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 타즈매니아
나의 두번째 ‘농업’ 일자리는 베리 농장이었다.
베리도 여러 종류가 있다. 스트로베리(딸기), 블랙베리, 블루베리, 라즈베리….
나는 하필이면 수확시기가 끝나갈 때 타즈매니아로 들어왔다. 다른 여행자들은 하나 둘 타즈매니아를 떠나는 이 때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들어온 나도 참 대책이 없다. 사실 퀸즐랜드에서 더위에 지쳐서, 뉴질랜드 남섬과 비슷하다는 타즈매니아로 여행을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여행을 했었어야지, 이 곳은 여행하기에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지만 살기에는 무척이나 외진 곳이다.
남들은 일부러 불법적인 루트로 넘어가기도 한다는 세컨비자 88일을 나는 새로운 경험을 해본다는 호기심과 두근거림으로 여기 농장에서 일하기로 했다. 참으로 도시사람스러운 생각이었다.
어렸을 적 패리스 힐튼과 니콜 리치가 나오는, 부자 상속녀들이 시골에 가서 일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 첫 날 베리 농장에 출근한 내가 딱 그 느낌이랄까. (물론 나는 패리스힐튼 같은 상속녀가 아니다....) 일이라고는 어떻게 하는 건지, 딱 봐도 전혀 몰라 보이는 도시여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고 있는 폼이라니.
베리 농장은 포도밭과 차원이 달랐다. 포도를 따는 건 쉬운 편이었다. 그냥 바켓을 들고 이동하면서 가위로 포도송이를 따면 되는거니까. 첫 날 내가 배정된 곳은 딸기밭이었는데, 긴 레인을 쭉 따라가면서 딸기를 따면 된다. 그 딸기밭은 내가 한국에서 본 것처럼 땅에서 재배하는 것이 아니라 테이블같은 화분에서 재배하고 있어서 허리를 숙이지 않아도 된다. 카트같이 생긴 걸 밀고 가는데, 베리는 쉽게 무르기 때문에 바로바로 따면서 동시에 카트 위에 있는 소분 포장 용기에 담고, 이동식 작은 저울에 무게를 재서, 용기 하나에 걸맞는 무게로 딸기를 채우면 그걸 돈으로 바꿔주는 방식이었다. 수확기가 끝나가기에 농장들은 시급으로 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수확량 만큼 돈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계약을 요구했다. 나는 뭣도 모르고 내가 열심히 일하면 돈을 벌겠지, 하고 덥석 그렇게 일하기로 동의해 버린 것이다.
점심도 대강 싸간 식빵 쪼가리를 먹으면서 8시간 넘게 일한 끝에 내가 1일차 번 돈은 그야말로 눈물겨운 몇만원이었다.
변명을 해 보자면, 먼저 카트 자체가 무거워서 그걸 밀고 가는게 쉽지 않았고, 어렸을 때 딸기 체험 비닐하우스에 가본 이후로 난생 처음 딸기를 따 보기에 딸기가 쉽게 똑똑 따지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억지로 잡아 뜯어서 줄기가 꼭지에 붙어 있으면 판매 불가한 퀄리티가 된다. 거기다 너무 익은 과실을 따면 물러버리기 때문에 70-80%정도 덜 익은 것을 따야 한다. 너무 익어서도, 너무 덜 익어서도 안되는 딱 수확할 수 있는 품질의 딸기를 구분하는 것 조차 감이 오지 않았다. 대강 따서 박스에 넣어서 가져가면 매니저가 ‘품질 관리’를 한답시고 투명한 플라스틱 박스를 요리조리 살펴보며 상품성 떨어지는 게 들어있다고 바로 ‘빠꾸’를 시켜버리는 것이다. 그 말은 따고도 돈을 못 받는다는 것.
최대한 많이 따서 박스를 많이 만들어야 돈을 많이 벌텐데, 돈은 커녕, 현실은 진흙탕 속의 카트와의 싸움, 줄기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딸기와의 싸움, 물러지는 딸기를 골라내고 포장하느라 진을 빼고, 마지막으로 느려터진 나에게 더이상 순서가 돌아오지 않아, 남는 딸기밭을 찾아 헤매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착한 매니저 한 명이 첫 날이라 당연히 그렇고, 다른 사람들은 이미 여기서 일한지 몇 달 째라며 앞으로 나아질거라고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나는 삼일 정도 일한 후 도저히 딸기 밭에서는 진전이 없을 것 같아 다른 베리 밭으로 옮겨달라고 요청했다.
딸기 밭의 주요 일꾼들은 다른 밭보다 남태평양의 섬에서 단체로 고용되어 온 seasonal worker(수확기에만 부족한 일손을 확보하기 위해 고용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정말 숙달된 노동자들이었고, 엄청나게 큰 손으로, 한번에 양손에 딸기를 6개, 8개씩 땄다. 그들이 딸기를 수확함과 동시에 빠른 속도로 카트를 밀면서 상자를 쌓아가는 속도를 보고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차원이 다른 빠름이랄까. 다같이 함께 노동요를 부르면서 신나게 일하는데 아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 낑낑대며 카트를 미는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내가 혼자 있으니까 챙겨주기도 하고 말도 걸어줬는데, 다른 베리에 비해서 현재 딸기가 돈을 더 많이 받기 때문에 딸기밭에 있다고 했다. 베리도 시즌별로 값어치가 달라지고, 그래서 받는 돈이 달라진다. 지난달까지는 블루베리가 비쌌고, 지금은 딸기가 끝물이라 수확량이 적어져서 비싸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동남아노동자들이 들어오듯이 호주나 뉴질랜드에서는 남태평양에서 저렴한 노동력을 공급받는다는 것을 알았다. 통가 아주머니들이 딸기밭 옆에 자란 무슨 풀을 뜯어 가길래 뭐냐고 물어봤더니 이걸로 수프를 끓어먹을 수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쑥 같은 걸 캐서 국을 끓여 먹듯이, 다른 문화에서도 비슷한 요리들이 있구나.
두번째 배정된 밭은 라즈베리였다. 딸기 다음으로 돈을 많이 쳐 주는게 라즈베리라길래, 거기로 가겠다고 했다. 그래봤자 나의 숙련도로는 한국 최저시급이나 받으면 감지덕지라는 것을 이미 어느 정도 깨닫긴 했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나의 욕심과 기대였다.
라즈베리도 딸기와 마찬가지로 덜 익은 걸 따야 하고, 카트에 상자와 저울을 싣고 다니며 바로바로 포장해야 하는 건 같다. 하지만 딸기보다 크기가 작기에 상대적으로 카트가 가볍고, 따기도 쉽다. 딸기와 달리 작은 통 몇개를 허리춤에 차고 다니면서 베리를 따 담고, 그걸 카트로 가져와 상자에 담는다. 문제는 욕심껏 담으면 통 안에서 베리들이 다 짓눌려 버려서 포장을 못할 상태가 되기에 어느 정도만 모은 후 포장하는데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예쁜 것만 골라서 용기에 넣는데 시간이 다 지나간다. 지금 수확하기도 바쁜데 이렇게 시간을 다 보내고 있다니 참으로 답답해서 팔짝 뛸 지경이다. 레인 하나씩 배정받아서 수확을 시작하는데, 배정받은 레인을 다 끝내면 새로운 레인을 배정받을 수 있다. 딸기밭에서 남는 레인이 없어 손가락만 빨고 있었듯, 여기서도 빨리 끝내고 새 레인을 받지 않으면 결국 남들은 5개 레인 할 때 나는 3개밖에 못하게 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과 경쟁을 하게 되는데, 레인 하나를 꼼꼼히 따서 상자를 많이 만드는 것이 나은지, 레인을 대강 훑고 여러 개를 하는 것이 나은지 계산을 튕겨 보았다. 나의 첫번째 전략은, 안 그래도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손이 느리니 꼼꼼히 하는것이 낫다, 였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대로 라즈베리를 열심히 땄다. 이 전략은 실패였다. 꼼꼼히 딴다 해도 50% 이상은 너무 익었거나 덜 익어서 상품성이 없었다. 그렇게 빠꾸받은 라즈베리들을 보며 좌절하고, 두번째 전략인 대강 빨리 따고 레인을 많이 배정받자, 로 변경했다.
그런데 아무리 내가 대강 빨리 따도, 이미 라즈베리 수확의 고인물이 되어버린 다른 사람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나보다 더 빨리, 거의 대강 훓고 지나간듯 했는데 박스가 더 많이 나올 수가 있는가? 어떤 스킬이 있는지 다른 사람들을 엿보고 관찰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며칠만에 나는 세번째 전략으로 넘어갔다.
새로 세운 전략은 돈을 많이 못 번다면 배 터지게 먹기라도 하자! 라는 것이었다. 더 이상 돈과 베리에 대해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마음을 비우고 귀에 이어폰을 꽃고 음악이나 흥얼거리면서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한다. 상쾌하고 차가운 새벽 공기를 느끼며, 나에게 지옥이 되는 타인과 부딪힐 일도 없이, 아침부터 오후까지 생각없이 땀 흘리며 단순한 일에 집중한다. 그 와중에 새빨갛고 말랑하게 잘 익은 싱싱한 라즈베리를, 갓 따서 먹는 그 달콤한 맛이란 차마 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 내 생에 먹어본 라즈베리 중에 제일 맛있었다. 그럴 수밖에. 대부분 냉동 라즈베리밖에 먹어본 적이 없으니. 이후에도 그 때의 그 맛을 상상하며 마트에서 라즈베리를 비싸게 주고 산 적이 몇 번 있는데 그런 맛은 두 번 다시 맛 볼 수 없었다.
어차피 라즈베리 밭에서 100% 익은 라즈베리들은 유통 중 상해버리기 때문에 포장이 불가해서, 일부러 바닥에 다 떨어뜨리고(나무에서 썩어가게 두면 안되니까) 버린다. 너무 완벽한 과일들이 그렇게 버려지는게 정말 아깝고, 그리고 침이 넘어갈 정도로 탐스러워 보이기에 한 두 개씩 먹다보니, 그래, 차라리 먹는걸로 뽕을 뽑는 것이 낫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장하면서 무른 라즈베리를 골라내서 입으로 쏙 집어넣기만 해도, 평생 먹을 라즈베리를 다 먹은 것 같다. 아침도 시리얼 겨우 한 그릇 먹고 일하는데 왜 배가 안 고프지, 생각했다가 베리로 배를 채워서 그렇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작은 베리가 배가 찰까 생각했었는데, 지금까지는 너무 비싸서 한번도 마음껏 먹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베리를 배부르게 먹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같은 호스텔에 사는 친구들이 블랙베리, 블루베리 농장에서 일해서 덩달아 그들이 가져온 블랙베리, 블루베리까지 마음껏 먹었다.
쉬는 날마다 타즈매니아 여행도 하고, 타즈매니아 산 와인도 마음껏 마시고, 그리고 나는 호주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농장에서 세컨드 비자 일수를 채우기도 전에.
비자를 연장해 퀸즐랜드로 돌아가 다시 보트에서 일하거나 다이빙 강사 자격증을 딴다 해도, 나는 아직까지 호주에서 행복하게 사는 내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럼 어디로 가야할까. 중국, 뉴질랜드, 호주에 이어 캐나다로 이동하려고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까지 받았는데 이제는 새로운 시작도 질렸다. 완전히 새로운 곳에 가서 좌충우돌하면서 새로운 일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거의 매년마다 반복되니 지친다. 아무래도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정착와 안정을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다. 아니면 나이 때문인가. 결국 나는 짐을 싸서 4년만에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따지고 보면 타즈매니아에서 공식적으로 일 한 날 수는 세 달도 채 안된다.
그렇게 말하니 참 짧은데 왜 그 당시에는 끝이 없는 터널처럼 길게만 느껴졌을까. 내가 농장일을 했다고 했을 때,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뭐하러 그런 일을 했냐고 혀를 차기도 하고, 시간 낭비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경험 자체가 나의 시야와 삶의 지평을 한단계 넓혀준 귀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도시의 사무직으로서 공급사슬에서 생산자와의 반대편에 위치해 있었다.
과일을 싣고 오라고 트럭을 배차하고, 왜 시간 맞춰서 출발 못하냐는 것만 생각했지,
오후 6시 트럭에 ‘완벽히 포장된’ 과일을 싣기 위해 새벽 6시부터 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내가 그 사람이 되어보고 나서야 기계처럼 정확한 시간에 출발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구매팀의 입장에서 ‘이렇게 품질 떨어지는 상품은 소비자들이 구매 안 하니까 올해까지만 바잉하고 다음번에 공급처 바꿀게요,’ 라고 이성적인 비즈니스 판단을 내리는 것만 생각했다. 실제로 ‘상품성 뛰어난’ 농산물을 위해 분류와 포장에 얼마나 많은 노고와 시간이 들어가는지, 얼마나 많은 것들이 버려지는지 몰랐다.
내가 1차 생산자 아니 공급 사슬의 제일 바닥(?)인 1차 생산자에게 고용된 노동자가 되어본 후에야, 지금껏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보인다.
특히 마트에 가서.
베리 농장에서 일한 이후로 플라스틱 투명 용기에 담겨져 있는 과일들을 볼 때마다 경건한 마음이 든다.
내가 직접 샌드위치를 만들어 팔기 전까지는 포장된 샌드위치를 볼 때마다 공장에서 기계가 만들었겠거니 생각했던 것처럼, 농장에서 일하기 전까지는 마트에서 포장된 과일을 볼 때마다 기계가 따서 알아서 분류해 넣었겠거니 막연하게 생각했다. 아니, 제대로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그 때까지는.
아무리 공장화, 기계화, 자동화가 이루어진다 해도 세상에는 여전히 사람 손으로 이루어 지는 일들이 있었다.
누군가가 이 과일이 덜 익었을 때, 직접 따서, 못난 것을 골라내고, 무게에 맞춰 용기에 넣고, 뚜껑을 꼭 닫아 스티커를 붙이고, 그러한 노동을 제공해야만이 트럭에서, 이후에 창고에서 과일이 익어서, 이렇게 ‘완벽한’ 모습으로 진열대에 올라올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날씨에 영향을 받는 일용직 노동자의 삶, 불안정하고 불공정한 계약에 일희일비 하는 삶, 계약직 노동자로서 은근히 무시 당하는 삶, 낯선 타지, 할 것도 없는 시골에서 외롭게 지내는 삶에 대하여 나는 배웠다. 나를 겸손하고, 소박하고, 감사할 줄 알게 만든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제 나는 다시 도시로 돌아왔고, 나에게 각종 베리들은 가격 대비 사악한 용량에 선뜻 구매할 수 없는 과일이 되어 버렸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혼자 머리 복잡하지 않게 할 수 있는 일로 돈을 버는 것과도, 멀어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