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스와 타나토스
'집중적인 심리치료는 여러 가지 면에서 부모 역할을 대신하는 과정이다. 심리 치료사가 환자에게 갖는 사랑의 느낌은 좋은 부모가 아이에게 갖는 사랑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치료를 성공적으로 이끌려면 환자를 사랑하는 것이 필수다. 치료가 성공하려면 치료사와 환자의 관계는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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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치료사가 환자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면 진정한 치료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화려한 경력을 갖춘 숙련된 치료사일지라도 환자에 대한 사랑을 통해 자신을 확장하지 못하면 어떠한 치료도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화려한 경력도 없고 훈련도 충분히 못 받은 평범한 치료사일지라도 사랑의 큰 능력을 발위한다면 최고의 정신과 의사들과 맞먹는 큰 성과를 거둘 것이다.
심리 치료가 진정한 사랑의 과정이어야만 한다는 개념은 전통적인 정신 의학계에서는 다소 이단으로 취급된다. 그렇다면 동전의 이면이라고 할 수 있는 다음의 견해, 즉 심리 치료가 진정하게 사랑하는 것이라면 사랑은 항상 심리 치료처럼 해야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이단이다. 배우자를 순수하게 사랑하고, 부모, 아이, 친구를 진정 사랑한다면, 또, 그들의 영적 성장을 지지하기 위해 우리 자신을 확장시킨다면 우리가 그들에게 심리 치료를 하고 있다는 말인가? 내 내답은 "그렇다"이다.
부릴 수 있는 모든 재주를 총동원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아는 것을 가르쳐주고, 내 힘이 닿는 한 정신적인 성장의 여정에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그것을 잡지 않는다면 어떻게 좋은 친구, 좋은 부모, 좋은 배우자, 좋은 자녀가 될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이 영적 성장의 여정에 있다면 그 사람의 사랑할 능력은 점점 자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제한되어 있으므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심리 치료를 감행해서는 안 된다. 사랑이 없는 심리 치료는 실패하기 쉽고 해롭기까지 하다.
때로 환자들이 언제 치료가 종결될 것인지를 물으면 나는 "당신 자신이 좋은 치료사가 될 수 있을 때"라고 대답한다.'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할 길> 중에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확장과
문제가 아닌 생명의 본질에 집중하는 것.
초월영성상담이라는 것의 목표는 그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