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또래집단이란

소속되지 못한다는 데에서 오는 소외감과 박탈감.

by 환한

내가 2학년 1학기, 2012년 봄학기를 학부 생활 중 최고의 학기로 꼽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1학년 2학기 무렵, 이제껏 이렇게 많은 한국 학생들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수의 한국 학생들이 들어와 (신입생, 복학생 포함) 외국인 듯 외국 아닌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었고, 방학을 지낸 후로도 반년 간의 계약이 남아있던 집은 이사할 필요 없이 안정적이었고, 해외에서의 생활도 이젠 적응을 마쳐 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어졌을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생활은 지나와 생각하면 그때만큼 쉬운 것이 없었지만 그때의 나에겐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는 과제, 리딩, 그리고 조별과제들로 꽉꽉 들어차 있었는데, 편입을 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좋은 학점을 가져가려던 2학년 1학기 무렵의 나에게는 매일매일이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때의 나는 어딘가 모르게 뾰족하고 날이 선 가시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누가 업어가도 모르는 지금과 달리 조그마한 발자국 소리에도 잠이 깨고 쉽게 잠이 들지 못하는 신경과민에 불면증까지 덤으로 가지고 있었다.


당시 나를 제일 힘들게 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리포트도 발표도 아닌 'XX년생 모임'이었는데 - 한국으로 치면 같은 학번 동기 모임 같은 거랄까 -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다는 일종의 소외감이 나로 하여금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도 더 민감하고 예민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1학년 1학기 때 룸메 A의 험담 사건으로 영문도 모른 채 한국인들에게 일방적으로 배제되는 일련의 경험을 한 뒤였기 때문에 그랬던 것도 있었지만, 함께 멀리 나와 공부하는 처지에 그런 또래 집단의 모임은 내게 박탈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18살, 국제 나이로 열일곱 살이었던 내게 20살이 넘은 언니 오빠들은 그야말로 '어른의 표본'과도 같았다. 아, 어른들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어른들은 저렇게 행동하는구나, 이럴 땐 이렇게 반응을 하고 말해야 하는 거구나 하고. 그래서 그들은 나의 거울과 같았다. 나도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서 그들이 하는 행동을 따라 하고, 말을 따라 하고, 그들이 내게 보이는 태도를 복사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룸메이트를 통해 행동과 처신을 똑바로 하라고 이야기가 들어오기도 하고, 대놓고 혼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윗사람한테 그렇게 행동하는 것 아니라고. 내가 드세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순간도 바로 이 즈음. 그저 무표정하게 있었을 뿐인데, 여자애가 눈을 똑바로 뜨고 말대답하는 건 옳지 않다고 했다. 누굴 만나든 웃는 표정을 짓게 된 것도 바로 이때였다.


나와 동갑인 동생이 있는 룸메이트는 그런 것들 하나하나를 신경 쓰며 예민해하는 나를 잘 보듬어주는 타입이었는데,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언니 방에 찾아 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떠드는 내 말을 가만히 들어주기도 하고, 사람들을 대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는 내게 조언을 해 주는 아주 고마운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내게 제일 도움이 되었던 한마디는 바로 '그들도 애'라는 것이었는데, 특이하게도 나처럼 일찍 대학에 들어온 아이들이 왕왕 있는 우리 학교에서나 '언니'와 '오빠'가 된 20살들도 사실 고등학교에서 갓 나와 사회에 들어온 새내기기 때문에 여러 모로 미성숙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 것이었다. 마치 엄마가 자식에게 '나도 엄마는 처음이라 잘 몰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나는 그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얻게 되었다. 좀 더 넓은 시각으로 사람들을 볼 수 있게 된 순간이었다.


Clara_Cho_China 1101.jpg 웃음꽃이 피던 일요 산책


사실 룸메이트와 나는 여러 모로 반대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데, 목소리가 큰 나와 목소리가 작은 언니, 예능을 즐겨 보는 그녀와 드라마를 좋아하는 나는 출신도, 나이도, 취미도, 김치찌개를 끓이는 법도, 심지어 옷 입는 스타일마저도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런 우리 둘이 딱 하나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취미가 있었는데, 이는 바로 '영화보기'였다. 우리는 종종 자기 전 침대 위에 작은 테이블을 올려놓고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는데, 나는 퍽 그 시간을 좋아했다. 모든 과제가 끝나고 제일 편안한 곳에서 폭신한 이불을 끌어안고 잠을 청하던 그 순간을.


DSC_0407.jpeg 우리가 제일 즐겨먹던 지파이와 위 샹치에 즈, 그리고 볶음밥

같은 학교에 보통 같은 수업을 듣는 우리 학교의 여러 룸메이트들처럼 우리도 거의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했다. 여느 때처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먼저 씻고 아침을 준비해 놓으면, 저녁때는 또 언니가 이것저것 복작복작 준비하거나 같이 나가서 사 먹고 들어오기도 했다. 주말에는 종종 느지막이 일어나 외식을 하거나 길 건너편에 생긴 조금은 가격대가 있는 카페에서 케이크와 차를 마시며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사진 찍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도 바로 이 언니 덕분이었다. DSLR을 가지고 있ㄷ던 언니는 종종 사진기를 들고나가 내 사진을 찍어주곤 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딘가의 프로필 사진으로 쓰이고 있을 정도로 내가 좋아하는 사진들이다. (반면 수전증이 있는 내가 언니를 찍어준 사진들은...)


DSC_0504.jpeg


그렇게 사람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멘털이 바사삭하던 어린 나는 누가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철제 방패를 단단히 싸맨 20대 중... 후반의 어른이 됐다. 언니 말처럼 20살, 21살이 되었을 때 나는 어른이 아니었다. 그저 청소년과 어른 사이의 어딘가, 사회의 책임은 부여받았고, 당당하게 주민등록증을 내밀 순 있지만 아직 다 크지 않은 무언가였다.


일을 하면서, 세상을 살면서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쌓으며 살아간다. 내가 앞으로 한순간도 잊지 않고 기억할 그 말은 바로 세상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어른이거나 지혜롭지 않다는 것이며,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비로소 상대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이전 10화편입할 때 필요한 모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