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우리는,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호주-타즈마니아

by ClaraSue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고 하지만,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금 나는, 외따로 떨어진 남반구의 오세아니아 대륙에서, 그곳에서도 외따로 떨어진 호주 남쪽 구석진 섬, 타즈마니아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 호스텔 방 싱글 침대에 누워서 아침 빗소리를 듣고 있다. 오늘따라 처량하게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네. 에잇. 비가 처량하게 내리는 게 아니라 내가 내 신세를 처량하게 느끼는 거지.


처량한 나를 다독일 겸 침대에서 기어 나와 커피를 한잔 내린다. 배낭 무게를 줄이려고 짐을 잔뜩 버렸는데, 그 와중에도 끝까지 삶의 질을 위해서라며 가지고 있던 나의 에스프레소 커피포트. 쌀쌀한 아침 공기 속으로 흩어지는 커피 향을 맡으며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에 빗줄기가 떨어지는 구경을 하고 있노라니, 갑자기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고 우습게 느껴져서 혼자 깔깔 웃어버렸다.





내 멋대로 살아보겠다고 부모 곁을 뛰쳐나온 지 어언 9년째. 누가 어떻게 살라는 조언도 다 무시하고 내가 알아서 할 거라고 큰소리 땅땅 치고 패기 있게 나왔는데, 그렇게 여기저기 활개 치고 다니다 문득 멈춰 서 보니, 나는 집도 절도 돈도 가족도 직업도 차도 뭣도 없이, 가진 거라곤 내 몸뚱이와 배낭 하나만 덜렁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타즈마니아에 내려온 지금만 해도 그렇다.

랜세스턴 호스텔 방에 저녁 8시에 도착해 이불을 덮고 처음으로 느낀 건, 너무나 춥다는 거였다. 당연하게도 도착하자마자 호되게 감기에 걸렸다. 평균 기온 40도인 열대지방에서 갑자기 20도로 넘어왔으니 감기에 걸릴 수밖에. 타즈마니아에 도착할 때 얼마나 대책이 없었냐 하면 한여름 옷을 제외하고 가진 옷이라곤 청바지, 셔츠 한방, 가을 잠바 덜렁 하나뿐이었다. 20도니까 살 만할 줄 알았는데,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인지 20도가 춥더라.

여행자 보험도 안 들고 버티는 중이라 병원도 못 가서,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은 있는 대로 옷을 껴입고 따뜻한 물을 마시면서 더 아프지 않기만 바라는 거였다. 다음날 겨울용 옷을 몇 벌 사고, 호스텔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차를 사고, 일자리를 구하면서 , 나의 타즈마니아 생활의 첫 주는 지나갔다. 일주일 후, 내가 일할 와이너리가 정해지고, 일할 농장과 가까운 곳으로 내 차를 직접 몰아 브리드포트 해변 셰어하우스로 거처를 옮겼을 때는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아무것도 없이 무작정 낯선 곳에 와서, 일주일 만에 친구들도, 차도, 집도, 잡도 구했다고! 나는 얼마나 운이 좋은 거야? 일이 이렇게 술술 풀리다니!!!!!


shooningg4_56398516_131234854668677_1525478470215018539_n.jpg 이렇게 아름다운 포도밭의 풍경 속에서




와이너리-양조장이 딸린 포도밭에서 포도 수확자로 일한다는 것은 내가 와인 바에서 와인을 고급스럽게 홀짝이면서 상상했던 것만큼 낭만적이지 않았다. 그래도 끝도 없이 펼쳐진 푸른 포도 밭은 아름답고, 주렁주렁 달린 포도들은 과일과 야채를 마트에서 밖에 본 적이 없는 나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다. 혹시 여기서 열심히 하면 와이너리 업무로 넘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물론 턱도 없는 기대였다는 걸 점점 알게 되었지만.


내가 구한 포도 수확 일자리는 일주일에 30시간을 간신히 일할만큼 워킹 아워가 많지 않았고, 그만큼 수입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거기다 일을 시작한 지 2주 만에 포도 수확이 끝나간다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팀 분위기도 별로 좋지 않았는데, 매니저가 시즈널 노동자들을 무시하고 툭하면 잘라버린다고 협박하고, 거의 노예 부리듯 대했다. 며칠만에 유럽 친구들은 다 관두고,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아시아계 친구들만 남아서 말 그대로 외국인 노동자처럼 일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 매니저는 (자기도 아시아계면서!) 영어 못하는 사람들을 더 무시했다. 정말 갖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사람이라는 동물은 완장을 차면 이렇게 변하는 건가,하는 생각 혹은 일제시대때 일본인이 아니라 일본인 앞잡이가 더 사람들을 못살게 굴었다더니 딱 그거네, 하는 생각.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보니 나는 운 좋게도 지금까지 이렇게 인권을 무시당하면서 일해본 적이 없다. 이걸 어디 신고하거나 파업을 하려고 해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고분고분(?) 일하고 있는 중국/대만/일본 친구들을 보면서, 상황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참 쉬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하게 되었다.


같이 일하던 벨기에와 독일 친구가 왠만하면 관두라고 했는데 계속 버틴 내가 잘못이다. 일이 있고, 차를 얻어 타고 같이 다닐 사람들이 있으니까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자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빨리 대강 90일을 채우고 싶기도 했고) 그런데 2주 반 만에 그 미친 매니저가 포도를 열심히 따는 나에게 니 포도 질 떨어진다며 당장 가방 싸서 집으로 가라고 했다. 난생 처음 나는 그렇게 현장에서 잘려봤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미 그 매니저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어서 다행히 내가 잘못해서 잘렸다는 자책감 따위도 들지 않았고, 이미 이 일을 오래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아쉽지도 않았다.


거기다 타즈매니아로 넘어와 큰 맘먹고 샀던 내 중고차는 갑자기 트랜스미션 기어가 나갔다.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진 내 돈 그와 동시에 내가 이사 온 시골 마을 해변가 호스텔이 거의 감옥으로 변해버렸다. 너무 시골이라 대중교통 수단 자체가 없어 차가 없으면 어디도 갈 수가 없다. 심지어 슈퍼조차 차 타고 20분 가야 하는 다른 마을에 있다. 다행히 호스텔에 같이 머무르는 사람들에게 필요할 때는 부탁할 수 있지만, 나 혼자서 독립적으로 행동하던 자유로운 생활에서 갑자기 모든 이동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shooningg4_54247237_807006873015655_8842742705329460287_n.jpg 속도 모르고 아름다운 브리드포트의 노을



열심히 살아 보겠다고, 뭔가를 해보겠다고 타즈매니아에 내려와서 낑낑꽁꽁 댔는데 다시 차도 없고, 일도 없고, 돈도 그대로(2주 반동안 번 돈은 전부 차 값, 옷 값, 핸드폰 고치는 값, 생활비로 다 쓰였다.), 앞으로 어디 가서 뭐할지도 모르는 것도 여전하다.

내 머릿속에서는 매일매일 꼬박꼬박 8시간씩 일해서 세컨드 비자를 받기 위해 일해야 하는 88일도 금세 채우고, 돈도 모을 계획, 주말에는 친구들과 차 몰고 캠핑 다니며 타즈매니아를 탐험할 계획, 그리고 탐험이 끝나면 차를 샀던 가격에 되팔고 갈 계획까지 다 짜여 있었고 그만큼 마음이 부풀어 있었다. 이렇게 차도 고장 나고, 일도 끝나버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내가 준비하고 있었던 모든 플랜이 나의 하찮은 기대와 환상에 불과했는 사실을, 현실에게 명치를 한방 맞고 나서야 깨달았다.

공식적으로, 빼도 박도 못하게 29살이 된 내가 지금 가진 거라곤 여전히 내 한 몸과 배낭 하나뿐이다.


하지만 나는 정말 가진 게 그것밖에 없는 걸까?





포도 농장에서 집에 가라는 소리를 듣고 에라 됐다 나도 드러워서 일 안 하고 집에 갈란다, 하고 바켓 때려치우고 쿨하게 자동차를 주차해 둔 곳으로 나왔는데, 나 혼자 타고 온 차가 아니라서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일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됐다.

한 시간 동안 포도밭 잔디에 하릴없이 누워서 하얀 구름이 떠가는 푸른 하늘을 구경하다가, 나랑 같이 잘린 애랑 수다 떨다가, 포도밭에서 일한 기념사진도 찍고 포도도 따먹고 놀았다. 뭐 어쩌겠어 이미 잘린 마당에 포도나 먹고 놀아야지.

그렇게 찍은 포도밭 사진을 인스타에 올렸더니, 이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다는 댓글들이 달렸다.

잘리고 나서 내 생애 최악의 상황에 찍은 사진인데. 내가 봐도 내가 참 행복해 보인다.

그렇다. 돈도 없고 차도 없어도, 나는 이렇게나 행복한 표정을 가지게 되었다.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은, 어떤 상황이라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 장애물 따위는 웃어넘길 수 있는 배포와 유머, 나 자신에 대한 믿음, 그리고 강력한 긍정적인 마인드에서 온다. 물론 아직도 수도 없이 흔들리고, 좌절하고, 포기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고개를 들고 배낭을 메고 씩씩하게 나아갈 것이다. 내가 그렇게 바라던 내 삶을 사는 중이니까.



객관적인 조건에서 처음 모험을 시작할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별 차이가 없다. 시작했을 때에 비해 더 없어졌으면 없어졌지 돈을 더 모았거나, 더 나은 직업을 가지게 되었거나, 평생을 함께할 짝을 만난 것도 아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오히려 뒷걸음치는 걸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미 예전의 내가 쭈그리고 있던 곳에서부터 멀리멀리 걸어 나왔음을 알고 있다. 그때의 나를 돌아보고 안아줄 수 있을 만큼.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맞이하는 나의 이십 대의 마지막.

아무것도 없는 그곳이 바로 무엇인가가 생기는 곳이 되기도 한다는 걸 믿는다.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어찌어찌 운 좋게도 나는 포도 농장에서 베리 농장으로 옮기게 되었다.

참 다이내믹한 나의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