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갑진년 청룡의 해가 밝았다. 새해 첫 일출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로 떠난 친구들이 서로 다른 풍경의 햇님 사진을 보내준 덕분에 포근한 침대 안에 누워 새벽 일출을 감상한 뒤 점심이 다 되어서야 몸을 일으킨 느리지만 평화로운 아침. 어제저녁, 연기대상을 보면서 점찍어놓았던 중화요릿집의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찍어 넣으며 조금은 느린 1월 1일의 아침을 시작해 본다.
강화를 찾은 모든 사람들이 그곳에 모이기라도 한 양, 문전성시를 이룬 중화요릿집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 아침. 저녁부터 기대했지만 가게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등을 돌리니 아쉬움이 차올랐다. 다음엔 꼭 예약하고 올 것을 다짐하며 다른 식당을 찾아가는 길. 이리로 갈까, 저리로 갈까, 포털 사이트 추천 맛집으로 갈까, 아니면 정처 없이 발길 닿는 데로 가다가, 손에 잡히는 어느 곳에 가는 낭만을 찾아볼까 하다가, 네비를 찍고 가다가 중간에 눈에 띈 곳에서 먹는 것으로 적당히 타협했다. 파워 J로서의 강박을 버리는 한 해가 되도록 만들어봐야겠다, 또 다짐해 보는 아침.
그렇게 찾은 식당은 맛있지도, 그렇다고 맛없지도 않은 무난한 곳이었다. 수타로 면을 뽑는다는 식당에, 리뷰까지 살뜰하게 남기고 국물 한 모금, 두 모금을 입안에 머금어보는 점심. 항상 공장에서 뽑아낸 것처럼 균일한 두께를 자랑하는 기성-면 짜장면을 먹다가, 삐뚤빼뚤한 굵기의 수타면을 먹자니 이렇게 새로울 수가. 한 달에 한 번은 안 해본 것을 해보자고 마음먹은 2024년, 시작이 좋다.
부른 배를 통통 치며 좋은 후식과 커피를 찾아 헤매는 길. 불은면 어귀를 돌다가 눈에 띈 카페로 무작정 들어가 보았다. 향후 나의 동네가 될지도 모르는 불은면에, 세 살 때부터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불은면에, 이런 좋은 카페가 생기다니. 수도권 사람들의 근교여행지로 한 유명하는 강화는 한 때는 펜션이, 한 때는 식당이, 이제는 힙한 카페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오후 세 시가 살짝 넘은 시간, 카페인에 예민해 수많은 드립 원두 선택지를 놓고도 디카페인을 선택해야 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기쁜 마음으로 커피 두 잔을 시켰다.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 가끔은 와서 일기를 쓰고, 가끔은 와서 여유를 즐기고, 또 가끔은 책을 읽어도 좋으리라.
혹자는 커피가 맛있든지 맛없든지 상관없는 라테가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따뜻한 우유가 들어간 모든 음료를 애정하는 나에게는 나름의 명확한 기준과 취향이 있는 카페라테의 세계. 부드러운 우유 거품과 우유를 감싸 안은 커피 맛이 일품이었다.
"나 참, 빈손으로 나가기는 처음이네."
초지대교 앞 도로에서 한 시간 동안 미적거린 후에야 겨우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엄마가 나지막이 내뱉었다. 평소라면 풍물시장에서 순댓국 한 그릇과 밴댕이 덮밥 한 그릇으로 주린 배를 채웠을 텐데. 이제는 외지인들이 더 많은 것 같은 풍물시장 2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 색다른 것을 시도한 것이 화근이었나 싶다. 으레 찾는 어서 오시겨 아주머니 강정도 못 먹고, 자색 감자칩 한 봉지도 못 사고, 콩 하나가 콕 박힌 찐빵도 먹지 못하고, 수수부꾸미 하나를 입에 넣지 못한 채로 강화를 떠나자니 이렇게 허전할 수가 없었다.
그저 먼 길 떠난 오랜 인연을 그리며 찾은 강화집에 작은 마음을 놓고 가는 길, 텅 빈 손에 쥐어 준 서리태 콩 한 봉지만이 허한 마음을 채워줄 뿐.
어느덧 한국 나이 30이 된 스물여덟 봄처녀의 갑진년 하루가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