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1
때론 어른들 보다도 넓고 깊은 아이들의 마음
3월은 설렘의 달이다. 입학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달이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막연한 두려움이 느껴지는 달이기도 하다. 익숙했던 것들과 작별하고, 아직 잘 모르는 것과 친해지거나, 아니면 적어도 친해지려고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 에너지 방출의 달이기 때문이다.
3월 4일 아침.
6세 반이 증설되면서 큰 버스 하나가 늘어 개학 바로 전까지도 등원 버스 루트 때문에 골머리를 썩었던 터라, 4일 아침에야 기사님께 받은 명단 하나를 손에 쥐고 긴장된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원에서 가장 먼 코스를 도는 버스였다. 이제는 여섯 살이 된 늠름한 남자 친구가 먼저 버스에 올랐다. 이제 더 이상 다섯 살이 아니라는 듯이 씩씩한 걸음걸이로 좌석에 엉덩이를 붙였다. '두바이 반 가는 거 좋아?' 하고 물으니 '헤- ' 하고 웃는다. 불과 3일 전만 해도 막내둥이였던 아이는 며칠 만에 쑥 큰 것만 같았다.
다음은 3월부터 2년 차 6세 반에 합류하기 위해 한 달 먼저 5세 반에 합류했었던 여자 친구의 차례였다. 처음 등원을 하는 날도 버스를 이용했기 때문에 참 씩씩한 친구라고 응원했던 친구였다. 수업 중에 "티쳐 알랴뷰 알라뷰" 사랑 고백을 해 주고, 마치 한 1년 같이 공부한 친구처럼 빠르게 적응한 친구였다. 그런 아이는 버스가 서서히 가까워지는 걸 보더니 엄마 뒤에 숨어 울음을 터트렸다.
"왜 울어? 응?"
"두 바이반 가는 게 무서워서 운대요."
목 놓아 우는 아이 대신 어머니께서 대답하였다. 5살 반에 계속 있고 싶다고, 6세 반은 무섭다고 했다. 선생님들도 똑같고, 반 친구들도 똑같고, 그저 교실만 바뀐다고 이야기해줘도 아이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내가 다가가자 슬쩍 뒷걸음질하는 어머니 대신 아이를 번쩍 안아 버스에 태웠다. 절대 가지 않겠다는 듯 엉엉 대고 울었지만, 이렇게 냉정하게 태우지 않으면 더 오래 지속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달래주고 안아 주어도 멈추지 않던 아이의 울음은 길 건너 다른 여자 친구가 타면서 금세 뚝 하고 멈췄다. 훌쩍거리면서도 이름이 뭔지, 몇 살인지를 묻는 아이의 모습에, 한국어를 모르는 척하고 있던 나도 속절없이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한 살 차이 나는 언니 동생 사이였지만, 역시 친구가 최고였다.
이후 몇 명의 학생들을 더 태우고 원에 도착하니, 원장님이 아이들을 맞이하여 주었다. 등원 버스를 탄 지 햇수로 4년째, 항상 제일 늦게 들어오는 버스였는데, 올 해는 그 반대인가 싶었다. 습관적으로 다섯 살 반으로 들어가던 친구들을 6살 반으로 안내해 주고, 내 교실에 가서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는데, 가슴팍에 이름을 적은 스티커를 붙이고, 다소 긴장한 얼굴을 한 아이들이 교수부장님의 안내를 받고 교실로 오고 있었다. 재킷을 받아 걸고, 각자의 선반에 가방을 넣어 주고, 칫솔과 치약 그리고 컵을 꺼내어 프런트로 가져갔다. 여벌 옷을 분리하고, 바리바리 싸들고 온 물티슈를 Teacher's Room으로 옮겼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Gym으로 걸음을 옮기자, 2월까지 Gym에 가득했던 이미 영어를 알고, 소통할 수 있었던 아이들이 사라진 이 곳에서 어쩔 줄 모르는 신입 선생님이 나를 반겨 주었다. 딱 4년 전, 내가 하고 있었을 얼빠진 얼굴을 하고 말이다.
12시, 점심시간이 시작되고 스탭 선생님들에게 아이들을 보낸 후 네 명의 선생님들이 Teacher's Room으로 모였다. 나와 같이 2년 차 7세 반을 맡고 있는 선생님에게 '오늘 아침은 어땠어?' 하고 묻자 긴 한숨이 돌아왔다. '그래도 걔네들은 영어를 다 알아듣고, 다 읽잖아?'라고 다시 묻자, '그냥, 아직 내 애들이 아니니까.' 하는 애매한 대답이 돌아왔다. 작년에도, 그 전에도 들었던 말이었다. 내 애들이 아닌 것 같다는 말. 불과 4일 전까지 함께했던 내가 알고 나를 아는 아이들이 아니라, 겨우 한 과목 가르치러 들어가던 아이들의 담임이 된다는 것은 선생님으로서도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새로운 선생님의 수업 방식에 익숙해 지기 전까지, 아이들이 습성에 대해 속속들이 파악하기 전까지는 아무리 영어를 알고 있는 아이들을 가르친다 하더라도 결코 쉬운 시간이 아닐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하반기쯤 가면 분명 '우리 애들이 최고!'라는 이야기를 듣겠지만, 그게 오늘은 아닌 것이었다.
'너는?'
'나는 잘 모르겠어.'
'너는 좀 괜찮아 보이네?'
'뭐.'
나는 자칭 비기너 전담 선생님이다. 1년 차로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유치부도 초등부도 1 레벨, 2 레벨 친구들을 계속 맡아 왔고, 나 자체도 외국어를 배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외국어를 처음 접할 때의 어려움과 당혹스러움을 잘 알고 있기도 했다. 그냥 한 걸음 한 걸음, 영어를 좋아할 수 있도록, 때로는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것처럼 과장해가면서 가르치다 보면 어느덧 흘러있을 시간임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한국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수업 내에서 완급조절이 가능한 것도 내가 가진 부정할 수 없는 메리트였다. 하지만...
이제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거지.
그래도 3월 첫날은 절대 괜찮지 않다. 그저 물 마시고 싶을 때 'Water, please.' 화장실을 가고 싶어 할 때 'Bathroom, please.'처럼 쉽지만 필수적인 것들부터 내가 해나갈 수 있는 것을 해나가는 것뿐, 심지어는 오후 초등부까지 ELE1반을 맡아 가르치는 내가 소통의 부재를 이겨낼 수 있는 비법 같은 건 없다. 그냥 꾹꾹, 아이들이 준비가 될 때까지 같이 걸어주는 것 외에는.
1주일 내내 말간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는 아이들에게, 칠판에 무한 SOS를 치기도 하고, 불을 껐다 켰다 하기도 하며 (믿거나 말거나, 굿모닝과 굿 나이트을 가르치는 데에는 불 켜고 기지개, 불 끄고 잠자는 척이 최고다) one-way 커뮤니케이션을 단행하고 있을 무렵, 초등부의 한 아이가 내게 다가와 차근차근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생님, 저는 그냥 영어를 공부하러 왔을 뿐인데, 이렇게 재미있을지 몰랐어요."
"... I don't understand! (모르는 척하지만 기쁜 마음에 콧구멍이 벌렁벌렁)"
"선생님, 인사할 때는 꼭 한 번 안고 헤어지는 거예요. 저 숙제 열심히 해 올게요, 내일 또 봐요!"
짧디 짧은 5일. 어른인 나는 아직 모르겠는데, 아이는 나를 다 아는 것만 같다. 앞으로 1년 동안 잘해보자! 내가 아는 건 다 줄 테니 내게서 모든 걸 가져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