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모 Mar 28. 2022

니모의 상담 일기

가족 문제의 세대 전수 

주말에 엄마를 만났다. 

지난 설에 갑자기 엄마의 초대를 받았었다. 

이혼 후 3년 동안 나와 연락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엄마. 

동생이 우울증으로 많이 아프고 나서 내게 연락을 했고 또 한 1~2년 못 보다가 다시 만났네. 


엄마는 나에 대한 의무감, 사명감 때문에 만나자고 했다는 말을 했다. 

내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게 해야 한다며. 

엄마, 나는 잘 살고 있어요.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사실 나는 엄마와 떨어지면서부터 내 삶을 찾기 시작했어요. 


엄만 이혼이 내 탓이라고 했다. 

아빠와 싸우는 것도, 집안에 불화가 생기는 것도 다 나 때문이라고.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린 나는 그냥 흡수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 모든 문제가 나 때문이라고 하니,

나는 정말로 그런 줄만 알았다. 

내가 그런 나쁜 아이라고 생각했었다. 


엄만 지금도 내가 엄마 아빠의 잘못은 비난하면서 

내 잘못은 보지 않는다고 한다. 

엄마, 나한테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건가요. 


나는 이제 엄마 아빠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우리 이제 과거는 정리하기로 했잖아. 

미래에 대한 희망만 보기로 했잖아. 


엄마가 나에게 사과를 하든 안 하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란 걸 알고 난 뒤부터는 

그냥 지금만 생각하기로 했다. 


엄마가 듣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 말이 엄마를 녹일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뭘 사과해야 하는지를 몰라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끄집어내서 사과도 해봤는데. 

아직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 


엄마 사실, 그 상처는 말이에요 

내 사과로 풀릴 수 있는 건 아니고, 

엄마가 엄마 자신을 용서해야만 해요. 


나는 이미 예전에 엄마를 용서했어. 


물론 지금도 엄마를 만나려고 하면 너무너무 긴장되고,

약속 1~2주 전부터 배도 계속 아프고, 

온갖 불안한 생각들이 나를 괴롭히지만요. 


그래도 나는 엄마를 사랑해. 


너무 예쁘고 멋진 사람이잖아요 엄마. 

엄만 나에게 항상 그런 사람이었어. 


아무리 나를 아프게 해도 

내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엄마를 동경하고 있었어요. 


사랑하는 엄마, 

사과를 듣고 싶다면 사과를 할게요. 


그렇지만 이제 나를 그만 괴롭혀요. 

나는 엄마를 괴롭히기 위해 살아있는 사람도 아니고, 

엄마에게 괴롭힘 당하기 위해 사는 사람도 아니야. 


엄마가 지금 동생이랑 행복하게 지내는 것처럼 

나도 아빠랑, 새엄마랑, 새로운 동생이랑 잘 지내고 있고 

이 모든 사람들이 내겐 너무 귀해요. 


나를 낳아줘서 고마워. 

그리고 키워준 것도. 


나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준 사람이 엄마였지만 

그래서 나는 점점 커지고 있어.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그럴 거예요. 

회피도, 부정도, 비난도 아닌 

직면과 사랑과 용기 앞에 

나는 언제나 진심을 다해 무릎 꿇고 기도할 거예요. 


나는 엄마를 정말로 사랑해. 


그리고 우리가 정말로 행복해지길 바라요. 


나의 마음이 엄마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 

당신의 분노가 녹아내리기를 바라. 

나는 딸이지만 

당신과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존재이기도 하니까. 


나를 존중해줘요. 

엄마가 존중받고 싶어 하는 그 마음만큼, 

나를 존중해주세요. 


당신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싶어요.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보이지 않는 수많은 힘들이 돕고 있음을, 

믿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정말로 

엄마 아빠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음을 인정하고 

편안한 관계가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할게요. 



매거진의 이전글 니모의 상담 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