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골골의 역사 – (2)

by 은 선

다행히 무사히(?) 스무 살이 되었고, 대학은 집에서 멀리 떠나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다른 도시로 지원 했다. 학교 기숙사에 들어갔는데, 공유 아파트 같은 형태였다. 집을 떠나 혼자 살아보는 것이 처음이면 서도 제대로 준비를 - 특히 마음의 준비를 - 하지 않 았던 나는 기본적인 생활패턴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일단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 아침은 원래 잘 먹지 않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점심은 돈이 많지 않 다는 이유로 대충 샌드위치나 간편식 따위로 ‘때웠 다’. 그래놓고선 저녁이 되면 친구들과 선배들과 어 울려 술을 마셔댔다. 대학에 가서 처음 접한 술 문 화가 재미있기도 했거니와, 우리 집 어른들을 보았 을 때 나도 술이 셀 것 같다는 (근거 없는) 믿음에 부어라 마셔라 했던 것이다. 술자리가 잦으니 수면 시간도 불규칙해지고 운동을 할 시간도, 의지도 없었다.


원래 건강한 편이더라도 이런 식으로 몇 달을 살면 몸이 견뎌낼리가 없다. 하물며 골골함을 기본으로 탑재한 나는 불과 한 학기 만에 건강에 이상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살이 빠졌고 (그런데 난 살 빠지는 게 좋았다!), 감기는 거의 늘 달고 살았다. 식사는 부 실한데 약을 ‘때려먹고’, 술도 ‘때려 부으니’ 몸이 비 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단지 내가 몰랐을 뿐.


그러다 기어코 사달이 났다. 1학기 기말시험을 보다 의식을 잃은 것이다. 주변에서 재빨리 조처를 해 준 덕분에 금방 깨어났으나, 시험을 제대로 봤을리가 없다. 기숙사로 돌아와 앓아누웠다. 감기가 심해진 건지 열도 나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숨이 잘 쉬어 지지 않으니 답답하고, 점점 호흡이 빠르고 얕아졌 다. 손가락 끝이 구부러진 상태로 굳어버렸다. 발끝 에도 감각이 없었다. 겁이 덜컥 났다.


얼마 동안 그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시험이 끝나 고 내가 괜찮은지 보러 들른 친구가 나를 발견했다. 호흡이 이상하고 손발이 경직된 상태의 나를 보고 친구는 119를 불렀다. 곧 구급대원들이 도착했고, 손발이 굳은 것은 과호흡 때문이라며 숨을 천천히 깊게 쉬라고 했다. 구급대원분을 따라 호흡을 조절 했으나,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도 굳은 손발은 풀리지 않았다.


병원에서 이런저런 검사를 받고, 링거 주사를 맞는 사이 나의 증세는 조금씩 나아졌다. 굳었던 손발이 펴지고 열이 좀 내렸다. 의사 선생님에게는 야단을 맞았다. 몸이 엉망진창이라고. 젊은 사람이 어떻게 살길래 이러냐며. 영양상태도 엉망, 혈액 검사에선 pH 균형도 깨져있다고. 과호흡으로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변화하여 생기는 일이라고 했다. 젊다고 막 살지 말고 몸을 챙기라고 잔소리를 한바탕 들었다. 그때 나는 좀 울었던 것 같다. 혼나는 것이 무섭기 도, 서럽기도 하면서, 묘하게 안심이 되기도 하고.


그렇게 며칠을 더 앓고나서야 체력은 점차 회복되 었다. 그러나 그 일로 정신적 타격이 컸던 것 같다. 호기롭게 집을 떠났지만 더 이상 기숙사에 있고 싶 지 않았다. 결국 1학년을 마무리하고 편입 과정을 거쳐 집으로 돌아갔다. 처음에는 답답한 느낌이 들 었으나, (반강제이긴해도) 규칙적인 생활, 엄마의 영양가 넘치는 집밥, 그 외의 여러 보살핌으로 나는 다시 건강을 회복했다. 덕분에 주눅들었던 마음이 서서히 펴지며 자신감도 회복했다.


사람 마음 간사하다고, 집에 돌아가 살만해지니 또 다시 독립의 욕망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번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 학교를 또 옮길 수는 없 으니 일단 다른 도시로 가는 선택지는 제외. 기숙사 에 들어갈 요건은 되지 않으니 자취할 집을 구해 다 시 독립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혼자서 살 재력은 되지 않았으므로, 나는 알고 지내던 친구와 그 친구 의 오빠와 함께 셋이서 살기로 했다. 셋이 모여도 여전히 예산은 빠듯했는데, 결국 방 두 개짜리 집을 구해 방은 여자 둘이 하나씩 차지하고, 오빠 쪽은 거실에서 생활하기로 했다.


그 두 남매는 이미 자취경력이 상당했는데, 계획적이고 모범적인 생활방식을 이미 탑재한 상태였다. 나의 1학년 때의 삶이 얼마나 어리석고 즉흥적이었 는지 새삼 다시 깨달았다. 그들의 패턴은 대략 이러 했다.


주말에 일주일 동안 먹을 반찬을 미리 만들어둔다.

식사를 거르지않고 규칙적으로.

운동은 매일, 최소 주 3회 이상, 교통비도 아낄 겸 가급적 걸어 다닌다.

청소는 1주일에 최소 한 번, 환기는 수시로. 빨래는 주 2회.

공부는 열심히 하되 밤은 새지 않고, 적당한 시간에 잠자리에 든다, 등등.

두 사람을 따라 나도 생활패턴을 맞추려 노력했다. 그렇게 두 번째 독립 시도는 제법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감기에 걸려 고생하는 것은 여전했지만.


작가의 이전글나의 골골의 역사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