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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MAMBA Jan 17. 2022

2022년 두 번째 주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 

두 번째 주를 마치며. 


1.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 


유튜브를 돌아다니다가 다음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3년 동안 똑같은 옷을 입었다는 여성 CEO의 이야기. 해당 영상에서 그는 어느 날 자신이 똑같은 옷만 찾아 입는다는 것을 알아채곤 그날로 본인이 제일 잘 입는 그 티셔츠 일곱 개를 사고 1000일, 약 3년 간 그 옷만을 입은 뒤 이 영상을 찍었다고 한다. 


이 영상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옷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규직 되기 싫은가 봐'라는 소리를 들었던 지인을 알기 때문이고, 그 때문에 얼마 되지 않은 월급을 쪼개 쇼핑을 하고 피부 관리를 해야 했던 사람을 봐왔기 때문이다. 나 자신 또한 대학 시절, 같은 옷을 여러 번 입는다는 이유로 '가난해서 찢어진 옷을 입은 줄 알았다'는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그저 집에 건조기가 있었던 것뿐인데...). 그렇기 때문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꾸미고 다녀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출근 전날 입을 옷을 미리 준비해 놓는 것도, 겹치지 않게 신경 쓰는 일도 하루의 일부분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일은 적잖은 에너지를 잡아먹는 원흉이었다. 



이 영상을 보고 난 뒤, 나는 내 옷장과 책상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미니멀리스트를 꿈꾸는 맥시멀 리스트의 삶을 살고 있는 만큼 정말 다양한 물건들이 자리해 있었다. 색색깔의 펜, 세 쌍의 나무 색연필, 거의 10권이 넘는 '사용 중인 노트', 세 개의 연필꽂이.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까지 끌어안고 있기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펜은 무조건 빨검파 세 개와 만년필만 사용하는데도, 분홍색부터 갈색, 파란색, 없는 색이 없었다. 두 개의 노트북 중 하나는 태블릿 겸용의 2 in 1이라 아이패드와 용도가 상당 부분 겹쳐서 거의 스탠드에 꽂혀 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 (What a waste)도 알게 되었다. 내가 가진 것 중 뭘 사용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용도가 겹치는 것들을 당근에 내놓고 책상 정리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여러 개의 물건이 장터에 올라갔다. 1년 이상 손을 대지 않은 옷은 과감하게 정리했다. 재택근무 덕분에 옷 걱정을 할 일 없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그저 아침 미팅에 사람처럼만 보이면 되었다. 우후죽순 넘쳐나는 후드티는 학교 이름이 박힌 것 두 개만 남기고 정리하였고, 당시에 예뻐 보여서 샀지만 이제는 더 이상 입지 않는 길거리표 옷들도 싹 다 정리했다. 이제야 왜 엄마가 10개의 티셔츠보다 두세 개의 브랜드 옷을 사는지 알게 되었다. 옷감이 더 탄탄하고 오래 입을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돈이면 SPA 가서 몇 개 살 수 있는데, 라는 이야기를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도 결코 손대지 않을 것들은 사지 않는 현명한 어른이 되어야겠다. 


2. 밥 값 하는 직원이 되어 가는 중


6개월 여 기간 동안 진행될 수습기간/트레이닝 중 1/6을 마쳤다. 첫 출근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한 달을 꽉 채워 달력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려 넣었다. 12월 13일에 시작했으므로, 매 13일이 돌아오면 하나씩 그려 넣을 심산이다. 첫 직장에서도 했고, 두 번째 직장에서도 했던 일이고, 그것이 이어져 세 번째 직장인 여기까지 이어졌다. 


전 주 까지는 실무보다는 트레이닝에 매진했었는데, 딱 한 달 차인 목요일부터 본격적으로 매일 하나씩 프로젝트를 받게 된 후로는 트레이닝 자료를 단 5분도 쳐다볼 시간이 없었다. 그제야 일을 하면 할수록할 시간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할 수 있을 때 (초반에) 다 해 놔야 한다던 매니저님의 말이 이해가 됐다. 온보딩 트레이닝을 받을 땐, 내가 회사에 온 것인지 아니면 다시 대학원에 온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는데, 작은 것 하나씩 납품하면서 또 이렇게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모든 직장인의 꿈은 퇴사, 놀고먹는 거라던데. 나도 노는 거 정말 자신 있고 제일 좋아하는데, 또 하나씩 무언가를 이뤄낼 때 짜릿한 성취감을 느끼는 걸 보면, 완벽하게 놀고먹는 백수 생활은 자신이 없다. 


3. 커피머신을 들여왔다. 


자그마치 3년을 고민했던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커피 머신을 사는 일. 누가 들으면 그게 뭐라고 3년을 고민하냐 하겠지만, (방금 전에도 미니멀 리스를 꿈꾼다고 하는 사람이..) 내게 커피 머신은 커리어우먼(?) 아니면 성숙한 어른들만이 가질 수 있는 그 어떤 상징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입사라는 관문을 통해 어른의 세상에 입성한 나에게 선물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물건에 의미 부여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4년 동안 몸 담은 직장을 떠날 땐 '퇴사 기념 쇼퍼 백'을 샀고, 엄마에겐 '이직 기념 명품 가방'을 사 드렸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15년형 맥북 프로는 대학원 입학 기념으로 산 것이고 대학원을 처음 졸업할 땐 엄마에게 '졸업 기념 김치 냉장고'를 사 드렸다. 엄마에게 2020년 생일 선물로 받은 자이스 안경 (세상에 안경을 30만 원 넘게 주고 맞춰 보기는 처음이었다)은 '진정한 사회인이 되는 기념 안경'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이 커피 머신에는 어떤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좋을까. 


"사람들이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첫 발을 뗀 기념" 이라거나 "백수 졸업 기념" 같은 것은 어떨까. 


좀 더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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