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두 번째 편지

by 니모

안녕하세요, 니모입니다 :)

벌써 10월의 절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네요.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가는 걸 보면 그래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구나 싶기도 하고, 매일 새로운 날이 시작되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에게 삶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너무 힘들어서 죽지 못해 사는 삶일 수도 있고, 소소한 기쁨들로 채워진 날들일 수도 있고, 계속해서 나를 확장해가는 무대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나라는 생명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삶의 목적과 의미는 무엇일까 여러분도 분명 고민해 보신 적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질문일 수 있는데 이것에 대해 고민해 볼 기회와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 세상이 우리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청소년기에 어영부영 넘어가버린 이 질문을 다시 마주할 때 반대로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태어나, 어쩌다 갖게 되어버린 생명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쳐서 허덕이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몸을 입은 짧은 몇 십년이 다시 없을 기회였던 것이었다면, 여러분 마음을 스쳐가는 무언가가 있지 않으신가요?


죽기 직전을 상상해 보면 얻게 되는 통찰들이 있습니다. 귀찮아서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어버리지, 라고 생각해도 사실 계속해서 부딪치는 문제들이 나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고통을 만났을 때 세상이 왜 이래, 하다가도 그것에 그만 끌려다니고 싶다는 마음을 먹어버리면 그때부터 고통은 나의 진화를 위한 도구로 성격이 바뀝니다. 찰나에 이 모든 것이 그저 매트릭스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바꿔 말하면 어떤 힘듦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내 의식이 확장되는 계기라고 생각하시고 부정적인 감정 속에서 나를 건져올리는 연습을 하면 됩니다. 당연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나를 평가하고, 질책하는 훈련은 수없이 해왔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되지만 나를 칭찬하고 보듬어주는 것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처음이 어색하지 하다보면 또 익숙해지는 것이 인간 뇌의 놀라운 가소성이기도 합니다.


이미지 출처: WhiteHole


아마 제게 명상 수업을 들어보신 분들은 기억이 나시겠지만 가장 왼쪽의 숫자는 의식의 밝기(Lux)를 표현한 것입니다. 300룩스의 한 개인은 200룩스 이하의 9만명을 상쇄할 정도의 의식의 크기를 가졌다고 말합니다(cf. David Hawkins, 의식혁명). 200룩스 미만에서는 나와 다른 사람의 에너지를 고갈시키며 살아남기 위해 애쓰지만 200룩스 이상부터는 스스로 에너지를 채우고 또 누군가에게 에너지를 주는 자아의 확장이 일어납니다.


내가 마주한 문제들에 끌려다니는 상태는 200룩스 이하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삶이 내 의식을 확장하는 도구라고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단계가 200룩스의 용기이고 현재 인류 전체의 평균치가 204룩스 정도 된다고 하니 집단무의식이 더 낮은 수준에 있었을 때와 비교해 마음만 먹어도 도약할 수 있는 환경에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너무 생소하고 이게 웬 사이비 같은 소리냐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보통 가족이나 직장 내에서 일어나는 기싸움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눈치, 줄타기, 분노와 자존심 싸움은 200룩스 이하에서 계속해서 같은 사이클을 반복합니다. 부정적인 의식이 '나'와 동일시 되지 않고 의식 상태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누군가가 200룩스 이상을 써서 사이클을 끊어내면 집단 내에서도 의식의 진화가 함께 일어납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각자가 풀어야 하는 문제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누군가가 이룬 의식의 도약으로 전체의 평균이 올라가도 내가 풀어야 하는 문제를 풀지 않으면 나에게는 같은 문제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됩니다. 어쨌거나 결론은 개개인이 200룩스 이상의 의식을 선택하고 쓰는 훈련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고 전체의 평균치가 높으면 이런 훈련도 좀 더 쉽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알쏭달쏭 한가요? 그럼 200룩스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것은 몸에서 부터 시작합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의식도 같이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아프면 세상 만사 귀찮고 우울합니다). 규칙적인 식습관, 운동습관, 수면습관 3가지가 몸(=의식)의 기본 바탕을 만듭니다. 그리고 반드시 호흡을 해야합니다. 살아있으니 당연히 다 숨을 쉬고 계시겠지만 하루에 2-3분이라도 숨 쉬기에만 집중하는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숨을 잘쉬면 고갈되지 않는 자가발전기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운동을 하더라도 호흡을 느끼면서 하시면 됩니다).


지난 이메일에서 했던 태양명상이나 에너지느끼기, 자연에서 걷기 모두 숨을 관찰하면서 쉬는 것에 도움이 되는 방법입니다. 내가 숨을 잘 쉬고, 밥을 잘 챙겨먹고, 몸 상태를 관리하는 계획이 삶 속에 들어오면 내가 나를 돌보고 있구나, 라는 내면의 힘이 차곡차곡 쌓여 용기가 됩니다. 용기는 뿌듯함의 반복으로 쌓여갑니다.


용기가 생기면 애쓰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충만함으로 살기 시작하는 것이죠. 세상이 왜 이래, 라고 저도 자주 생각하지만 내가 바뀌지 않으면 세상도 바뀌지 않습니다. 이쯤 이야기 하면 당연히 내 삶의 패턴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사회구조적인 문제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실 겁니다. 지구 환경이 건강하면 호흡의 질이 떨어지고 가족이나 직장 내 생활패턴이 불건강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은 200룩스 이하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200룩스 이하의 개인들이 찾은 해결책은 계속해서 누군가를 고갈시키는 집단무의식으로 확장됩니다. 다시 돌아온 같은 결론이지만 적어도 200룩스 이상의 개인이 모여 만든 해결책이 집단적으로도 지속가능한 결과를 만들게 됩니다. 또, 집단 안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200룩스 이상의 의식을 지속적으로 쓸 수 있다면 문제의 양상을 변화시킵니다.


제가 이메일에 이런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제 메일링을 받으시는 여러분의 자아강도를 믿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좀 더 잘 살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여러가지 상황과 실패 속에서도 자신을 강건하게 만드는 선택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개인의 선택은 스스로를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반드시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지금 나를 고갈시키는 생각과 행동패턴을 멈추는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잠시 멈추어 숨 쉬는 것에 집중해 보면 내 마음이 누군가의 마음과 연결돼 있고, 내 숨이 다른 누군가의 숨과 연결돼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느끼게 되실 겁니다. 탓하지 않는 변화의 시작이 바로 용기입니다. 이 이메일이 여러분의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연은 무심하지만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할 일을 해냅니다. 균형을 맞춰가는 자연의 섭리 속에서 언제나 균형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시는 날들이 되시기를.


물든 잎이 떨어지는 순간을 목격하는 11월의 한가운데서

사랑을 담아,


니모 드림.

매거진의 이전글12월의 첫 번째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