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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aSue Apr 22. 2022

아침 창문을 열며


창문에 대한 가장 강렬한 기억은, 초등학교 때다.

나는 그날도 방안에 앉아서 망할놈의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었는데,

작은 창으로 보이는 하늘이 너무도 푸르렀다.


창문으로 보이는 하늘과 날아다니는 새가 오히려 내가 있는 이 곳을 감옥으로 느껴지게 만들었었다. 그 당시 부모님과 선생님의 의도는 방에 가두면 빨리 집중해서 문제집을 풀고 나오는 것이었겠지만, 수학보다 문학에 더 가까웠던 나는 안 풀리는 문제집 앞에서 한숨만 들이쉬고 내쉬면서

오히려 아무 방해 없이 새가 되어 저 하늘로 날아가는 상상만 잔뜩 했더랬다.


하루종일 앉아있는 교실에서도 눈부신 창 밖의 세상은 언젠가 이 학교를 졸업하면, 누릴 수 있는 멋진 세상으로 생각되었다. 나는 언제나 창 안에서 창문 밖의 세상을 꿈꿨다.

성인이 되면서 드디어 '창문 밖'의 세상을 즐긴다는 마음에 들떴지만, 

이제는 아무도 나를 가둘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두근거렸지만,

그것도 잠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내가 자발적으로 창 안으로 들어갔다.

시험공부를 해야 하니까, 취업준비를 해야 하니까.

도서관 창 밖으로 보이는 내리쬐는 햇살과 흩날리는 벚꽃.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깨달았다.

여전히 나는 사무실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운 좋게도 나는 고층 빌딩 오피스에서 일할 기회들이 있었다.

세상이 발 밑에 있는 뷰, 반짝이는 한강이 보이는 뷰.

하지만 여전히, 그 세상은 나에게 창 밖이었다.

그렇게 크고 밝은 통창 앞에서도 나는 눈앞이 캄캄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이렇게 창 밖만 보면서 살아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때문에.



회사와는 달리, 내가 그때까지 살았던 집들은 모두 아파트나 원룸이었고, 대부분 창 밖의 뷰는 형편없었다.

더구나 내 힘으로 수도권에서 구할수 있는 창문은 바로 앞이 벽으로 막힌 창문이거나 지하/반지하였다. 나는 나에게 어울리는 수준의 창문은, 그 정도인줄 알고 그냥 만족했었다. 

여기서 뛰쳐나가면 아예 창문은 커녕 몸 누일 곳도 없는 홈리스가 될까봐 차마 두려워서 그 창문 너머로 나가기가 두려웠었다.



창문이 없다는 건, 나를 지켜줄 벽이 없다는 말이니까.

벽 안쪽에서 창문만 넘겨다보며 살든지, 아니면 벽도 없고 창문도 없는 곳으로 나가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고, 여기서 답답해하면서 죽든 나가서 바람 맞고 죽든,

죽는 건 마찬가지라는 생각까지 하고 나서야 나는 용기를 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드디어 내가 상상만 하던 창문 밖 세상으로 나와서, 

내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창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국립공원의 폭포를 보며 잠들 수 있는 창문이 있다니. 큰 창틀에 앉아 덜컹이며 지나가는 야간 열차를 보며 하루를 정리할 수 있는 창문이 있다니. 빨간머리 앤처럼 머리위로 여는 경사진 창문이 있다니. 나도 이렇게 정원이 보이는, 크고 아름다운 창문을 가질 수 있다니..!

십년 전의 나는 상상도 못하던 곳들에, 나는 살았고, 머물렀고, 떠났다.

나에게 언제나 '갇혀있음'을 상징하던 창문은 이제,

나를 세상과 연결시켜주는 창이 되었다. 



내가 감히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던

눈부신 아침 햇볕이 가득 들어오는 나무 창문을 활짝 활짝 열면서, 

괜히 울컥하는 마음이 드네.

바깥의 공기와 소리를 방 안에 채우면서

나는 이렇게 세상속에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느낀다.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하는 커다란 잠재력을 우리 속에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너무 인생을 진지하고, 심각하고, 한 가지에 얽매여서만 살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다들, 창문 안에서 바깥만 바라보고 한숨쉬면서 사는게 당연하다길래 

원래 다들 그렇게 사는 건 줄만 알았다. 

근데 굳이 나의 집에, 다른 사람과 같은 창문을 넣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집도 창문도 사람마다 다르니까.


오늘처럼 오랫만에 날씨가 좋은 평일.

광합성을 하러 야외 까페 테라스에 앉아 일하러 가볼까.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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