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하나 없어졌다고 마음이 먼저 가난해졌다.
아주 오랜만에 알람을 맞추지 않고 느긋하게 잔 아침이었다. 혹시나 늦잠이라도 잘 까봐 새벽 5시부터 7시까지 30분 단위로 알람을 듣고 움직이던 평소와는 다른 하루의 시작이었다. 공항까지는 고작 20분 거리인 데다, 오후 세 시 비행기였기에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백수가 된 나를 축하라도 하듯, 맑은 하늘이 반짝이며 나를 환영해주고 있었다.
마당에 물을 주는 엄마 옆을 서성거리며 괜히 기웃거리고 말을 붙였다. 엄마, 이제 진짜 가을 같다. 이 꽃은 가을에 피는 꽃이야? 9월 말에도 매일 두 번씩 물을 줘야 해? 거미를 보고 놀라기도 하고, 햇살을 받은 물줄기가 그려내는 무지개를 보면서 탄성을 터트리기도 하고. 4년 동안 새벽에 출근하면서 잊고 있었던 아침 9시의 따뜻한 햇살도 만끽해 보았다. 원래라면 지금쯤 아웃룩 메일함을 정리하며 위에 살기 위한 카페인을 때려 넣고 있었을 텐데. 앞으로는 그 메일함에 다시는 들어갈 일이 없다니, 참 이상한 기분이었다. 출근하지 않는 아침은 익숙하면서도 묘하게 낯설었다.
아침에 사용한 물건을 마지막으로 여행 가방을 모두 싸고 나니, 이번엔 공항까지 어떻게 갈지가 고민됐다. 엄마와 함께 갈 때는 고민 없이 차를 끌고 갔지만, 이번에는 집에서 차를 써야 할 수도 있어 그럴 수 없었다. 그럼 송도신도시까지 택시를 타고 가서 리무진 버스를 탈까 하다가, 일주일 내내 야근한 몸이 더는 기력이 없다며 비명을 질렀다. 한참을 계산하고 망설이던 끝에 친구에게 얘기했더니, “그냥 공항까지 택시 타. 3만 원 조금 넘을걸?”이라는 답장이 돌아왔다.
‘공항까지 택시를 타고 간다고? 내가 그렇게 사치스러운 짓을?!!’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고작 1년 전 여름휴가에서 돌아오는 길에 태연하게 택시를 타고 귀가했던 기억이 스쳤다. 검색해 보니 예상 요금은 2만 8천 원, 통행료를 더해도 3만 5천 원이 채 되지 않았다. 택시와 리무진을 조합했을 때와는 만 원 남짓 차이였고, 소요 시간은 30분 이상 단축되는 아주 이상적인 이동 루트였다. 그런데도 순간 머릿속에 ‘좀 아깝다’는 생각이 스쳤다. 9월 월급도 곧 들어오고, 4년 치 퇴직금도 받을 텐데. 직업 하나 없어졌다고, 큰돈 쓰는 게 괜히 부담스러워진 나 자신이 낯설었다.
약 20분 정도 이동하자 공항에 도착했다. 연휴를 앞둔 평일이라 분주할 줄 알았는데, 공항은 의외로 한산했다. 누가 그랬던가. 여행 자체보다 아침에 일어나 공항으로 향하고, 수속을 밟고, 면세점을 돌아다니는 그 ‘떠난다는 것’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고. 잠시 서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과연 그런 사람이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1년 만에 다시 마주한 인천공항이 괜히 반가웠다.
이번 여행은 ‘앞으로 당분간은 비행기를 탈 일이 없겠지’ 하는 생각에, 남아 있던 마일리지를 털어 비즈니스 클래스를 끊었다. 항공권을 결제할 때만 해도 ‘이코노미에 쓰기엔 아깝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여행이 가까워질수록 따뜻한 그릇에 담긴 기내식이 괜히 기대됐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먹을 것에 진심인 사람처럼 들릴까.
적게는 13시간, 많게는 하루 가까이(환승 포함) 이코노미 좌석에 구겨져 다니던 유학시절. 시간 착오로 어쩔 수 없이 몇백만 원을 더 내고 유일하게 남아있던 비즈니스석을 끊은 적이 있는데, 그때 먹었던 따뜻한 빵 맛이 참 좋았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러니까 그렇게 따뜻한 빵은,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고 있을 (통장이 통통한) 미래의 내가 아니라, 지난 10년을 고생해 온 내가 먹는 게 맞았다.
슈트를 입고 서류가방을 든 사람들 사이, 나는 머쓱하게 텅 빈 캐리어를 끌고 있었다. 면세품을 넣기 위해 일부러 가볍게 챙겨 온 가방이었다. 퇴사한 지 하루, 아직 취업 준비도 시작하지 않은 나는 말 그대로 ‘취준생’의 복장으로 그들 사이에 서 있었다. 갑작스럽게 여행 일정 중에 인터뷰가 잡혀, 그때 입기 위해서 급하게 걸친파란 셔츠가 아니었다면 혼자만 동떨어져 보였을지도 모른다. 사실 나의 복장 같은 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겠지만. 이때부터였다. ‘직업이 없는 나, 다음 달에 받을 월급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슬그머니 마음 한켠을 파고들기 시작한 건.
유학생 시절 이후 처음으로 아무 직업도 없는 상태로 돌아다니는 면세구역. 환율이 높아 면세점 메리트가 사라지기도 했지만, 평소 같았으면 선글라스도, 향수도, 커피 한 잔도 ‘이거 괜찮네’ 하며 집어는 들어봤을 텐데. 이상하게도 어느 하나 손이 잘 가지 않았다. 1시간 가까이 면세점을 돌았지만, 결국 인터넷 면세점에서 미리 주문한 물품만 수령하고 라운지로 향했다.
마치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이곳에 들어오면 안 되는 사람처럼, 라운지 한쪽 구석자리에 앉아 있다가 문득 옆 테이블의 가족이 눈에 들어왔다.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아이들 앞에서,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노트북을 펼쳐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가족과 휴가를 떠나는 순간까지도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을 텐데. 매 휴가 전날까지 인수인계를 하고, 메일함을 비우고, 미팅 일정을 마무리 짓던 나의 모습이 스쳤다. 친구들은 지난 10년, 열심히 살았으니, 조금은 내려놓고 쉬어야 된다고 말했지만, 앞으로 한동안은 저렇게 열정적으로 노트북을 두드릴 일은 없겠지, 하는 생각에 숙연해졌다.
나도 공항에서 노트북 두드릴 수 있는 사람이야! 하고 '있어 보이고 싶은 나'와 내 안의 작은 '허세'가 손뼉을 마주쳤다. '있어 보이고 싶은 나'는 곧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탁자 위에 올리고 전원을 켰다. 기분 탓인지 유난히 로딩이 오래 걸리는 것만 같았다. 화면이 켜지지 않는 검은 화면을 쳐다보다가, 와이파이 정보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가서 물어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연결해 봐야 고작 여행 정보를 찾아보겠지, 하는 생각이 들자, 더 이상은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있어 보이고 싶은 나'는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나'로 돌아왔다.
할 것이 없어진 나는 이내 온라인 면세에서 산 봉투를 뒤적거렸다. 직장인이었던 7월의 내가 하나하나 고심해서 담고, 페이 적립율이 제일 좋은 날을 노렸다가 결제한 것들이 봉투 가득 담겨있었다. 여행을 책임져 줄 용량이 짱짱한 보조배터리 하나. 엄마와 나의 건강을 지켜줄 다양한 종류의 영양제 (1년 치!). 심플한 귀걸이 한 쌍. 그리고 평소에 써보고 싶었던 브랜드의 바디워시와 바디로션. 얼른 헬스장에 가져다 놓고 직장 선배에게 사용 후기를 알려줘야지! 히죽이다가 휴가가 끝나고 연휴가 지나도 내가 그 책상에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다시금 떠올랐다.
직업 하나 없어졌을 뿐인데, 마음이 먼저 가벼워졌다. 통장보다 빨리 텅 빈 건, 나를 지탱하던 정체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