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뒷걸음질 치는 사랑
안녕하세요, 벌써 서울에 첫눈이 내렸다고 하네요. 잘 지내셨나요?
이번 편지에서도 또.. 저의 혼잣말을 해보려고 합니다. 항상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뒷걸음질 치는 사랑>
3년 반 정도를 만났던 전 애인에게 제가 늘 듣던 말은 '너는 왜 나한테 마음을 열지 않아?'였습니다. 하도 그 얘기를 반복해서 들어서 <마음 열기>에 대한 강박이 생길 정도였어요. 마음을 도대체 어떻게 열어야 하는지, 문고리가 어디에 있는 건지, 있기는 있는 건지. 마음을 못 여는 제 자신을 탓하면서 괴로워했습니다. 상대는 억지로 제 마음을 열어보려고 갖은 방법을 동원하다가 서로 험한 말을 하며 싸움을 하고 상처만 남기는 일을 반복하곤 했습니다. 저는 늘 윽박지르는 사랑이 무서웠습니다. 마음을 꽁꽁 싸매 두는 건 쉬운 일이었기에 무서울 때마다 저는 마음을 싸들고 도망칠 준비를 했습니다. 전 애인은 집념의 인간이었기에 제가 아무리 도망을 쳐도 무섭게 따라오곤 했습니다. 술래잡기라기엔 너무 폭력적이었던 3년 남짓,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드디어 가학적인 관계로부터 벗어나서 다행이야,라고 생각하면서도 저는 사랑이 그리웠고 돌아가야 하나..?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남편으로부터 가정 폭력을 당하는 아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마음을, 저는 지난 연애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헤어질 무렵에는 수없이 반복했던 헤어짐과 만남이 더는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만큼 몸에 새겨져 아무리 외로워도 다시 돌아가는 실수를 하지는 않게 되었죠. 하지만 저는 영영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나는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걸까, 또다시 미궁 속에 내팽개쳐진 채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별생각 없이 들어간 데이팅 어플에서 누군가를 만났습니다. 그 어플을 설치하기 며칠 전 친구와 통화로 '난 진짜 안될 것 같아. 도대체 어떻게 해야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어' 라며 하소연을 했었죠. 모르는 사람이랑 밥이라도 먹어보자, 그런 마음으로 킨 어플에서 만난 누군가와 함께 저는 밥을 먹었고, 영화를 봤고,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대뜸 '우리 사귈래요'라고 말하는 상대가 저는 사실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만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아니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알고 그러는 거지, 무서웠습니다. 원래 연애가 다 이렇게 시작하는 건진 잘 모르겠지만 저는 그 상황에서 예스라고 말하고 있는 제 자신이 납득이 안됐습니다. 지금 거절하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인데 말은 벌써 입 밖으로 튀어나와 버렸고 불안이 엄습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아직 준비가 안됐다고 말하면 그 마음을 거절당할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시작한 연애에서 애인은 참 한결같은 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여전합니다. 그런데 저는 여전히 뜨거운 물에 발을 담글까 말까, 열탕에 종아리까지만 담근 기분이 듭니다. 애인이 아니었다면 분명 저는 이 사랑을 시작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힘들었던 순간들에서 제가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순전히, 한결같은 사랑으로 그 자리에 있어준 애인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삼분의 일쯤 들어온 물에서 늘 사랑을 재고 따지고 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부모님으로부터 경험했던 사랑이 그렇게 조건적인 사랑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평가하고, 비교하는 제 마음을 볼 때마다 정말 이건 내가 싫어하던 엄마나 아빠의 모습인걸, 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멈추지 못하고 결국 애인에게 상처를 주고는 비겁하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할 거야?'라는 태도로 애인을 바라봅니다.
제가 생각해도 못된 이 마음이 너무 괴롭습니다. 솔직히 여전히 전 사랑을 잘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내재된 이 냉정함을 감추기 위해 애써 사랑으로 포장해보려고 애쓰고는 있는데 제 자신이 너무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대체 사랑이 뭔지, 왜 애인은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하는 건지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모든 것이 의문 투성이입니다.
애인이 왜 자길 사랑하냐고 물었을 때 저는 '네가 날 사랑하니까'라고 답했습니다. 저는 언제든 철회될 수 있는 사랑에서 최대한 상처를 덜 받기 위해 늘 방어막을 겹겹이 두르고 있는데 애인은 항상 마음을 다 열어 제게 보여줍니다. 그것이 저는 잘 이해가 안 되고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합니다.
최근 몇 년간 제 소원은 늘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것이 소원인 걸 보면 실현이 안 되고 있다는 것의 반증이겠지요. 제가 명상을 시작하고 보낸 지난 6년이 목숨을 건지기 위해 치열하게 부딪쳤던 시간이었다면 지금은 남아있는 상처들을 하나씩 봉합해야 되는 시기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이제 죽을 것 같지는 않거든요.
이제 살만해졌다는 생각에 '난 수없이 많고 깊은 상처들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멀쩡히 잘 살아!'라는 자만심이 오히려 애인에게 가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넌 왜 빨리 괜찮아지지 않느냐며 말이죠. 그런데 최근에 오은영 박사님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공부를 하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아, 나 아직 안 괜찮구나, 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가족상담에서 '분화'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분화는 원가족으로부터 정서적 친밀감을 유지하면서도 적당한 거리를 둘 수 있는 마음의 힘을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분화가 잘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엄마와는 연락두절 상태이고 아빠 역시 정서적으로 어색합니다. 언제든 부모님이 나에게서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전제가 제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든 짐을 챙겨 도망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최대한 상처 받지 않게 제 자신을 방어하고 있습니다.
명상 수련을 하면서 저는 늘 '빨리 부모님과 정서적으로 친밀해지고 '정상 상태'를 회복해야 돼'라는 강박에 시달렸습니다. 그걸 증명해야만 내가 성장한 것이고 나아진 것일 테니까요. 더 치열하게 수련하면서 빨리, 더 빨리 괜찮아지려고 애쓰고 내가 괜찮아진 만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러면서 분명 회복하고 성장한 점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빨리 성취해야 한다는 강박 뒤에는 제가 무시하고 덮어 놓았던 상처들이 다시 제 자신을 짓누르고, 또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게 막았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나를 기다리지 못한 만큼 누군가 역시 기다리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애인 앞에서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경험하지 못했던 무조건적인 사랑, 지지, 존중, 공감 같은 것들을 퇴행적인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애인을 통해 경험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꼭 거쳐가야 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많은 부분들을 이 관계를 통해 다시 채우고 있습니다. 이런 관계가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누군가는 이러한 사랑을 상담이나 종교를 통해서 얻기도 하고 또 다른 인간관계를 통해 얻기도 하겠지요. 그렇지만 진심 어린 치유적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모두에게 허락되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언젠가 저도 애인이 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수용하는 것처럼 그를 그렇게 사랑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부모님으로부터 습득한 잣대로 여전히 제 자신에게 가혹한 만큼 애인에게도 가혹하게 대하지만 그런 저를 담아내 주는 애인을 통해 또 새로운 문을 열게 될 거라 믿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도 더 이상 짐을 싸지 않고, 부모님과도 안정적인 분화 상태를 이룰 수 있게 되겠죠?
부족한 제게 한결같은 사랑을 보내주는 애인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아 이 편지를 부칩니다. 조만간 또 '이제는 열탕에 반쯤은 들어온 것 같다'라고 이메일을 쓸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런 저의 고백이 이 글을 읽게 되는 여러분에게도 작은 희망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함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강건한 12월이 되시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사랑을 담아,
니모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