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의 질문 Q. 우리는 매일매일 소비를 합니다. 식료품도 사고 생필품도 사고.. 사치품도 사죠. 소비의 관찰만으로도 우리는 한 인간의 아이덴티티를 정의하기도 하고 인생의 라이프 사이클의 변화를 감지해내기도 합니다. 20대와 지금을 비교했을때 소비생활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윤 says
| 이걸 끝까지 쓸 자신이 있는가?
20대에 막무가내로 사들인 품목은 화장품이었다. 누가 좋다고 하면 사고, 색이 이뻐서 사고, 파우치를 집에 두고 온 날은 맨입술을 못견디어 급히 립스틱을 사고, 이렇듯 즉흥적으로 산 화장품을 끝까지 써 본 기억이 없다. 누군가의 추천이 내 피부에는 전혀 맞지 않으면 사용조차 할 수 없었다. 화장품은 노골적으로 개인주의여야 한다. 립스틱의 색조가 아무리 고와도 내 입술에 바르고 남는 향취가 불편하면 작별을 고하게 된다. 잦은 이별과 예쁜 쓰레기더미를 몇차례 정리한 후, 나의 파우치는 차츰 간소해져갔다. 몇년째 몇통째 쓰고 있는 제품들로 소담하니 실속있게. 그래서 한 두가지 품목에는 아끼지 않고 당당하게 비싸고 아름다운 사치품을 들인다.
| 손 떨리는 향수는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신사동 향수가게 총각은 매혹적이었다.
와인 맛에 눈뜨면 맛의 기준은 얇아지는 주머니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아 오른다. 나에게 향수가 그랬다. 어머! 첫 시작도 프랑스 파리 딥디크 매장의 잘생긴 매니저 총각이었다. 그의 정갈하고 부티나는 에티튜드에 반해 덜컥 향수를 구입하고 새로운 향에 눈을 떴다. 고현정 향수로 유명한 ‘필로시코스”와의 인연은 신사동 니치향수 매장으로 이어진다.
필로시코스를 만든 천재 여성 조향사 올리비아 지 아코베티. 이름도 이쁘고 얼굴도 예쁜 그녀가 십대시절 만들었다는 전설의(향수에 처음 무화과 향을 도입해서 이슈를 끌어) 담은 니치 향수를 소개 받았다. 27만원! 차분한 목소리로 음악을 바꿔튼 후, 프랑스 조향사들의 프로필 사진과 뒷 이야기를 설명해주는 매니저님의 우아함에 반해 아깝지 않게 지불했다. 하지만 향수가격치곤 비싸다는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고,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유니크하고 매력적인 향으로 나의 매혹지수를 높이겠다는 이유같지 않은 이유를 대고 마지막 한방울 까지 다 썼다. 훗날 독일에서 같은 향수를 7만원에 구입하며 피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남친은 축농증으로 끝낸 향을 맡지 못했다고 한다.
20대 나의 소비는 사람과 브랜드 스토리에 쉽게 홀리어 큰 소비도 마다하지 않았다면, 30대후반의 나는 여전히 브랜드 스토리에 눈은 반짝이지만, 지출 주머니를 꼭 쥐고 정신줄도 꼭 챙긴다.
| 편안함과 편안함
7cm 하이힐 아래로는 내려서지 않았었던 적이 있었다. 30대 초반은 유연하게 탐스나 벤시몽 슈즈를 따로 챙기어 다녔다. 지금은... 운동화만 신는다.
청바지보다는 스판기 머금은 핏좋은 슬랙스. 티안나도 내몸에 스치우는 촉감이 보드랍고 편안한 소재를 고른다. 편안하고 마감의 디테일이 훌륭한 제품에 자꾸만 손이간다.
타인의 시선과 간섭에 여과없이 영향받고 반응하던 20대 시절을 지나고 나니 거품이 빠지고, 나의 안목과 취향이 드러나고 본질이 보이기 시작한다. 타인의 관심과 시선에서 벗어나 편안함과 만족스러움 동시에 심심한 미소가 번진다.
문 says
| 외부의 시선에서 내부로
24살에 독립을 했다. 집은 일산, 회사는 분당이라 나같은 게으름뱅이는 회사를 다닐수가 없을것 같아 회사 근처 오피스텔을 얻었다. 꿈에도 그리던 독립을 해서 집을 너무너무 꾸미고 싶었는데 결국은 어디서 주어온 쇼파와 회사 벼룩시장에서 가져온 테이블, 엄마가 쓰다버린 전기밥솥, 15살때부터 쓰던 본가에서 가져온 옷장과 침대로 집을 채웠다. 집을 꾸미는데는 돈 한푼 쓰지 못했다. 왜냐면 집은 누가와서 보지 않는데 옷은 입고 나가서 누가보니까, 집 꾸미는데 들어가는 돈이 아까웠다. 집은 엉망이더라도 옷은 깔끔하게 차려입고 나갔다.
해외 쇼핑몰 패션MD들과 일하게 되면서 럭셔리 브랜드들의 프라이빗 세일에 초대받는 일이 잦아졌다. 평소보다 그리 싼가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견물생심이라고, 먹을거 안먹고 아끼고 아껴서 명품 가방과 구두, 옷, 시계, 액세서리를 사 모았다. 취향이라는건 없었고 그저 올해 유행하는 아이템, 누가 입고 누가 들었다는 그런 유명한 아이템 위주로. 이왕이면 화려하게 로고플레이가 된 아이템이면 더 좋고.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것인가가 나의 20대후반~30대초반 소비생활의 에센셜이었다.
35살, 7개월 아기를 키우고 있는 지금의 나는 이제서야 집을 “정리하는데” 돈을 쓴다. 텍스타일이나 가구를 새로사서 집을 꾸민다기 보단 필요없는 것들은 다 버리고 나눔하고나서, 남은 물건들을 효율적으로 수납하고 정리하고 깨끗하게 사용하기 위해 정리용품과 청소용품을 산다. (너무 아주미 같애ㅎㅎ) 그리고 이런 소비는 나에게 전에 없던 큰 만족감을 준다.
청소를 하고 정리를 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의 라이프스타일대로 집을 정리해가면서
진 says
이질문 꽤나 어렵다. 이번이 세번째로 다시 쓰는글이다. 그만큼 평소에 생각해본적 없는 주제라 생각을 고르는데 시간이 걸렸다.
글을 좀더 쉽게 쓰기 위해 '옷'이라는 카테고리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 하루를 온전히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편안한 옷
20대 중후반의 나는 170의 키에 55사이즈를 입었다. 즉, 약간마른 날씬한 체형이었다(아 옛날이여...) 출근할 때도 미니스커트를 입었고 타이트한 셔츠를 입었다. 물론 불편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날하루 예쁜게 더 중요했고 하루쯤 옷때문에 불편해서 일을 못해도 상관없었으니까.무조건 예쁜옷을 선호했다.
30대 중반을 넘어선 지금, 옷장에서 미니스커트는 사라진지 오래고 고무줄바지가 넘쳐난다. 그리고 오버사이즈 핏을 선호한다. 출산후 불어버린 배와 팔뚝과 허벅지와 눈물과....아무튼, 체형이 변한것도 있지만 온전히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서는 방해받지 않는 옷이어야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일이 많다. 그리고 일이 너무 즐겁다. 그런 하루를 꽉끼거나, 옷인지 돌인지 모를 무겁고 뻑뻑한 옷때문에 방해받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제는 편하게 입을수 있는 질좋은 옷을 선호한다.
지금 퇴근길에는 룰루레몬에서 산 부츠컷 바지를 입고 있는데 정말 편하다. 오전에는 부지런히 여기저기 다니고, 오후 사무실에서는 의자에 양반다리를 하고서 일에 집중할수 있었다. 여름이 다가오는 9시 퇴근길 지하철에서도 산뜻하고 가볍다.
| 자존감에 얼라인된 개성있는 옷
편안함 다음으로 중요한건 바로 개성!
디테일이 다르거나 쉐잎이 독특한 "흔히 볼수 없는 옷을 선호한다. 그래서 이런옷은 어디서 사냐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20대에는 앞서 말한것처럼 예쁜옷을 골랐다. 누구에게나 예뻐보일수 있는옷.
내가 좋아하는게 뭔지, 내가 잘하는게 뭔지 몰랐던 20대의 나는 기준을 남의 시선에 뒀다.
개성있는 옷을 고르기 시작한건 서른살이 넘어 내안에 자존감이 무럭무럭 자라나면서 부터였다. 남편과 아이에게 정서적으로 지지를 받고, 밖에서는 일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면서 나에게도 '드디어' 자존감이라는게 생겼다. 그러면서 옷을 고를때도 내가 마음에 들고 나다움을 표현할수 있는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흔하지 않으면서도 개성있는 옷을 고를 수 있는 편집샵으로 요즘은 '더 일마'를 자주 이용한다.
| 뜬금없지만 20대에게 들려주고 싶은 자존감 이야기
조금 다른맥락의 이야기인데, 옷에서 개성으로 개성에서 자존감까지로 이야기가 이어지다보니 누군가의 20대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나는 20대에 좋아하는 것도 없고, 하고싶은 것도 없는게 고민이었다. 회사는 지루하지만 회사밖을 나설 용기도 없었고 근본적으로는 의지도 없었다. 내가 일을 하는 원동력은 누군가의 인정과 칭찬이었고, 내가 정작 원해서 하는일은 별로 없었다. 누구는 20대에 창업을 해서 성공을하고, 누구는 밤새 어떤 일을 할지 고민하다가 침대에서 굴러떨어진적도 있다는데 나는 뭘 원하는지도 모르겠고, 뭘원하는지 알아내려면 어디서부터 생각해야하는지도 몰랐다. 우스개소리로 지인들에게 "30살 전의 나는 자아가 없었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10년이 넘는 업력과 다양한 경험(특히, 스타트업에서의 경험)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잘하는일, 하고싶은 일이라는게 생겼고, 일을 통해 자존감을 쌓고 자아실현을 하고있다. 그러니 조급해 말라고, 현재를 온전히 살아가다보면 답이 또렷해지는 순간이 온다고...혹시나 어딘가에서 20의 나처럼 고민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