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여행자의 삶도 감수해야 할 것이 있다

호주 - 이스트코스트

by ClaraSue


내가 떠난다고 하니 우리 셰어하우스 레인에서는 나를 포함한 다른 떠나는 이들을 위한 굿바이 파티가 열렸다. 우리가 떠난 곳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고, 다른 셰어하우스 파티가 열리겠지.


처음 도착해서 외로워했던 에일리비치 시절에 나를 챙겨준 다비드 그리고 셰어하우스 친구들. 각자 뿔뿔히 흩어져서 다른 곳으로 떠나지만 에일리비치에서 다같이 즐거웠던 기억을 모두들 간직하고 살아갈 것이다.


마이크가 섭섭한 마음을 시니컬하게 표현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제 우린 두번 다시 사람들이잖아.’ 라고.

안다 나도 마음. 굿바이는 언제나 힘들다. 정을 주고 헤어지는 항상 조그만 상처라도 남기는 같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여행자의 삶을 견딜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언젠가 내가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어디선가 다시 만날거라고 믿는다.


헤어질 것을 알지만, 헤어지면 두번 다시 못볼 가능성이 높다는 알지만, 그래도 우리가 있는 헤어짐이 두려워서 마음을 닫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있을 마음을 활짝 열고 최대한으로 사랑하는 것일 뿐임을.

요즘에는 sns 발달되면서 연락을 하지 않아도 눈팅으로 서로가 어디서 뭐하고 사는지 확인할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한번 길에서 만났어도 인연을 10 넘게 이어 나갈수도 있는 거다. 아주 작은 실낱같은 인연의 , 좋아요조차 누르지 않는 sns상의 길고 친구 리스트 한명일 뿐일지라도,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인연의 끈을 이어간다.


안그래도 만남과 헤어짐에 대해 고찰하고 마음이 착잡해지던 찰나, 뜬금없이 15살때 미국에서 만난 친구 리야가 인스타그램으로 메세지를 보냈다. 지내냐고, 호주 좋아 보인다고. 세상에. 리야가 문자를 하다니. 리야도 내가 리야를 기억하는 것처럼 나를 기억하고 있었구나. 나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 얼마만큼 남아 있을까. 어떻게 남아 있을까. 어딘가에서 우정을 쌓은 사람들 못지않게 길에서 스쳐 지나간 많은 사람들. 어디선가 다시 만나려나.


크루즈에서도 마지막으로 스노클링 하고, 모두들에게 인사했다. 반응이야 반반이었다. 벌써 관두냐고 아쉽다는 사람들, 그리고 백패커니까 금방 관둘줄 알았다고 어깨 으쓱하고 마는 사람들. 그래도 팀리더랑 매니저들이 좋게 레퍼런스 써준다고 하고, 다시 돌아오면 언제든 받아주겠다고 (빈말이라도) 해줘서 고마웠다.





나의 첫번째 도착지는 아그네스 워터.

사실 아그네스 워터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도 못했는데, 보트에서 일하면서 만난 백패커 여자애 한명이 다음 행선지 아그네스 워터라고 거기가 제일 서핑하기 싼데라고 말해서 바로 내 뇌리에 꽃인 곳이다.

아그네스 워터는 퀸즐랜드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마지막으로 서핑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엄청 작은, 쿡선장이 호주에 도착한 곳 1770(이게 마을 이름이다) 과 이웃하고 있는 마을 이기도 하다.


새벽 3시 반에 호스텔에 도착해 그냥 침대에 몸을 던졌다. 아침에 부시부시 일어나서 숙소를 두리번 두리번 거렸다. 방은 8인실인데 나랑 다른 한명밖에 없었다. 어느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봤는데 놀랍게도 한국인이었다! 이렇게 뜬금없이 아그네스 워터에서 서핑강사 J를 만났다.


하필 내가 도착한 시기가 남쪽 퀸즐랜드에 사이클론이 온 시기라서 파도가 엄청 높았다. 그래서 다른 서핑 스쿨들은 클래스를 다 취소했다. J와 나는 한번 해변에 나가 상황을 보고 결정하자고 햇는데 한번 파도가 밀려올때마다 내가 쓸려가서 서 있을수조차 없었다. J에게 매달려 질질 딸려가다시피 겨우겨우 파도를 넘어 들어갔다. 나는 호주에서 서핑을 배우면서 얕은 물에서도 사람이 익사할 수 있겠구나, 라는 걸 느꼈다. 그래도 파도에서 뒹구는 것은 신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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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용 보드가 아니라 입문자용 서핑 보드는 내 몸보다 훨씬 커서 낑낑대고 메고 다녔다. 서핑을 하려면 무겁든 가볍든 자신의 보드는 자신이 직접 들고 다녀야 한다. 무엇인가를 하려면 내가 짊어져야 하는 짐이 있다. 누구도 나 대신 져줄 수 없는 짐. 그 짐을 내가 질 수 없다면, 하고자 하는 것을 이룰 수도 없는거다.


내가 서핑 보드를 이고 지고 낑낑거리는 것에 비해 내 옆에 독일 여자애는 나와 체격 자체가 다르다.

저렇게 크고(?) 씩씩한 애가 번쩍번쩍 서핑 보드도 지고 다니는 거지. 나 좀 봐. 나는 마르고 힘도 없어서 못해.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얼마나 안타까워 보이겠어!


지금껏 그렇게 생각해 왔다. 그래서 나의 마른 체격에 대해 언제나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니, 나보다 더 작고 마른 애들도 뭐든지 잘만 해내더라. 거기다 서핑은 오히려 가벼울 수록 더 잘 탄다고 했다. 어쩌면 나의 한계를 단정짓고 있던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나였는지도 모른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말'이 나에게 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아그네스 워터에서 번다버그까지는 한시간 반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예상치 못하게 변동된 버스 스케줄로로 내가 버스에서 내린 시간은 새벽 4시.

텅 빈 도심 깊은 새벽, 배낭 하나를 메고 번다버그 시내에 도착했다. 심지어 아무도 내리지도 않았다.

모든 여행은 계획한 대로 완벽하고 안전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언제나 예상치 못한 의외의 상황이 생겨난다. 여행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직진하는 수 밖에.


핸드폰을 꼭 쥐고 배낭 메고 앞만 보고 15분간 직진 했더니 호스텔이 나왔다.

걸으면서 아무도 없는게 더 무서운건지, 여기서 갑자기 누군가 나타나는게 더 무서운건지 생각했다. 이 와중에 새들은 곧 날이 밝는다고 얼마나 큰소리로 울부짖는지 귀청이 찢어질 지경이었다.

다행히 아무 일 없이 호스텔로 비번 누르고 들어와서 방 침대에 무사히 안착했다.


번다버그에 온 이유는 몬레포스 야생동물 보호 국립공원에서 아기 거북이들의 탄생을 보기 위해서다. 거북이의 탄생은 밤에 진행된다. 한참 동안 이것 저것 규칙에 대해 설명을 듣고, 조를 나눈 후 나눠서 해변으로 나갔다. 거북이의 암수는 알이 부화할때 모래사장의 온도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지구 온난화가 진행될 수록 암컷 거북이만 부화하고, 멸종에 이를 확률이 높아진다. 이미 몬레포스 거북이 센터에서 만날 거북이는 전세계적으로는 멸종위기에 처한 종이라고 했다. 거북이도 사라지고 있다니. 점점 지구에 대한 희망이 사라져 간다. 거북이 콧구멍에 빨대가 들어가고, 플라스틱 봉지를 해파리로 착각하고 먹어 죽어나가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해변에는 이미 레인저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돌아다니면서 거북이 둥지(?)를 찾고 있었고, 무엇인가 진행되면 그 장소로 한 팀씩 사람들을 데리고 가는 방식이었다.

운 좋게도 우리 조가 출발하자 마자 지금 막 모래에서 아기거북이들이 뛰쳐나오고 있다는 무전을 받았고, 그곳으로 달려가니 레인저가 모래 더미를 누르고 잇었다. 우리는 불을 다 끄고(레인저만 헤드라이트를 켜고 있음) 모래더미를 중심으로 둥그렇게 섰다. 하나 둘 셋! 하고 레인저가 누르고 있던 모래더미에서 손을 떼니까 놀랍게도 거기서 아기 거북이들이 수도 없이 튀어나왔다!!! 총 34마리정도가 꼬물거리면서 나왔는데, 여전히 부화되지 않은 알이 남아 있고, 며칠 후에 나머지 아기들이 나올거라고 했다.


아기 거북이들은 불빛을 보고 바다로 들어간다고 한다. 바다에 무슨 불빛이 있어서 이 칠흙같은 바다로 찾아 들어간다는 걸까 싶지만 수평선을 보면 희미한 불빛이 보인다고 했다. 어쨌든 그래서 모든 인공적인 불빛은 알 낳으려 올라온 엄마 거북이와 막 깨어난 아기 거북이들을 방해하는 요소고, 절대 플래시든 핸드폰이든 켜면 안된다고 신신당부 했다. 레인저가 먼저 리서치를 위해 아기 거북이들을 관찰하고, 사진 찍고, 그 다음 우리는 거북이들이 바다로 갈 길을 만들어 주기 위해 길 옆으로 쭉 늘어섰다. 길 중간중간마다 플래시를 든 사람들이 서서 거북이들의 길을 안내했다.


34마리가 모래를 헤치고 플래시 불빛으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 바다로 가는 장면은 장관이었다. 거북이들은 손톱만해서 우리가 모래사장에 만든 발자국에 빠져서 허우적 허우적 대기 일쑤였다. 그럴때마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최대한 우리가 개입하지 않고 혼자 힘으로 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해 만지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그렇게 엄청난 장애물(?)들을 넘어서 약 30분후 드디어 모든 거북이들이 물속으로 들어갔는데, 심지어 물속에 들어가도 파도에 쓸려 나오길 수십차례 반복한 후에야 영영 바다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사라진 아기 거북이들은 몇년이 지나고 태평양 건너 미국 서부 해안이나 칠레에서 발견되었다가 다시 몬레포스 근처로 돌아온다. 아기 거북이들이 혼자 물속에서 살아가는 시간에 대해서는 우리는 아는게 없다고 한다. 우리는 짐작만 할 뿐이다. 니모를 찾아서에서 나온 거북이들처럼, 바다를 가로지르는 모험을 하는 거겠지.





몰리와 하비베이에서 재회해 프레이저 아일랜드 투어도 갔다. 끝도없이 펼쳐진 모래사장을 4wd 핫핑크색 지프로 내달렸다. 섬 곳곳에 가볼만한 아름다운 스팟들이 있다. 왜 그렇게 프레이저 아일랜드가 유명한가 했더니 유명한 이유가 있었다. 프레이저 아일랜드에는 딩고라는 야생 개가 살고 있는데, 우리가 방문하기 며칠 전 어떤 관광객이 딩고에게 물리는 사고가 나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받았다. 이후 몰리와 함께 누사, 선샤인코스트, 골드코스트까지 서핑의 명소들을 쭉 따라 내려가며 해변에서 수영하고, 서핑하고, 선탠하는 시간이 반복되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들을 하고 색다른 음식들을 먹는다. 행복하면서 동시에 불안하다.

이 길이 나를 어디로 이끌 것인가? 내가 잘 가고 있는 건가? 나의 미래는? 지나치는 장소들에서도 계속 생각한다. 혹시나 이곳이 내가 머무를 곳일까? 여기도 아닌가? 여행자로 살아간 다는 것은 끊임없이 길 위에서 떠남과 머무름에 대해 묻고 답하는 것. 답을 찾지 못한 채, 나는 또 떠난다.




계속 이동하는 것도 피곤하다. 사람들을 만나며 반복된 자기 소개를 하는 것도 재미없어진다.

여행이 계속되면 여행의 시작에 느꼈던 호스텔에 체크인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런 감정따위는 다 사라지고, 일상이 된 여행이 지루해진다. 아름다운 해변은 좋지만, 너무 많이 봐서 감흥이 덜 하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것도 좋지만, 외식이 반복되니 아무리 예쁜 플레이팅을 봐도 이제는 그다지 감동스럽지 않다. 여행을 하면서 보는 대부분의 풍경과 액티비티들은 그냥 소소한 일상의 부분이 되어 이미지와 느낌만 남긴 채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린다. 동시에 타이트한 재정과 지금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 두 가지 사이에서 고심한다. 과감히 돈을 쓸 것인가, 돈을 아낄 것인가.




그래도 다른 여행자들을 만나면서, 빈 손으로 다니면서도 자신 뿐 아니라 남에게 기쁨을 주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요리를 하는 사람은 호스텔의 협소한 부엌에서도 뚝딱 뭔가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탄성을 지르게 만들었고, 요가를 하는 사람은 호스텔에서 사람들을 모아 놓고 공짜로 요가 세션을 진행했다. 악기 연주나 노래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저녁먹고 같이 jam 하자고 하면서 신나게 음악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고, 그림을 그리거나 팔찌 만들기 같은 걸 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작은 선물을 해 주기도 한다. 저녁에는 호스텔 뒷 마당에 불을 피우고 훌라후프도 하고, 포이(불 돌리기)도 하고, 줄을 매어 놓고 공중에서 줄타기 연습을 하는 그런 여행자들.


엄청난 능력이 아닌데도 나와 남을 행복하게 하는 것. 나는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그림을 잘 그리지도 못하고, 영상이나 사진을 잘 찍지도 못하고, 공연할 줄 아는 것도 없다. 어렸을 때부터 동생들이랑 놀 때도 실뜨기도 잘 못하고 종이접기도 못했다고! 내가 변치않게 꾸준히 하고 싶을 정도로 꽃힌 것이 없었던 것 같다. 모든 것에 호기심을 보이지만 몇번 시도해보고 나서는 흥미가 사라진다. 이게 나의 문제인것 같다.





여행하고 있는 와중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 환갑 이야기였다. 우리 아빠는 환갑인데 그토록 바라는 손자도 하나 없고, 아니 손자는 커녕 아직 결혼한 자식도 없다. 환갑 선물로 남들은 자식들이 100만원이 넘는 선물도 해주는데, 나는 현금 50만원을 보내는 것조차 고민을 해야 할 지경이다.


아빠 환갑까지도 네가 이렇게 헤매고 있을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라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요즘 세상에 70도 아니고 왜 60에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지, 이 세상에 화가 났고, 환갑에 돌아보니 인생을 잘 못 산 것 같아(자식을 잘 못키운 것 같아) 우울해 한다는 아빠에게 화가 났고, 멋지게 아빠의 환갑 선물을 해주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가장 슬픈 것은, 내 선택이 내가 아니라 내가 내린 결정과 아무 상관도 없는 부모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나를 키웠는데, 내가 내린 퇴사라는 선택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자식 잘 키웠다는 말도 못 들을 뿐 아니라, 자괴감까지 느껴야 한다.

부모님의 마음을 그렇게 아프게 만든 나는 얼마나 불효녀란 말인가.

효녀가 되기 위해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살 수는 없다는 걸 잘 알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프다. 내가 뭘 해 드리기는 커녕, 걱정만 하게 만드니까. 나는 여전히 K-장녀의 책임감과 죄책감을 짊어지고 여행하고 있다.


자신의 길을 찾고 있다는 명분으로 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여행하는 삶을 선택한다,라는 것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느냐의 싸움인 것 같다.

돈 없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어? 친구와 가족없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어? 불암함과 죄책감, 외로움같은 부정적인 감정과의 싸움에서 어디까지 버틸 수 있어? 그 와중에 얼마나 삶을 즐길 수 있어? 여행하면서 부딪치는 예상치 못한 모든 상황들을 웃어 넘기면서.


못 버틴다고 끝은 아니다. 그저 시험해 보는 것이다. 자신을. 어느 한계까지 버틸 수 있는 사람인지.

회사와 일상이라는 평범한 삶에서는 절대 알 수 없었던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알게 될 것이다. 의외로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강할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