남자들과 첫 데이트 할 때 빼곤 없었다. 그냥 커피나 마실걸 괜히 밥을 먹자고 했나 싶다가도, 아니야 저쪽에서 그렇게 밤늦은 시간에 바로 인사 온다고 할 정도로 격의 없고 싹싹했는데 점심시간에 만나면서 식사 정도 내가 대접할 수 있지, 하며 아침부터 열심히 요리를 했다.


약속 시간이 되어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여니 그녀는 와인과 디저트가 담긴 쇼핑백을 들고 서 있었다. 며칠 동안 사진과 영상에서 본 얼굴이 눈앞에 있으니 신기하고 비현실적이었다. 이렇게 인사 와줘서 고맙고 그동안 그녀 부부가 느꼈을 층간소음에 대한 걱정이 해소되며 마음이 놓여 그저 반갑고 좋았는데 그녀는 뭔가 미안해하는 느낌이었다. 원래 웃어른한테 엄청 깍듯한 성격인가(나 웃어른인가)했는데 그녀는 사과하러 왔는데 밥까지 차려주셨다며 감사하다고 했다.


위층 사는 내가 죄인인데 사과할게 뭐가 있어요.


그들이 이사 온 후 못을 박거나 드릴을 쓰면서 시끄럽게 한 적이 있었나 재빨리 기억을 떠올렸다. 우리도 처음 이사 왔을 때 가구 조립 같은 걸 낮시간에만 하면서 밑에 박스를 깔고 최대한 빨리 끝내려고 엄청 신경 썼었다.


그녀 말론 본인 영상에서 이미 층간소음 이야기가 언급이 됐다고 했다. 어머나 진짜요? (벌써요ㅠ.ㅠ) 아직 그런 영상 올라온 거 못 봤는데. 내가 신속하게 연락을 취한다고 한 건데 타이밍을 놓친 건가 싶었다. 그녀 말에 따르면 영상은 아니고 라이브 방송 중에 위층에서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너무 가깝게 들려서 같이 사는 언니라며 웃기는 드립을 쳤는데 그걸 내 친구가 보고 알려줘서 내가 메시지를 보낸 줄 알았단다. 오, 그 영상은 어디서 볼 수 있어요? 하니 그 영상은 이제 영원히 안 올릴 거예요, 하며 웃었다. 그러고는 무슨 얘기였는지 술술 다 얘기하는데 들어보니 별 심각한 흉도 아니고 가벼운 농담이었다. 앞과 뒤 말이 다를 성격 같지도 않았다. 시원시원하고 솔직한 사람 같았다.


그렇게 오해를 털어낸 후에는 밥을 먹으며 일상적인 얘기를 나눴다.


  동네 이야기, 어쩌다  동네로 왔는지, 언제 뉴욕에 왔는지부터 유튜브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이야기. 지금 잘되고 있지만 들뜨지 않고 열심히 콘텐츠 제작에 충실하려고 한다는 진솔한 이야기까지.


그녀도 나도 올해 둘 다 고양이를 맡기고 한국에 다녀온 걸 알고는 이제부터 언니네 여행 가실 때 저희가 고양이 봐드릴게요, 우리 서로서로 봐줘요 하며 웃으며 살갑게 말했다. 이건 내가 한번 담아본 김치라고 하니, 어머 다음엔 그런 거 같이 해요 언니, 하는데 오랜만에 그런 친밀하고 살가운 말을 들으니 마음이 벅찰 지경이었다. 내가 한국에 살고 있지 않아서 놓치고 있을 오랜 친구와 가족들 간의 교류를 일깨워 주는 듯한 말을 들으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내가 요즘 브런치 북 출간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밤낮으로 글을 쓴다고 하니, 그거 구독자 많으면 좋은 거예요? 라며 선뜻 자기가 홍보 많이 해드린다고 먼저 말해주는 것도, 성격상 내가 꺼내지 못했을 말이기에 그냥 말이라도 참 고마웠다. (하지만 그냥 말이 아니고 실제로 여러 번 언급을 해줘서 그녀를 통해 새로운 독자분들이 많이 생겼다)

잘 지내봐요, 이웃사촌님

라이브 방송은 아프리카 TV에서만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유튜브에서도 한다고 했다. 금요일에 시간 맞춰 유튜브를 켜서 들어가면 라이브를 볼 수 있단다. 그날 이후 시간 맞춰서 라이브 방송에도 들어가 보고 채팅에도 참여해봤다. 그녀가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활용하는 걸 보고 나도 이제야 스토리를 써보기 시작했다. 요즘 시대 테크놀로지에 하나씩 눈 떠가는 느낌이랄까?

 

요즘은 자기 소개하며 명함 주고받듯 자연스레 서로의 SNS 계정을 주고받게 된다.


그녀의 유튜브 영상과 인스타그램을 보며 그녀의 인생과 가치관, 성격과 식성까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내 인스타그램과 브런치에는 나의 지난 몇 년간의 행적, 내 생각과 관점, 취향까지도 낱낱이 밝혀져있다. 내 모든 패를 다 오픈하고 관계를 시작하는 것이다. 빠른 시간에 누군가를 알아가는 데 이보다 효과적인 도구가 있을까.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지난주에 우리 집과의 에피소드를 유튜브 영상으로 올렸다며 링크를 보내줬다. 아마도 영원히 안 올릴 거라고 했던 그 영상 같았다. 틀어보니 지난번에 밥 먹으며 그녀가 했던 딱 그 정도의 얘기다. 이걸 가지고 뭘 그렇게까지 미안해했나 싶을 정도로 나도 같이 웃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녀를 만나기 전 이틀간 점심 메뉴만 고민했는데, 영상을 보니 그녀는 꽤 고민이 컸던 것 같았다. 그 방송에서 했던 드립이 별게 아니었는데도 그걸 본 사람이 내 지인이라고 생각해서 나를 만나기 전 이틀간 어디 끌려가는 사람처럼 불편한 마음으로 보냈다는 걸 알게 됐다. 본의 아니게 긴장하게 해서 미안해졌다.


유명세란 건 그런 건가 보다.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도 말조심 행동 조심을 해야 하는 것. 내가 가볍게 한 이야기가 누구한테 어떻게 전해질지 모른다는 책임감과 중압감을 통감하는 것. 그녀도 이렇게 크고 작은 경험을 통해 유명세의 무게감을 점점 배워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새로 이사 온 이 동네가 그전에 살던 동네와 다른 점은 한국인이 많은 점이라고 했다. 예전 브루클린 동네에서는 동네를 돌아다녀도 자신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이 동네에는 수시로 여기저기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을 만난다고 한다. 식당에 가도 알아보고 슈퍼 가는 길에도 알아보고. 뉴욕에 자신의 채널을 보는 분들이 이렇게 계신 줄 몰랐단다.


나는 단번에, "어우 너무 불편하겠다."란 말이 나왔지만 그녀는 의외로 크게 신경이 쓰이진 않는단다. 그냥 이렇게 한두 달 정도 지내면 이 동네에서도 익숙해져서 전혀 안 꾸미고도 편하게 신경 안 쓰고 다닐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하긴 영상들 중에 자고 나서 부스스한 모습으로 찍은 것도 있었던 것 같은데, 유튜브 하자며 백날 입으로만 하고 정작 카메라 앞에 서지도 못하는 나와는 대범함의 크기가 다른 것 같다.


실제로 만난 그녀는 영상으로 보는 것과 다른 게 없었고, 그녀의 영상들은 그녀 실제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듯했다. 호기심이 넘치고, 입담도 좋고, 유머감각도 뛰어나고 리액션도 좋다.



호감과 비호감은 한 끗 차이다.


비호감을 감출 수도 없고 호감 인척 꾸밀 수도 없다. 호감인 척 연기하는 게 가능하다면 세상에 비호감인 유명인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끄는 매력도 호감의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우스갯소리를 하고 장난을 쳐도 무의식 중에도 선을 절대 넘지 않는 것, 웃기는 얘기를 하면서도 절대 누구를 깎아내리거나 하며 반감을 자아내지 않는 것. 비호감은 말 한마디, 스쳐 지나가는 표정, 찰나의 몸짓에서 드러나고 사람들은 그런 걸 본능적으로 정확하게 감지한다. 그녀가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매주 몇 시간 동안 라이브 방송을 하면서 구독자가 점점 늘어가는 건 그녀가 가진 호감의 힘이 아닐까.


짧은 시간 겪어본 그녀는 처음 보냈던 해맑은 메시지처럼 친근하고 서글서글할 뿐 아니라 내가 조금씩 나눠주는 작은 음식에도 크게 고마워하고 어떻게든 보답하려고 하는 넉넉한 마음씨가 느껴진다.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의 위치에서 발휘할 수 있는 선한 영향력으로 다른 이들도 잘 되길 응원하고 바라는 진심을 사람들이 느끼고 열광하는 것 같다.


이미 나에게도 그녀의 영향력으로 내 브런치 페이지에 새로운 구독자들을 이끌어주고, 유튜브 영상도 같이 찍어보고 라이브도 같이 해보자고, 그다음에 내 채널을 열어보시라며 듣기만 해도 고마운 제안들을 한다. 저렇게 구독자가 많은 유튜버가 나에게 같이 뭔가를 해보자고 하다니, 오랜 시간 할까 말까 고민만 하는 내게 정말이지 선물 같은 말들이다 (그 마음 변치 않길 바라:-)


그래도 지금은 내가 음식을 잔뜩 만들었을 때 같이 나눠 먹을 수 있는 이웃 동생이 생겼다는 게 행복하다. 둘 다 집순이에 집에서 작업하는 경우가 많아서 종종 서로의 집에 가서 커피 마시고 점심 먹고 수다 떠는 일상이 언젠가는 사무칠 정도로 그리운 추억이 될 것 같다. 시간이 지나서, 그때 위아래층 살며 서로 음식도 나눠 먹고 수세미도 빌려 쓰고 하던 때가 있었지 할 때가 올 것 같아서. 그 소중한 지금을 한껏 느끼고 만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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