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첫 번째 편지

by 니모

안녕하세요, 니모입니다.

잘 지내셨나요? 어느새 2020년의 마지막 달이 되었네요.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얼마나 많은 임기응변을 개인에게 요구했는지를 생각하면 이런 해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참 삶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어서 내가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는 단단한 중심을 가지고 있느냐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또 새삼 느끼게 됩니다.


오늘은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적어볼까 합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일 것이라는 가정 앞에 이것이 이 메일을 읽는 여러분에게 작은 힌트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라도 트리거가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글을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아동학대와 방임의 생존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만 해도 아동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정당화되는 사회 분위기가 있기도 했죠. 전후 시대를 거쳐 경제적으로 빠르게 성장한 한국 사회의 이면에는 정서적인 공허감이 만연했던 것 같습니다. 외적으로 평가되는 기준이 시대적인 상황과 함께 아주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졌기에 모든 개인적인 자원을 보이는 것에 투자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금도 그런 풍토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지만 그때 당시에는 그나마 계층 이동이 가능했기 때문에 열을 올린 만큼 결괏값을 얻을 수 있었던 환경이 더 이성을 잃고 집중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겠지요. 당시를 지배했던 의식, 또는 감정적 수준은 자존심과 열등감, 강렬한 욕망이었다고 봅니다. 지금은 오히려 불안과 우울이 시대의 코드가 되어버렸죠. 불안과 우울은 자존심과 열등감보다 더 에너지의 수준이 낮습니다. 강한 좌절감이 지금 2-30대 코호트 집단의 자살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매우 특징적으로 보일만큼 집단의 의식 수준은 매우 위험한 상태입니다.


시대적 배경은 개인의 성격 형성에도 중요한 변인이 됩니다. 저희 부모님 역시 전후 세대의 격변을 겪었던 조부모님의 영향으로 정서적 결핍감이 심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정신분석의 대상관계 이론에서는 생애 초기 3년~6년을 개인의 심리, 정서적 발달은 물론 뇌의 발달에 가장 중대한 시기로 보고 있습니다. 특히 생후 1년~1년 반 시기에 주양육자와의 촉진적인 환경은 이후 개인이 어떠한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느냐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주양육자로부터 충분한 사랑과 공감, 반응을 얻지 못하면 타인의 감정에 무관심하고 전혀 공감이 불가능한 소위 사이코패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범죄를 정당화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생애 초기에는 이러한 결핍이 있는 경우를 꽤 자주 관찰할 수 있습니다.


제가 20년에 걸친 학대와 방임에 노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저의 생애 초기 환경이 안정적이었던 것이 큰 이유였다고 생각합니다. 태어나자마자 저는 바로 친할머니와 친할아버지 손에 약 6-10개월을 보냈습니다. 그 이후부터 양육 환경이 아주 불안했지만 다른 많은 사례들과 비교해 보아도 생애 초기 단 몇 개월의 촉진적인 환경은 뇌의 심층부인 뇌간, 맥박, 체온, 수면 같은 생명활동을 담당하는 부분이 발달하는 시기와 맞물려 있고 뇌간에 기록되는 무의식적 기억들이 전 생애에 걸쳐서 재생되며 영향을 미칩니다. 깊은 명상 수련은 뇌간의 무의식까지 깊숙이 들어가기도 하며 무의식의 정화를 일으키지만 이것은 반드시 검증된 가이드가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제가 자살을 생각했던 가장 첫 시기가 7살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통제할 수 없는 폭력적인 환경은 저를 극도로 불안하고 우울하게 만들었고 모든 자원을 동원해 매일을 살아남기 위해 애썼습니다. 죽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닙니다. 많은 자살 시도의 생존자들은 자살을 시도할 당시 살고 싶었다고 회상하기도 합니다. 저에게 삶은 오랫동안 죽지 못해 사는 것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겪은 친족 성추행의 트라우마, 그리고 나아지지 않는 환경들이 이어졌고 청소년기를 지나며 심각한 섭식장애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도 통제할 수 없는 환경에서 체중에 대한 극도의 집착을 통해 통제감을 느끼고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해가 가져다주는 강렬한 생명의 감각이 그 상황에서 제가 살아남기 위해 붙잡았던 마지막 방도였을 것입니다.


20대가 되어 간신히 정신분석을 시작했고 저는 집에서 나와 할아버지와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집이라는 공간이 있다는 것에 안도하게 되었고 기나긴 우울증과 불안장애, 섭식장애로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을 추스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저의 관절은 6-70대 할머니 수준이었고 모든 장기의 기능들이 망가져 있었습니다. 다행히 치료를 시작했고, 진학한 대학의 생활환경이 마치 집단상담과 같은 수용적이고 공감적인 환경이었기에 지난 20년의 파편화된 삶의 조각들을 찾아 떠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장기간의 정신분석 상담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정신분석이라는 기법 자체가 아주 오랜 시간을 소요하는데 제가 겪었던 20년의 세월에 비하면 3-4년은 무척 짧은 기간이기도 했지요.


25살이 되던 해 저는 우연히 미국에서 명상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한국에서도 계속해서 수련을 이어나갔습니다. 지금은 꽉 채워 수련 6년 차가 되었네요. 지난 6년 동안 부모님은 소송으로 이혼을 마무리 지으셨고 그 이후에 계속되는 감정적인 잔해들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청소년기에 우리가 묻게 되는 삶의 이유나 목적들에 대해 20대를 거치며 다시 정리하게 되었고, 어떻게 해도 주워 담을 수 없었던 자존감을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법을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배웠습니다.


생애 초기에 결핍이 더 심각했다면 어려웠겠지만 저에게는 사랑을 받았던 강렬한 무의식의 자산이 있었고 자존감을 처음부터 다시 쌓아 올리는 일이 가능했다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수많은 저항에도 불구하고 정신분석 치료를 받았던 경험은 제 자신을 통찰하는 훈련을 하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정신분석이나 다른 심리치료 기법들, 명상의 목적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결국 이 모든 방법들은 자신이 삶의 조건에 끌려다니는 객체가 아닌 주체적으로 삶을 해결하고 바라볼 수 있는 주인으로서의 개인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저의 경험상 그것의 가장 중요한 바탕은 몸입니다. 명상을 시작하고 첫 3년은 무너진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시간이었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몸에 좋은 생각들을 담아보려고 해도 마치 밑 빠진 독처럼 그것이 빠져나가는 것을 저는 경험했습니다. 이것을 깨닫는 과정도 고통스럽긴 했지만 일방적으로 당하던 폭력을 피할 수 없고 어떻게 해도 나아질 거란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삶을 견디는 것보단 훨씬, 훨씬 해볼 만한 일이었습니다.


우리 몸에서 척추가 바로 세워지는 것을 '입신'이라고 부릅니다. 입신이 되지 않으면 양명도 없지요. 사람의 의식이 떨어지면 척추도 바르게 세워지지 않습니다. 나의 걸음걸이, 자세가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에 따라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저는 걷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몸이 망가져 있었기에 간단한 체조, 호흡, 산책으로 시작해서 요가, 필라테스, 수영을 했고 요즘은 주로 등산과 근력운동을 합니다. 몸은 끊임없이 정화와 순환을 필요로 하죠. 매일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것이 마음의 전환에도 필수적인 일입니다.


다음은 마음입니다. 마음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내가 습득하는 정보들입니다. 내가 나에게 어떤 정보를 주고 있느냐, 계속해서 피해의식과 과거에 대한 집착, 혹은 미래에 대한 걱정에 매여 괴로워하고 있느냐를 잘 보셔야 합니다. 누구도 탓할 수 없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저에게 두 번째 3년은 명상 수련을 하며 계속해서 스스로 에너지를 채우는 것을 익히고 제 자신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러한 과정을 원한다면 분명 도와줄 누군가가 나타나거나, 혹은 여러분이 도움을 청하게 될 누군가를 곁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은 내 마음의 선택에서 비롯하니까요.


저 역시 회복과 성장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없었다면 치료도 수련도 시작하지도, 또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나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구하면 반드시 문이 열립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는 여러분이 객체로서의 삶을 멈추고 스스로 기쁨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저의 외상 후 성장 경험은 제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제 자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뛰어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제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요. 삶은 예측이 불가능하고 어떤 어려움을 마주하게 될지 전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명백한 것은, 내가 마주하게 되는 어떤 문제에서라도 정직하고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대응을 멈추지 않는다면 이것이 반드시 나의 자산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당장 눈 앞에서 문제가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더라도 언젠가 다시 같은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면 그것은 내가 정확하게 풀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삶의 표현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기꺼이 받아들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지난번 메일에서와 같이, 이 모든 것이 그저 나의 성장과 완성을 위한 매트릭스라는 것을 알면 지금 이 순간을 피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쁨을 찾으려고 노력하게 되겠지요. 제가 어떻게 그 모든 상처들을 딛고 일어섰느냐고 물으신다면 그것은 저의 선택이었고, 선택에 따라 일어난 상황을 피하지 않았고, 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여러분 역시 스스로를 끝까지 지키고 사랑하겠다는 다짐과 약속을 통해 삶을 새롭게 마주하게 되시기를.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마음은 늘 빛보다 빠르니까요. 우리의 존재가 개인의 성장을 넘어 서로의 희망이 될 수 있기를 언제나 간절하게 바랍니다. 앞으로 함께 열게 될 새로운 해와 또 새로운 3년이 저는 무척 기대됩니다.


아름다운 12월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니모 드림.


매거진의 이전글11월의 첫 번째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