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건강검진을 받았다. 2003년, 이제 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 네살의 나이였다. 어디 크게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어릴 때부터 자주 골골대 기도 했거니와, 사춘기를 지나면서부터 ‘난 오래살 지 못할 것 같다’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예감은 건강 염려증을 부추겼다.
그런 의미에서 ‘큰 병원’에서 종합건강검진을 받는 것은 나의 소원 중 하나였다. 대학 졸업 후 들어간 첫 직장에는 안타깝게도 직원 건강검진 프로그램이 없었다 (더 정확히는, 회사에서 직원 복지의 일환으 로 그런 혜택을 제공하기도 한다는 사실 자체를 잘 몰랐다).
감기를 필두로 한 나의 골골거림은 직장인이 되어서 도 계속 이어졌기 때문에 나는 큰마음을 먹고 오랜 소원을 실행에 옮겼다. 이른바 빅5병원이라 하는 큰 종합병원 중 한 곳에 종합건강검진을 예약한 것 이다. 비용은 90여만 원 정도로 기억한다.
우리 집 어르신들은 난리가 났다. 젊은 애가, 딱히 뭐 어디 아픈 데도 없는데 그 돈을 줘 가며 종합검 진을 왜 하냐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돈을 대신 내 주실 것도 아니면서 왜 뭐라 하시는지 이해할 수도 없거니와, 나의 불안한 마음을 제대로 설명할 자신 이 없었으므로 나는 그냥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고 얼버무렸다.
건강검진의 날, 연차를 내고 병원에 갔다. 누군가 같 이 가줄만한 분위기도 아니었고, 그럴 사람도 없었 기에 씩씩하게 나 혼자서. 지금은 많이 바뀌었을 것 같지만 그때는 나처럼 젊은 사람이 굳이 자발적으 로 건강검진을 받으러 오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대부분 어르신들인 가운데 나도 가운으로 갈아입고 이리저리 다니며 피도 뽑고 엑스레이도 찍었다. 산 부인과에서는 아직 미혼인데 검사를 하겠느냐고 물 었다. 나는 당연히 해달라고 했다. 낸 돈이 얼만데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검사 결과는 1~2주 정도 걸린다고 했다. 나는 그때 까지 줄곧 미세하나마 건강염려증을 달고 살고 어 쩌면 내가 모르는 큰 병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 했지만, 막상 병원을 돌아다니다보니 난 건강할 것 이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역으로 생겨났다. 오랜 소원이던 종합건강검진을 해 봤다는 것 자체만으로, 결과를 받아보기도 전에 나는 이미 안심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종합건강검진 결과가 나왔다. 지금이야 이메일로도 결과지를 받아볼 수 있지만 그때는 우편으로 보내주곤 했다. 그런데 나 에게는 별도로 전화가 왔다. 전반적으로 건강한 편 이지만 두 가지 특이 사항이 있다고.
하나는 갑상선. 피검사 결과 갑상선 기능항진증 소견이 나왔다. 내 분비내과로 내원하여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하나는 자궁경부암 0기라고. 이것도 산부 인과로 내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머리가 멍해졌다. 지금 내가 무슨 얘기 를 들은 거지 싶어서. 난 결혼도 안 했는데 자궁경 부암이라니? 그리고 갑상선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 지? 기능항진증은 뭐고?
검진 후 내심 의기양양해졌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 졌다. 난 정말 뭔가 문제가 있었던 게 맞구나 하며 눈물도 났다. 집에는 차마 얘기할 엄두도 나지 않았 다. 나 스스로가 정리가 되질 않았기 때문에. 그러나 곧 정신을 추스르고 내분비내과와 산부인과에 각각 진료 예약을 잡았다. 나의 본격 병원 방문과 ‘온몸 이 종합병원’의 역사는 이때부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