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암’이라서 다행이야

자궁암 0기

by 은 선

인생 첫 종합건강검진에서 나온 두 가지 이상소견 중 하나가 자궁암이었다. ‘암’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순간 머리가 하얘졌더랬다. 그리고 그때 처음 깨달았다. 내가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아프다고 징징거리고 불평하는 건 실제론 심각하지 않기 때문이라는걸. 막상 ‘암’ 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순간, 어디에도 얘기할 수 없겠구나 싶었다. 최소한, 내 마음이 추스려질 때까지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상태로, 검진센터에서 잡아준 산부인과 진료도 나 혼자 갔다. 그 엄중한 상황 속에서도 괜히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던 것 같다. 산부인과는 임신하고 출산할 때만 가는 곳인줄로만 알았으니까. (상대적으로) 어린 여자애가 혼자 와 있으니 사고라도 친 걸로 보지 않을까 걱정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 아가씨인데 산부인과 검진을 해도 되겠느냐는 얘기에 흔들리지 않았던 나 자신을 칭찬했다. 검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어쩔 뻔했나.


진료실에 들어서는 내 얼굴이 꼭 울 것 같았던지, 의사 선생님이 굉장히 친절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암’이라는 말에 꽂혀있다는 것도 간파하셨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얘기도 하셨다. ‘0기’라는 표현자체로 조기에 발견했다는 뜻이고, ‘자궁암 0기’는 상피내암, 혹은 제자리암이라고 하여 암세포가 주변 조직으로 퍼지지 않고 머물러 있는 상태라고.


치료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고주파 환상 투열요법’이라고 하는 원추 절제술을 받기로 했다. 자궁경부의 끝부분을 레이저로 절제하는 것 이라고. 시술 시간이 짧고 입원도 필요 없다고 하여 조금은 안심했다. 시술 날짜를 잡고 귀가하며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내가 마음을 못 잡고 울고불고하며 “나 암이래요” 라는 말을 뱉는 순간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걱정했겠는가 말이다.


시술 당일, 진료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에게 알리지 않은 채 나는 혼자서 병원에 갔다. 시술 자체는 15 분 정도, 준비시간을 다 합쳐도 1시간 전후로 끝날 것이라 했다. 제일 놀랐던 건 마취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자궁경부에는 통증을 느끼는 신경이 없기 때문이란다.


간단한 시술이라고는 하지만,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보호자도 없이 수술실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침대에 누웠던 때의 그 선뜩하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게다가 산부인과와 관련된 것은 검사든 진료든 시술이든 왜 그리도 수치심이 드는 자세여야 하는건지.


마취를 하지 않으니 눈은 말똥말똥, 신경은 온통 시술 부위에 쏠려있지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고, 뭔가 하기는 하는 것 같은데 정작 별 느낌은 없고. 15분 정도라고 했으나 실제로는 훨씬 더 길게 느껴지던 시간이 지났다. 다행히 잘 마무리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4~6주가 지나면 대부분 치유가 된다고, 새 살이 돋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그 모든 상황을 내가 직접 관찰할 수 있거나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와 누워 생각했다. 내가 결혼을 할 수 있을까?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낳을 수 있을까? 나중에 자궁 전체를 들어내라고 하면 어쩌지?


결론만 얘기하면, 의사 선생님의 말씀대로 시간이 지나며 잘 회복되었고, 이로써 ‘0기 암’ 사건(?)은 마무리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에 나는 결혼을 하고, 임신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며, 덕분에 세 아이를 건강하게 출산하고 잘 살고 있다.


확실한 건, 매년 정기검진은 필수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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