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VING, 해빙, 데이비드 호킨스.
아마 이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1월의 22일이네요.
각 시대마다 그 시대를 관통하는 의식의 코드가 있습니다. 그것을 의식 수준이라고도 부릅니다. 인간에게는 동물적인 본능(수성)과 더불어 신성한 성품(신성)이 있어 어떤 의식을 쓰느냐에 따라 수성을 십분 발휘할 수도, 신성을 십분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어떤 의식을 쓰느냐에 따라 그 시대의 주요 코드가 만들어집니다. 제게 명상 수업을 들었던 분들이라면 의식의 도표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정신의학자이자 의식 연구가이기도 했던 데이비드 호킨스가 만든 의식의 도표에서 인간 의식의 밝기는 '룩스'라는 빛의 밝기로 표기됩니다. 20룩스의 수치심부터, 700-1000룩스의 순수의식까지 이렇게 인간의 의식은 아주 넓은 스펙트럼으로 움직입니다. 그 가운데 200룩스의 용기는 인간이 스스로를 고갈시키는 의식(Force)과 자신을 스스로 채우고 다른 사람에게까지 에너지를 주는 의식(Power) 변화의 기준점으로 표현됩니다.
용기 이하의 의식에서 인간은 스스로의 에너지를 계속해서 소진시킬 뿐만 아니라 에너지의 소진으로 인해 다른 사람의 에너지를 뺏어오게 됩니다. 쟁취의 방식은 학대, 비난, 폭력, 약하게 보이기, 구걸하기 등 매우 다양하며 이것을 에너지 쟁탈전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시대는 수치심에서 에너지 쟁탈전을 이어가기도 했고, 때로는 자존심과 분노의 수준에서 에너지 쟁탈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용기 이하의 의식 수준을 살펴보면(()는 룩스) 수치심(20)부터 시작해, 죄의식(30), 무기력(50), 슬픔(75), 두려움(100), 욕망(125), 분노(150), 자존심(175)의 순서로 이어집니다. 수치심(20)과 죄의식(30)의 룩스 차이는 고작 10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것은 10을 20번 곱한 것과 30번 곱한 것의 차이입니다. 의식 수준이 올라갈수록 에너지 크기의 차이는 굉장해집니다. 일례로 300룩스의 개인은 200룩스 이하의 9만 명을 상쇄하는 의식의 크기를 가집니다.
90년대에 이르러 인간의 의식이 200룩스를 비로소 넘어섰다고 데이비드 호킨스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역사 이전의 시대에서는 다른 모습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무한대의 모양처럼 지구 상의 시대의 흐름도 상승하는 의식과 하강하는 의식을 반복한다고 하지요. 물론 그것은 지금 우리의 생명으로는 짐작하기 어려운 시간일 겁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이 인간 의식이 상승 곡선을 따라 진화하고 있는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200룩스 아래에서 에너지 쟁탈전을 벌이고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임계질량을 채우는 것입니다. 호킨스 박사가 말했던 인간 의식의 평균도 일정 숫자 이상의 사람들이 가지는 에너지의 수준에 의해 만들어진 수치입니다. 임계질량이 채워지면 전체의 평균이 올라가고 그럴수록 변화의 속도가 가속화됩니다. 동반성장이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나 자신이 어느 의식의 밝기를 쓰고 있는지를 반드시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상적으로는 낮은 의식을 쓸수록 내 앞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되고 비슷한 문제들이 다른 사람들을 통해, 다른 경험들을 통해 반복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에서 도피했다고 해도 내가 의식을 높여 해결하지 않는 이상은 그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한 것입니다. 만약 지금 여러분이 겪고 있는 현실에서 같은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다면 지금이 바로 의식 수준을 점검하고 더 높은 의식을 써야 할 때입니다.
의식을 높게 쓰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환경을 탓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자라왔기 때문에 나는 이러한 의식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 마음은 사실 이것이 선택이라는 것을 몰랐을 때만 저지를 수 있는 치명적인 실수입니다. 하지만 의식을 사용하는 주권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더 이상 이것을 회피할 수 없습니다. 회피하는 것은 자학하는 것과 같은 행동이기 때문이며 자학은 타인을 학대하는 것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용기(200), 중용(250), 자발성(310), 포용(350), 이성(400), 사랑(500), 기쁨(540), 평화(600), 깨달음(700-1000) 중 여러분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정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인간은 몸에서 발생하는 에고(여기서 에고는 프로이트가 말한 에고와는 다릅니다. 관찰자이자 완전한 선택권을 가진 자아(진아true self) 이외의 가아(false self)를 통칭합니다)가 필연적으로 있기 때문에 200룩스 이하의 수성으로 내려갈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용기 이상을 선택하고 나면 반드시 다시 내가 목표한 지점에 근접한 곳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무엇을 바라보고 지금을 살아낼 것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슬픔, 죄의식, 두려움, 분노와 자존심에서는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과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아주 다른 이야기입니다. 만약 인생을 밑바닥부터 뒤집어엎어 바꾸고 싶다면 용기 이상의 룩스를 선택해 주십시오. 그때부터 삶의 매트릭스가 완전히 새롭게 바뀌는 것을 목격하게 되실 겁니다.
더 이상 같은 고통에 머물지 않고 시대적 천운을 잡아 무한히 도약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을 담아,
니모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