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골골의 역사 - (1)

by 은 선

난 어릴 때부터 자주 아팠다. 큰 병은 아니 었지만 소소하게 자주 앓았다. 소아과를 수시로 드 나들다 보니 주사 맞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날 잡아 잡수시오, 하고 넙죽 엎드려 있으면 간호원 선 생님은 (그땐 간호사가 아니라 간호원이라고 했다) 칭찬을 퍼부으며 재빨리 엉덩이 주사를 놓았고, 사 실 주사 맞는 시간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도, 또 그 다지 아프지도 않았다. 칭찬받는 게 훨씬 좋았던 것 이다. 쓴 약도 넙죽넙죽 잘 받아먹었는데 그렇게 하 면 칭찬과 함께 사탕이라도 하나 얻을 수 있기 때문 이었다.


감기나 수두처럼 다른 사람에게 옮길수 있는 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유치원이나 학교를 가지 못했다. 그런 날엔 물수건을 머리에 얹고 누운 채로 집안일 을 하시던 할머니를 지켜보곤 했다. 나랑 눈이 마주 치면 할머니는 심심하냐, 하시며 만화 주제가나 동화 테이프를 틀어주시고 계속 하던 일을 하셨다. 어린 마음에도 뭔가 서러움이 밀려와 왈칵 눈물이 나던 기억이 떠오른다.


난 또 잘 체하는 편이었는데, 그럴 때면 할머니는 명주실로 내 엄지손가락을 칭칭 감고 불에 소독한 바늘로 손을 따주셨다. 바늘은 무서웠지만 버둥거 려봤자 할머니는 나보다 힘이 세셨고, 손가락에서 검붉은 피가 흐르고 나면 어쩐지 금방 나아진 것도 같았다.


왈가닥처럼 골목을 누비며 뛰어놀다 보니 넘어지고 부딪히고 멍들고 살갗이 까지는 일은 일상이었다. 빨간 약을 바르고 그 자리에 두터운 딱지가 생기면 몹시도 간지러워 그 주변을 살살 긁다가 기어코 그 딱지가 떨어지고, 또 피가 나고, 하는 일도 잦았다. 철봉이나 정글짐에서 놀다가 떨어진 적도 있는데, 뇌진탕 증상으로 고생하기도 하고 뒤통수에 혹이 나서 한동안 똑바로 누워 잘 수 없던 때도 있었다.


이도 약해서 이미 다섯 살 무렵 첫 금니를 씌웠다. 소아과에서 주사 맞을 때와 마찬가지로 치과에서도 눈을 꼭 감고 참으면 견딜만했다. 나보다 나이 많 은 사람들이 무서워하고 울기도 하는 모습에 더 아 무렇지않은 척 했다. 나는 저 사람보다 훨씬 어려도 이렇게 의젓한데(?) 저 사람은 어른이면서 왜 저러 지? 아프고 무서운 것보다 칭찬의 달콤함이 더 컸 었나보다. 잇몸이 부어 치과에 간 날도 있었는데, 치과 의사 선생님이 뾰족한 기구로 그 부위를 톡 건드리자 그 부분에서 고름이 의사선생님 가운으로 톡 튀어버린 기억도 있다.


이 모든 게 열 살도 되기 전의 일이니, 얼핏 들으면 도대체 애를 어떻게 키웠길래 이렇게 맨날 아팠냐, 하겠지만, 사실 엄마와 할머니는 나에게 최선을 다 하셨다고 생각한다. 좋은 음식을 해 먹이고, 매일 같이 나를 살갗이 벗겨질 것처럼 씻기곤 했다. 그런 데도 왜 그렇게 자주 아팠던걸까. 애초에 애가 약하 게 태어나서 그렇다는 할머니의 성화로 한약도 한 재 먹었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개구지게 놀면서도 팔다리 한 번 부러진 적 없고, 알레르기도 없고, 시력도 좋았던 것은 그나마 다행 이라 하겠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소녀다움’을 조금 탑 재한 나는, 그 덕에 외상은 확연히 줄어들었지만, 골 골한 것은 여전했다. 철마다 걸리는 감기는 원래 그 러려니 해서 크게 문제라는 생각도 안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별다른 이유도 없이 건강에 대한 걱 정이 불쑥불쑥 들기 시작했다. 특히 고등학생이 되 고 나서는 뭔가 큰 병에 걸릴 것 같다는, 근거없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하곤 했다. 이유는 없다. 아무런 증상이 없는데 이미 뭔가 죽을병에 걸렸을지도 모 른다는 망상을, 어디다 얘기 하지도 못하고 혼자 걱 정하며 끙끙댔다. 나는 스무 살이 되지 못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단지 스무 살 이후의 삶이 도저히 상상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습지만, 그 당시의 나는 몹시 진지하고 심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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